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와 진화생물학자가 만났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사피엔스'(조현욱 옮김·김영사 刊)의 저자인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유발 하라리(40) 교수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가로지르는 통섭(統攝) 학자로 이름난 최재천(62) 국립생태원장이다. '사피엔스'의 원제는 'From Animal to God'. 하이에나처럼 죽은 짐승 골수나 빼어 먹던 미미한 존재가 이제는 유전자 조작과 사이보그 기술로 설계자와 신(神)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는 도발적 역사관이다. '총, 균, 쇠'의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영미권에서 130만부가,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13만부가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숫자보다 놀라운 대목은 이 소장 역사학자가 책에서 보여주는 박람강기(博覽强記)다. 주 전공인 역사는 물론 유전공학·생물학·인공지능 등 고전부터 최신 과학을 한 두름에 꿰며 최단거리로 달린다.
하라리 교수의 한국 방문은 처음. 방한 당일인 지난 25일 밤,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른 두 르네상스맨이 머리를 맞댔다.
◇현생 인류 멸종: 100년 vs 20만년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지난달 초, 하라리 교수는 "21세기는 현생 인류가 살아가는 마지막 세기가 될 것"이라고 단언해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대담의 시작은 이 단언에 대한 반박이었다.
"진화생물학자로서 100년, 200년은 너무 짧은 시간. 종(種)의 멸종은 그 종의 마지막 개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멸망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까지 20만 년은 걸릴 거다.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AI가 아니라 AI를 만드는 인간이다."(최)
"역사 이래 정치·기술·경제·사회 등 수많은 혁명이 있었지만, 변하지 않는 단 하나가 있었다. 바로 우리 자신, 인간이다. 하지만 이번 혁명은 다르다. 유전공학·나노기술·사이보그 기술 덕분에 우리 몸과 마음이 변한다. 21세기 경제의 주요 생산물은 우리 몸과 두뇌와 마음이다."(하라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라. 암컷만 있는 실험실에서 태어난 공룡 벨로시랩터. 우리가 아는 생물학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수학자 맬컴 박사는 대답한다. '진화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게 있다면, 생명은 억제할 수 없다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사피엔스도 방법을 찾을 거다. AI는 자연선택이 아니라 발명품일 뿐. 나는 자연선택의 산물이 더 우세할 거라고 믿는다."(최)
"미국 전기 기술자 제시 설리번은 2001년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그는 생체공학적으로 설계한 기계팔을 사용한다. 버튼이 아니라 생각만으로 조작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유기체가 아닌 무기체 팔이 훨씬 더 강력하다. 2년마다 휴대폰을 갈아치우듯, 우리는 손과 심장을 정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지금까지와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 할 수 있을까."(하라리)
◇대량 실업: 잉여 인간 vs 거품 인간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게 새로운 걱정은 아니다. 그리고 그때도 우려했던 대량 실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직업은 사라졌고, 새로운 직업들이 진화해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지능 시대에도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가령 가상 세계 설계사 같은 사람들. 그런데 생각해보라. 무인 자동차로 자리를 빼앗긴 40세 택시기사가 가상 세계 설계사로 자신을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이들은 결국 '잉여 인간'이 될 것이다."(하라리)
"농경 시대에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누구 하나 버려져 굶지는 않았다. 또 인간 사회에서 고위 성직자, 랍비, 정치 지도자는 육체노동에서 면제되었다. 로마제국을 떠올려보자. 노예가 모든 일을 했다. 전쟁 승리로 일반인은 할 일이 없었고, 정부는 콜로세움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했다. 사람들은 행복했다. 일이 없다는 게 완전히 새로운 상황은 아니다."(최)
"물론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문제는 삶의 의미다. 콜로세움을 말씀하셨는데, 가상현실이나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가 현대의 콜로세움이겠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랄까. 사람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좋은가. 무용한, 무의미한 즐거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라리)
"당신이 걱정하는 '잉여 인간'이 바로 내 책 '거품 예찬'에서 얘기하는 거품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거품은 현실이며, 바로 그 거품 때문에 자연선택이 가능했고, 그 덕분에 환경에 잘 적응된 종들이 탄생했다. 이것은 일종의 '자연현상'이다. 물론 인권 차원에서 인간 거품에 대한 대책을 당연히 마련해야 한다."(최)
◇2050년, 인류는 무용지물이 될까
