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산업과 대량화된 기성복이 발전하기 전에는 맞춤복을 전문으로 하는 양장점과 양복점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수제구두를 취급하는 양화점도 마찬가지다. 양장점이 시작된 시기는 1950년대부터라고 전해진다. 1970년대까지는 엄마들이 칙칙한 교복을 벗고 소녀에서 숙녀가 되라는 뜻에서 여고를 졸업하는 딸의 손을 잡고 양장점을 찾곤 했다. 결혼 예단으로 고급 옷감을 보내는 풍습을 지키는 사람이 옷감을 들고 양장점을 찾는 일도 흔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디자이너들은 명동에 숍을 열고 양장점 시대를 꽃피웠고, 내로라하는 멋쟁이들 역시 양장점에서 옷을 맞췄다. 유명 배우들도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다. 몇몇 양장점들은 상류층의 사교장이 되기도 했다. 1999년 그 유명한 옷로비 사건이 터진 곳도 바로 ‘라스포사’라는 맞춤복 부티크였다.
명동과 이대 일대에서 성행하던 양장점은 20~30년간 사랑받다가 1970~1980년대 기성복 시대가 열리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기성화가 나오면서 양화점들도 문을 닫았다. 그 후 앙드레김, 지춘희 등 일부 디자이너들은 청담동으로 부티크를 옮겨서 지금까지도 운영 중이다.
최근 너도나도 똑같은 옷을 입는 기성복과 패스트 패션에 지친 이들이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옷을 입을 수 있는 맞춤복을 찾으면서 추억 속으로 잠잠히 사라져가던 양장점들이 다시 활력을 얻고 있다. 마치 CD와 MP3에 밀려나면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LP 음반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양장점이나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려면 오랜 제작기간이 필수다. 양장점을 찾으면 가장 먼저 치수를 재는 것으로 시작해서 패턴을 만든다. 주문자는 다시 찾아가서 가봉된 것을 입어봐야 한다. 그 후 한 땀 한 땀 공들여 바느질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해야 옷이 완성된다. 기성복보다 시간과 정성이 소요되기 때문에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과 체형에 맞춘 맞춤옷을 취급하는 현대판 양장점의 인기는 심상치 않다. 예전엔 명동과 이대에 있던 양장점의 거리는 이제 ‘한강진길’이라 불리는 한남동 뒷골목이 차지했다. 정통 양장점 스타일로 옷을 맞출 수 있는 ‘테일러블 포 우먼’과 ‘테일러블 포 맨’, 디자이너 박지혜와 패턴사 김진화 부부가 운영하는 ‘에흐드쥬’ 등이 바로 현대판 양장점들이다. 그런가 하면, 부암동에는 디자이너 박소현의 비스포크 맞춤 정장을 만날 수 있는 ‘포스트디셈버’가 자리하고 있다.
맞춤 슈트를 취급하는 남성 테일러 숍은 양장점보다는 그 명맥을 더 굳건히 유지해왔다. 명동이나 압구정동에는 액세서리까지 구비가 되어 있어서 정장에 어울리는 구두와 넥타이까지 코디해 스타일을 완성시킬 수 있는 양복점도 많다.
5월 개봉하는 영화 은 유명한 디자이너였던 할머니 시노의 양장점을 물려받아 옛날 방식 그대로 옷을 만들고 수선하는 미나미 이치에가 유명 백화점의 브랜드 론칭 제안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옷과 인생’에 관한 의미 있는 고찰을 담은 이 작품은 오래될수록 더욱 가치 있는 일과 그로 인한 행복의 상관관계를 따뜻한 감성으로 해석했다.
옷을 지어 입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오늘도 양장점에서는 오직 한 명만을 위해 치수를 재고 패턴을 만들고, 가봉을 하고 바느질을 하는 존엄한 일이 일어난다. 그곳을 찾는 이들은 옷을 맞추는 행위 그 자체보다, 공장에서 똑같은 디자인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성품이 대신할 수 없는 귀한 가치를 좇는 사람들이다. 양장점, 비스포크, 테일러 숍, 디자이너 부티크…. 이름은 각기 달라도 그곳에서 돌아가는 미싱 소리가 에너지 넘치면서 아름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