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 꼭 맞는 제품을 만드는 자를 ‘취향저격자’라 부른다면, 최화정은 ‘취향인솔자’다. 평소 내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그가 하면 왠지 해보고 싶다. 이거 먹자면 먹어보고 싶고, 이거 입으라면 입어보고 싶고. 제아무리 개성 강한 사람도 ‘따라쟁이’로 만드는 그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사람 ‘홀리는’ 재주가 있다고. 그런 그가 CJ오쇼핑에서 쇼호스트를 맡았다. 큰일이다. 지름신이 기지개를 켠다.
첫 방(4월 6일)부터 완판이었죠? 왜, 가수들 1위 하면 그러잖아요. "상상도 못 했어요"라고. 진짜 그때 매진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방송 전에 주변 스태프들이 그랬어요. 비단 쇼호스트 때문이 아니라 상품이 일단 너무 좋기 때문에 반드시 매진될 거라고요. 근데 제 입장에선 걱정이 되죠.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40분부터 2시간 동안 하는데, 그 어정쩡한 시간에 누가 볼까 싶었어요. 특히 랑 겹치는 시간대인데 누가 보겠어, 하는 생각. 머릿속엔 그냥 '이 정도면 선방한 겁니다' 하는 위로의 말만 울려 퍼졌죠.
왜 이제야 쇼호스트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잘 어울려요. 호호호. 정말요? 사실, 제가 옛날부터 그런 게 있었어요. 주위 사람들한테 "얘, 이거 너무 맛있어. 먹어봐"라고 하면 같은 말인데 좀 더 설득력이 있었어요. 친구들끼리 오늘 뭐 먹지 고민할 때, 제가 "오늘은 찜닭 먹자. 두꺼운 당면에다 김가루 솔~솔~ 뿌려서"라거나 "오늘은 낙지야, 낙지" 이러면, 그날 메뉴가 되는 거예요. 별명이 '푸드픽업아티스트'였다니까요.(웃음) 물건 같은 것도 "얘, 아~무 소리 말고 이거 한 번 써봐" 그러면 다들 쓰고…. 친구들한테 "네 말 듣고 그거 샀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신선했어요. 홈쇼핑 보면서 재밌다는 생각 한 적 별로 없거든요. 와~. 그랬나요? 정형화된 틀의 대사가 아니다 보니까 재밌다는 반응이 온 것 같아요. 이미 여러 쇼호스트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들 사이에서 나만의 색깔을 가져야겠다 싶었죠.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정말 이름처럼 '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자. 토크쇼처럼 이야기가 있는, 라디오처럼 편안한. 여성들은 물건을 살 때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거든요? 그걸 이용해 사기를 치자는 게 아니라(웃음) 제품 자체보다는 그를 둘러싼 스토리를 풀어나가자….
제품을 둘러싼 스토리, 예를 들면요? 청소기를 판다고 해봐요. 모터나 뭐나 그런 것도 물론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보단 이런 거죠. 정리의 힘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일본의 작가 '마쓰다 미쓰히로'가 말한 청소력 말예요.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으면 우선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라는 얘기 말이죠.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는 거죠. 또… 이런 것도 있을 수 있죠. 알이 큰 무서운 진주 목걸이 말고요. 곗돈 받으러 가는 아줌마들이 하는 진주 목걸이 말고, 알이 작고 예쁘고 안 무서운 진주 있잖아요? 그래서 까만 원피스에다가도 하고, 티셔츠에다가도 할 수 있는. 그럴 때 예를 들면 재클린 케네디의 일화를 얘기하는 거죠. 아들이 자꾸 목걸이를 잡아당기니까 케네디한테 받은 진짜 진주는 금고에 넣어두고, 가짜 진주를 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예쁜 진주 목걸이인데, 편하게 하고 다니라는 의미에서요.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깃거리 구상하는 것도 쉽지 않겠는데요? 네, 네. 근데 평소에 제가 다 쓰는 제품이니까. 대상도 3050세대 여성 소비자들이고. 주방, 가전, 침구…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관련된 아이템들이에요. 무슨 컴퓨터를 다루는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아, 이거 좋은데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 하는 차원에서 보면 다 어렵고 그래요.