"19세기 산업혁명은 도시 프롤레타리아라는 새로운 사회계급을 낳았다. 21세기는 AI 혁명으로 다시 새로운 계급이 탄생할지 모른다. 이들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사회 번영에 기여하지 못한다. 수십억 명의 잉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게 21세기의 가장 큰 문제가 될 거다. 지금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교육의 90%는 아무런 쓸모 없는 교육이 될 것이다."(하라리)
"현재 가르치고 있는 것이 50년쯤 뒤에는 아무 쓸모 없는 지식이 될 거라는 데 100%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과 일자리에 대해 다시 정의를 해야 한다. 엄청난 수의 일자리가 AI와 기계에 잠식당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미래를 인간 대(對) 기계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봐서는 안 된다. 미래의 상황을 기계와 함께하는 인간들로 만들어야 한다."(최)
◇자연선택 vs 지적 설계
"하라리 교수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 단어 선택에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당신은 진화의 주요 원리가 자연선택보다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로 대체됐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말을 부연 설명 없이 하면 창조론자들이 '할렐루야'를 부를 거다."(최)
"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지적 설계'가 신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 인간이 AI 이후 신이 될 것인지 아니면 멸종할 것인지를 묻는다. 오늘 만남은 지금까지 중국과 대만까지 포함, 수십 번 인터뷰와 대담 중 가장 지적 자극이 풍성한 최고의 인터뷰였다. 감사한다. 과학자, 철학자들은 앞장서서 닥쳐올 위험성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문제는 우리가 AI 이후의 세계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진짜 열심히 찾아야 한다."(하라리)
[하라리의 '르네상스인' 비결]
①스마트폰 끊고 ②매일 2시간씩 명상 ③나만의 질문에 집중하라
'사피엔스'를 읽은 독자들이 놀라는 대목이 있다. 하라리 교수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독서가이자 수많은 분야를 뛰어넘는 전방위 학자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학·고인류학·생물학·생태학·유전공학·인지과학·IT….
이 대목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질문'을 찾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집중할 수 있는가'이다."
겸연쩍어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비결을 일부 공개했다.
첫째,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그는 "이 걸어 다니는 컴퓨터는 시간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했다.
둘째, 하루에 두 시간씩 명상을 한다. 그리고 1년에 한두 달은 명상 피정을 한다. 그는 "명상 시간에는 완벽한 고립을 만든다. 이메일도, 전화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고 선택한다. 일상의 다른 분노도 이때 다스린다. "
셋째, 이제 나만의 질문에 집중하고 글을 쓴다. "예전에는 정보 결핍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정보의 홍수가 문제다. 나만의 질문이 있다면, 자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결국 지금 시대에 중요한 것은 모든 걸 끊고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느냐다."
현자(賢者) 같은 답에 한 번 더 물었다. "유명해지면 그게 더 어렵지 않나."
그는 숨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럴수록 집중력이 더 중요하다. 제안의 홍수다. 이걸 해라, 저걸 같이 하자…. 강한 중심이 필요하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이하 일문일답 전문]
사회: 이 대화는 과학 잡지나 전문지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니 두 교수님은 좀 더 쉽게 설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라리 : 복잡하게 말하지 말라는 거군요.
사회 : 하리리 교수님은 한 인터뷰에서, 그때 호모사피엔스는 30년 후면 멸종되거나 위태로워질 거라고 하셨죠.
하라리: 아뇨, 그래서 제가 모든 인터뷰를 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말하기를 1세기나 2세기 안에 호모사피엔스(HS)가 사라지거나 전혀 다른 존재로 업그레이드 될 거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0년이라는 시간 내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인공지능이 무수히 많은 직업시장에서 인간을 밀어내는 일, 그런 일은 30년 안에 일어날 수 있겠죠.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멸종되거나 다른 어떤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를 온전하게 대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30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아마 100년 내지 200년은 더 유지될 거라고 봅니다.
최재천 : 하지만 그때라도 저는 진화생물학자입니다. 진화생물학자에서 100년, 200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제가 생각하기엔 매우 대담한 말씀인 것 같은데, 그렇게 예측하시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요?
