'지옥의 레이스'를 달렸다더니, 전현희(52)는 몰라보게 야위었다. 4㎏이나 줄어 바지 허리춤이 헐렁하단다. 파격을 즐기는 여자는 아니었다. "정장 말고 나풀거리는 꽃무늬 원피스 입고 와달라" 부탁했건만 그녀는 '정석'대로 입고 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국산'이었다. 동네 상설할인점이나 홈쇼핑에서 산단다. 명품 입던 때도 있었다. "의원(18대) 되기 전엔 아르마니도 입었는데 국회 오고 나서 안 입어요. 국민 섬기는 공복이니." 대신 알록달록 화사한 정장을 입는다. "(국민들) 눈에 확 띄어야 한대서요.(웃음)" 막대기만 꽂아도 여당이 된다는 서울 강남에서 야당 후보로 당선돼 20대 총선에 파란을 일으킨 전현희 강남 '을' 당선자를 7일 대치동 그녀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옷매무새며 말씨는 천생 여자인데 손이 유난히 컸다. "아버지 손 닮았어요. 저와 악수하신 분들이 그래요. 일 하나는 잘하겠다고."

강남! 울면서 뛰고 또 뛰었다

―당선 후 일상에서 달라진 점 있다면?

"어제 아파트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파란불이 막 깜박이더라. 빨간불 들어올까봐 우다다다 달렸는데 느낌이 이상해 뒤돌아보니 정지선에 서 있던 운전자들이 죄다 날 쳐다보고 있더라. 어찌나 민망한지. 익명의 즐거움은 끝났다 싶으면서도, 알아봐주고 손 흔들어주시니 감사했다."

―왜 강남을 선택했나?

"내겐 제2의 고향이다. 딸애 유치원 가면서 대치동 들어와 15년 이상 살았다. 그 이유만은 아니다. 우리 정치의 망국병인 지역주의, 계급주의를 깨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강남이 그 상징적인 곳이었다."

―여당 텃밭이라 설움이 컸다더라.

"울면서 했다. 지역 행사장 찾아가 명함 드리며 인사라도 할라치면 '당신 뭐야?' 하며 쫓아내고. 그래도 전직 국회의원인데.(웃음)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겠다.

"보기보다 집념이 강한 편이다. 배타적인 눈빛 견뎌내기 힘들었지만 모든 행사 찾아다녔다. '아무갭니다' 하고 인사를 수십 번 했더니 서서히 마음을 여시더라. 어르신들께는 무릎 꿇고 인사했다.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가리지 않았더니 어떤 분이 '당신 명함을 일곱 장이나 받았다'며 웃더라. 골수 새누리인데 열심히 뛰는 후보 안 찍을 수 없겠다며."

―젊은 부부들 많이 사는 세곡동에 지하철 9호선을 끌어오겠다는 공약이 먹혔다고하더라.

"세곡동은 대표적인 난개발 지역이다. 아파트는 우후죽순 들어섰는데 교통이나 생활기반 시설이 없다. 제일 가까운 역이 수서역인데 역까지 가는 데만 40~50분 걸린다. 완전 콩나물 시루다. 국토위에 들어가 이 공약만은 꼭 지킬 거다."

―교육열 강한 강남에서 어떤 일 할 건가.

"사교육비 부담 덜고 공교육 강화해나갈 거다. 당장은 대치동 스타 강사들과 협업해 저렴한 비용으로 듣는 인터넷 강의 만들 생각이다. 학원 가지 않고도 1만~2만원으로 좋은 강의 들을 수 있게. 강남맘들 알고보면 굉장히 검소하다."

―부군이 살아 있었다면 가장 기뻐했겠다.(전현희 당선자의 남편인 김헌범 전 창원지법 판사는 2014년 4월 빗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제가 기일이었다. 경북 선산 남편 묘에 가서 실컷 울었다. 남편은 내가 정치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족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 더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더 아팠고 절망했다. 몇 달 두문불출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또한 하늘의 뜻 아닐까. 나 개인의 행복보다는 대한민국 위해 살라는 하늘의 뜻. 억지로라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내 인생을 바꾼 책 '데미안'

―선거날 TV 화면에 어머니가 보이더라

"여고때까지 줄곧 1등 하셨는데 집안 형편으로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다. 거기 한이 맺혀 딸은 꼭 전문직 가져야 한다고 등 떠미셨다. 변호사 되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의사를 권하셨다. 대학은 무조건 서울대고.(웃음)"

―치과의사 3년 하다 사법고시 봐서 합격했다. 젖먹이 아이까지 키우면서.

"어릴 때 꿈이라 이루고 싶었다. 치과의사도 나쁘지 않았지만, 좀 더 열린 공간에서 일하고 싶었다."

―천재인가?

"전혀. 중학교때 통영서 대도시 부산으로 전학와 주눅들어 살았다. 공부는 중간 정도? 고2때 정신이 번쩍 들더라. 이 성적으로는 부산에 있는 대학도 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죽을 힘 다해 공부했더니 고3 첫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다.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무섭게 집중한다. 공부도, 선거도 지성이면 감천이더라.(웃음)"

―공부법 알려달라는 주문 쇄도한다던데.

"영어는 사전 한 권 잡고 공부했다. 한번 찾은 단어는 형광펜으로 표시했다가 새로운 단어 찾을 때 그 페이지에 형광펜으로 그었던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 다시 외고 새 단어를 외웠다. 매일 그렇게 했더니 고3 학력고사 칠 때쯤 사전 한 권이 온통 형광펜으로 색칠돼 있더라. 수학도 마찬가지다. 정석 풀기 시작한 첫날엔 제대로 푼 문제가 거의 없었다. 다음 날 공부할 땐 첫날 틀렸던 문제부터 다시 푼 뒤 이틀째 문제를 푼다. 셋째 날 공부할 땐 첫날과 둘째 날 틀렸던 문제 다시 풀어보고 새로운 문제 풀었다. 이렇게 하면 책 한 권 떼는 데 오랜 시간 걸리지만,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절대 틀릴 수 없다. 반타작하던 수학을 만점 받은 비결이다."

―왜 변호사가 되고 싶었나?

"어릴 때 책벌레였다. 그 시절 읽은 책들 중 변호사 출신의 위인들이 많았다.(웃음) 날 공부하게 만든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유명한 구절. 빈둥빈둥 살아선 안 되겠다, 멋지게 살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환경문제에도 관심 많더라.

"아이 하나 키울 때 사용하는 종이 기저귀가 섬 하나 분량의 나무를 없앤다는 글을 읽고 내 딸은 천기저귀로 키웠다. 옷, 장난감, 유아용품도 중고로 얻어서 사용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그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테이블' 첫 호에 염재호 총장이 조지 클루니 스타일이 좋다고 하셨더라.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난 오드리 헵번을 꼽겠다. 이러면 안티 생기려나? 하하! 정치에서 은퇴하면 헵번처럼 어려운 사람들 위해 헌신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