물건 살 때 '이건 꼭 따진다' 하는 게 있다면요? 디자인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가장 폼 나는 게 가장 실용적이다'라는 말 있잖아요? 아무래도 여자고 그러니까. 화장품 같은 것도 용기가 미우면 쓰기가 꺼려지더라고요. 그렇다고 비싼 것만 쓰느냐, 것도 아녜요. 어떤 사람이 외국에서 정말 예쁜 물건을 봤는데, 메이드인코리아라고 쓰여 있으니까 탁 놓더라고요. 자기 눈에 예쁘면 그게 코리아든 어디든 무슨 상관이야. 전 정말 예쁘면 브랜드가 없어도 입어요. 그게 자신감이거든요. 명품이라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데도 무조건 걸치는 거, 그게 더 웃겨요. 패션은 자신감이에요. 그런 면에선 제가 영향력이 있는 것 같은 게, 홈쇼핑에서 산 옷을 입고 나가도 주변에서 "그거 어디서 샀어, 어머! 에르메스인 줄 알았어~" 그래요.(웃음)
그러게요. 그럴 것 같아요. 전 '럭셔리'라는 게, 보여주기 위한 거라면 촌스럽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보지 않지만 속옷을 갖춰 입는다든지, 혼자 있을 때도 갖춰진 브런치를 먹는다든지, 좋은 침구에 누워 잠을 자고 자기만의 호사를 부리는 거. 저는 이게 럭셔리라고 생각하거든요.
홈쇼핑을 하면서, 이것만은 지켜가겠다 하는 게 있다면요? 내가 어차피 세일즈를 하는 사람이라면, 단점은 최대한 얘기를 안 하고 장점만 부각시킬 수 있단 말예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팔고 반품이 들어온다, 그 순간 신뢰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어요. 홈쇼핑에서 선식 플레이크를 팔더라고요. 좋아, 나도 살을 빼보자 해서 샀는데 너~무 단 거예요. 방송 내용을 곰곰이 돌이켜 보니까 칼로리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아. 심지어 제품 뒤에도 칼로리가 안 쓰여 있더라고요.
그 방송, 어쨌든 세일즈엔 성공한 거네요? 성공하면 뭐해요, 그 뒤부터 신뢰가 없는데. 또 예전에 놋그릇을 산 적이 있어요. 놋그릇 위에 생선 한 마리를 구워서 올려놨는데 아주 폼 나더라고요. 삼색나물을 올려놔도 아주 예쁘고요. 쇼호스트가 그래요, "이건 사시는 게 아닙니다, 소장하는 겁니다!" 소장하는 거래~ 막. 그래! 내가 돈이 없어 뭐가 없어, 사자! 해서 샀단 말예요? 근데 웬일이야. 너무 얇은 거예요. 무게감도 없고요. 입술 다 데겠더라고. '놋그릇' 하면 떠오르는 조건들이 있잖아요. 근데 놋그릇 흉내만 낸 거예요. 그 깐깐하다는 쇼호스트가 그런 놋그릇을 팔다니요. 저는 그런 상품을 글쎄요, 용납 안 할 것 같아요.
모든 방송을 굉장히 즐기면서 하시잖아요? 쇼호스트는 해보니까 어때요. 재밌나요?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는 말이 있잖아요. 즐길 수 있으면 최고인데, 아직까지 쇼호스트 일을 즐기지는 못하죠. 초반이고, 긴장도 되고. 라디오 디제이나, 연기 같은 경우에는 돈을 안 받는대도 할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에요. 돈은 다른 데서 벌면 되니까. 그런 것처럼 쇼호스트 일도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돈을 안 받고도 할 수 있겠다, 할 정도로 즐길 날이 빨리 왔으면 해요.
최근 그의 빌라가 최초로 공개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기자기 잘 갖춰놓고 사는 모습이 딱 ‘최화정스러워서’다. 애완견 ‘준이’를 양육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를 통해서다.
준이가 인기가 엄청 많아요. 아~. 정말요? 와~ 진짜? 다행이다. 이거, 이거 봐봐요.(신고 있던 신발 뒤축에 '준이맘'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준이맘! 준이가 2014년 3월 26일생인데, 제가 6월에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준(June)이에요.
오줌을 못 가려서 많이 혼나던데, 지금은 잘 가리나요? 원래 준이가 70~80%는 가려요. 촬영이 없을 때는 거기에(오줌 싼 곳) 책장이나 그런 걸 놔두는데, 촬영한다고 치워놨더니 거기다 누더라고요. 그때 내가 진짜 야단을 많이 친 것처럼 나왔는데요. 제가 원래 야단을 진짜 안 치는데, 그때는 뭔가 카메라도 있고 그런 걸 좀 하길 원하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오줌 누는 것도 몰랐는데 알려주고요.(웃음) 내가 너무 무섭게 나왔어요.
