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여름, 미 프로야구(MLB)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스카우트 오마르 로페즈는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유망주 테스트를 관전하다가 마음에 드는 선수를 찾았다. 탁월한 수비 능력과 출중한 타격, 근성까지 갖춘 16세 소년이었다. 로페즈는 휴스턴에 있던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꼭 필요한 선수를 찾았습니다. 근데 키가 너무 작아요. 운동장에서 확인하려면 안경이 필요할 정도라니까요." 소년은 1년 전에도 작은 키 때문에 테스트에서 고배를 마신 일이 있었다. 이번엔 간신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계약금은 1만5000달러(약 1700만원)였다.
정확히 10년 뒤, 남미에서 건너온 소년은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로 성장했다. 신장 1m65인 휴스턴의 1번 타자이자 MLB 최단신(最短身) 선수인 호세 알투베(26) 이야기다. 그의 올해 연봉은 350만달러(약 40억)에 달한다.
알투베는 6일(한국 시각) 시애틀전에서 4타수 4안타(1홈런) 2타점을 뽑아냈다. 이 홈런으로 그는 아메리칸리그 홈런 공동 선두(9개)에 올랐다. 그는 도루에서도 10개로 1위이고, 최다 안타는 2위(38개)다. 타율은 0.330이다. 2m 안팎 장신이 수두룩한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의 최단신 선수 이상훈(삼성·171㎝)보다도 6㎝나 작은 선수가 이런 활약을 한다. 미국 현지에서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2011년 빅리그에 입성한 알투베는 이듬해 타율 0.290, 167안타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에 선정됐다. 2014년 리그 3관왕(타격왕·최다 안타·도루왕)을 차지했고,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2루수 반열에 올랐다. 팬들은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부른다. 스포츠에선 당연히 신체 조건이 좋을수록 유리하다. 과거 이용규(31·KIA)의 플레이를 지켜본 한 스카우트가 "남들이 서서 받을 공을 점프해야 받으니 좀 곤란하다"고 평가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용규의 신장은 175㎝다. MLB 선수 평균 신장은 188㎝, 국내 KBO 선수 평균도 약 183㎝이다.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20㎝ 넘게 작은 알투베의 성공이 '기적'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는 엄청난 연습벌레다. 매 경기가 시작되기 4시간 전에 운동장에 나타나 스윙 연습을 한다. 다른 선수들은 아직 숙소에 있을 시간이다. 최고의 타격감을 발휘하고 있는 요즘도 훈련을 빼먹지 않는다. 상대 투수를 만나기 전 영상을 꼼꼼히 챙겨보며 공부하는 것도 습관이다. 마이너리그 3년 생활을 청산하고 빅리그에 올라온 뒤로는 평소 즐겨먹던 패스트푸드도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알투베는 2014년부터 타격 스타일을 바꿨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이 들어와도 자신이 좋아하는 공이 아니면 흘려보냈고, 볼이라도 자신이 있으면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의 키만 한 높이로 공이 날아와도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점프를 해서라도 공을 건드릴 만큼 과감해졌다. 알투베는 그해에만 안타 225개를 쳐냈다.
알투베의 성공 뒤엔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알투베가 세 살 때부터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매일 운동장에 나와 아들을 응원했다. 지금도 그의 아버지는 알투베의 모든 경기를 시청하며 조언을 한다. 물론 작은 키 때문에 애를 먹을 때도 있다. 미 야구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알투베에겐 가슴·어깨까지 올라오는 높은 공이지만 남들에겐 허리에 그치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콜이 불리는 경우가 잦다"고 전했다. 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할 때도 높은 손에 닿지 않아 점프를 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알투베는 "동료들과 팬들은 내 키를 두고 농담을 한다"며 "사람들이 데릭 지터나 알렉스 로드리게스 같은 훤칠한 스타들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도 한다. "누구든 실력이 있다면 경기에 뛸 권리가 있지요. 키가 크든 작든, 경기장 안에선 당신만의 게임을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