원래 사람 빼고 움직이는 거 다 싫어하셨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정말 싫어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무서웠어요. 동물이 전부 다. 근데 무서워한다고 하면 촌스럽잖아요.(웃음) 그래서 말은 안 했는데, 그전까진 키울 생각이 추호도 없었죠. 애완동물로 유난 떠는 게 너무너무 싫었거든요. 국제전화 하면서 강아지 바꿔달라고 하는 것 보면, 솔직히 속으로 '지네 아빠 생일은 아나' 이러면서 부정적으로 생각을 했어요. 개한테 유산을 물려준다는 외국인 얘기를 들으면 그야말로 외국 얘기구나 싶었고요. (이)영자, (엄)정화, (이)소라, (정)선희 전부 다 강아지를 키웠는데요. 강아지를 정말 사랑해, 얘가 죽으면 슬플 거야, 이런 얘길 들어도 전혀 와 닿지 않았고요.
그랬던 분이 어떻게 강아지를 키우게 된 거예요? 동생이 어쩌다 저희 집에 강아지를 맡겼는데, 이름이 '뻐러(Butter)'예요. 얘가 지네 엄마 올 때까지 요러고 기다리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우리 집 에어컨이 방 하나만 켜지는 게 아니라 켜면 집이 전부 다 돌아가야 해서 나도 못 켜고 있는데, 뻐러가 오면 틀어주곤 했어요. 동생이 감동받아가지고 언니도 강아지를 키워보래요. 근데 나는 어우, 아냐~. 난 집에 늦게 들어올 때도 많고, 안 된다고 (그랬죠). 그때 제가 주말드라마 할 때인데, 이미 강아지를 사놨다는 거예요, 동생이. "계약금 걸어놨으니까 잔금만 내고 찾아오면 돼"라는 거예요. 매니저랑 갔는데, 처음엔 (준이가) 너무 밉더라고요. 내가 과연 얘를 키울 수 있을까 하다가 어쨌든 데리고 왔어요. 아무것도 몰랐는데 눈물 자국 때문에 털을 밀어야 하고 중성화 수술도 시켜야 된대요. 다 시켰어. 근데 수술하면 목에 깔때기를 하잖아요? 걸을 때마다 깔때기가 벽에 부딪히니까 얘가 막 짖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막 침대 위로 도망치고 그랬다니까….
정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네요. 어쨌든 나랑 있어야 하는 모양이구나, 하면서 2년이란 시간이 흐르니까 지금은 하나님의 사랑을 간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하하. 제가 막 간증하는 것처럼 (됐어요). 사랑이 막 피어나요. 준이가 없던 내 생활도 나름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게 완벽이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결혼해서 애를 낳는 거랑은 달라요.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의견 대립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이 원수가 되기도 하고. 근데 강아지는 나만 보잖아요. 아니,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지금 준이가 슬개골 탈골로 지금 병원에 있어요. 병원 밥을 안 먹으니까 매일 조석으로 가서 밥 먹이고 오는데요, 준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집이 너무 넓게 느껴져요.
준이와 같이 살면서 달라진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성격이랄지. 남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골프나 등산 얘기 하는 사람들 보면 지루하다 싶었거든요? 골프 하는 사람들은 골프 얘기를 엄~청 하잖아요. 등산은 또 어때요. 끝도 없잖아요.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어요. 사람이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거죠. 또 제가 한땐 강아지를 너무 싫어했었으니까, 지금도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를 해요. 그래서 산책할 때도 배려를 해요. 줄 짧게 잡거나. 또 짖으면 너무 죄송합니다, 이러고요. 양쪽 입장을 다 아니까.
많은 주부들이 부러워하는 최화정 고유의 모습. 그건 고운 피부, 빨간 입술, 살짝 치켜 올라간 눈썹일 수도 있겠으나, 특유의 에너지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마르고 닳도록 들었겠지만 ‘통통 튀는’, ‘상큼한’이란 수식어를 빼면 설명할 재간이 없다.
여러 주부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에요. 최화정이 정말 부럽대요. 에이~. 좋게 말씀해주시는 거죠? 실제로는 안 그러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늙은 게 예쁜 척하네", "그러면 뭐해, 결혼도 못 했는데", 이러는 분들도 많겠죠. 어쨌든 저는 아무렇지도 않지만요.
진짜 부러워하는 분들 많아요. 피부며, 자신감이며. 혹시 콤플렉스도 있으세요?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겠죠. 다만, 그건 스스로에게 달려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없애고 싶은 사진 같은 거 있잖아요. 근데 2~3년 뒤에 보면 그게 또 예뻐 보여요. 그만큼 사람의 생각이 유동적이란 거죠. 언젠가 드라마 찍을 때 정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때 제가 너무 예뻤던 거야. 새옹지마라고, 죽고 싶었더라도 돌이켜 보면 좋았던 시절이고. 제가 나이를 먹어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보는 자신의 매력, 혹은 경쟁력은 뭔가요?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같나요? 에너지죠. 방송에서만 그러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저를 아는 사람들은 방송에서보다 방송 끝나고 난 뒤가 더 얘기가 많대…. 그런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아까 '결혼도 못 했는데'란 말이 나와서 얘긴데, 혼자인 게 좋은 거죠? 집 안을 둘러보면 다 제가 산 거예요. 머리핀서부터 전부 다. 남편이 다 사주는 애들도 있을 거 아녜요. 근데 나는 내가 다 샀어.(웃음) 물론 한때는 남편 덕에 골프 치고, 선물 받는 걸 부러워한 적도 있어요. 근데 지금은 이런 제가 자랑스럽고 떳떳해요. 남편 덕에 그렇게 사는 애들은 남편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게 세상 이치인가 봐요. 남편하고 부인도 다 갑을의 위치가 있는 거고. 남편 돈을 쓰면서 자기 힘으로 원피스 하나도 못 사는 건 별로잖아요. 전 제 힘으로 입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사니까 진짜 감사드려요. 물론 여기에 그림 같은 남편이 있으면 너무 좋겠죠. 그치만 그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왜요~. 이루어질 수도 있죠. 이 나이에 누구를 사랑한다는 게 안 믿어져요.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랑쟁이였어요. 사랑이 없는 인생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지금이 좋아요.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니까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심장이 뛰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지금은 사랑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뭐, 지금 삶이 너무 좋고요. 일할 때 신이 나고요. 수입과 상관없이 일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만족해요.
그래도 계속 혼자 계시면 더 나이 들어서는 쓸쓸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제가 "내 삶에 만족해요" 이러면 또 그런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아유, 저도 외롭죠,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해주고 그래야 하는데(웃음) 진짜 지금 제 삶이 좋아요. 완벽해요. 저희 엄마도 그랬어요. 화정아, 이상한 남자 만나느니 준이랑 이렇게 사는 게 훨씬 보기 좋다고.
그 말은 좋은 분 나타나면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요. 함께한 역사가 없잖아요. 예를 들어서 30대나 20대 때 만나서 자식이 있고 이러면 미우나 고우나 정이 들었잖아요. "아유, 저 인간이 미워도 우리 엄마 아플 때 잘해줬지, 아유 그래도 애 아빠니까" 하는. 이런 역사가 있으니까 같이 가는 거잖아요? 근데 지금 만나면, 어려울 때 고비를 함께 넘길 원동력이 있을까요? 둘 다 부족함이 없는 상태인데. 그럼 헤어지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요? 결속력이 없잖아요. 둘 사이에 자식이 있어, 뭐가 있어.
이렇게 진솔하게 얘기하신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함께 늙어간 노부부가 석양을 바라보며 손을 꼭 잡는 그런 멋진 모습은 20, 30대 치열한 시기를 견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 같고요. 나 같은 사람은 혼자 멋지게 사는 거죠. 그래도 그동안 제가 속은 안 끓고 살아서 흰머리는 덜 났잖아요. 인생은 그런 것 같아요. 자식이 없는 사람은 없어서 좋고, 있는 사람은 있어서 좋은 거예요. 그걸 굳이 왜 결혼을 안 해, 왜 자식이 없어, 하는 건 선진적인 대화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방송 일은 할 수 있는 때까지 하는 거죠? 그죠. 근데 우린 써주는 거고, 불러주는 데가 있어야 하는 거니까. 일은 계속할 거예요. 주병진 선배가 얼마 전에 라디오 그만두면서 '이제 뭐, 그만해야지' 그러더라고요? 제가 그랬죠. 어머, 오빠. 100세시대야. 돈 때문에 일하는 거 아니잖아? 패리스 힐튼도 일을 해. 사람이 일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