하라리 : 자연선택(or 자연도태)에 의한 진화에 대해 말한다면, 200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교수님 말씀이 절대적으로 옳죠. 자연선택에 의해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데는 20만 년은 족히 걸릴 거라는 추산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진화의 주요 원리가 자연선택보다는 지적 설계로 대체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지적 설계에 의해 진화를 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생명공학, 인공 지능(AI)의 활용으로... 변화의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졌기 때문에, 저는 200년, 아니 100년 안에도 호모사피엔스가 더 는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HS가 호모에렉투스(HE)나 호모하빌리스(HB)의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것처럼, 신체 능력이나 인지력이 우리 인간과는 크게 다른 독립체가 200년 안에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HS를 200년 전의 인간과 비교한다면 다소 비슷한 신체와 두뇌 크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전학적인 면이나 두뇌 구조에서 비교적 작은 변화마저 극히 드물었다고 해도, 단순한 유인원에서 비롯된 동물이 지구상에서 지배적인 형태로 바뀌기에 충분했습니다. 일단 인간의 신체와 DNA, 그리고 두뇌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하면, 그와 같은 시간 내에 비슷한 변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AI의 발전으로 또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자연선택에 의해 발전한 것이 아닐뿐더러, 더는 유기적 존재로 국한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40억년 후에, 진화는 그저 유기체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미생물이냐, 공룡이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유기적이죠. 지금 우리는 무기적 생명체의 시작을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생명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저는 AI가 유기적 생물은 아니지만, 새로운 종의 생물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이 아니라 몇 십 년, 혹은 몇 세기 안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재천 : 하지만 하라리 교수님은 저서에서, 호모사피엔스가 사람속(屬)의 다른 모든 종을 몰아내고 지금과 같은 막대한 힘을 얻는 데는 7만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기적 생명체의 출현에 대해 몇 백 년을 얘기하기에는,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라리 : 물론 제가 예언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가속화하는 기술 발달의 속도를 볼 때, 그리고 몇 십 년 전에는 전적으로 공상과학이거나 인간의 상상 너머의 일로 여겨지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흔한 것을 볼 때, 한 사람의 사학자로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기본적인 변화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극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는 변화에서 말이죠. HS가 발흥하기 전에, 중요한 생물학적 변화에 있어서 몇 백 년이나 몇 천 년이 걸린 것은 자연도태에 의해서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시작과 함께 비롯된 엄청난 가속도는 더 이상 몇 백 년, 몇 천 년을 필요로 하지 않죠. 1000년 안에 조차 엄청나게 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역사가 발전하면서 변화의 속도 또한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는 겨우 몇 십 년 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한데 지금은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지고 있죠. 그래서 이전에는 몇 만 년이 걸려 변화가 완성됐던 일이 이제는 1세기, 혹은 2세기 안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의 속도가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역사적인 시간에서조차, 보통 한 평생 이상이 지난 뒤에야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특정한 세계에서 태어나 부모나 연장자의 지도와 가르침을 받고, 세상에 적절하게 적응하는 사람이 되었죠. 그 사람이 사는 세계는 비교적 비슷한 형태였고요. 그런데 이제는 50년 후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일 거라고 예측하는 정도 밖에는요.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이든, 아이들이 50세쯤 되었을 때 그 지식의 90%는 아마 세상과 별 관계가 없는 것이 될 겁니다.
최재천 :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재 가르치고 있는 것이 50년쯤 뒤에는 아무 쓸모없는 지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에서 전혀 다른 면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진화생물학자로서 계속 걸리는 것이 있는데, 저도 한국에서 거의 같은 말을 계속 해왔습니다.
어쨌든 유전공학, 사이보그 공학, 인공 지능 같은 것들의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에 동감합니다. 그런 상자를 연 것은 여하튼 우리들이죠. 그래서 정말로 급격한(극단적인) 무엇, 정말로 대단한 무엇이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멸종은 그렇게 쉬 일어나지 않습니다. 종의 멸종이란 그 종의 마지막 개체가 사라지는 겁니다. 혹은 최소한 번식을 통해서 생존 가능한 개체군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종이 실질적으로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교수님 말씀도 맞습니다. 많은 것들이 변하리라는 것과 호모사피엔스가 무시무시한 문제에 직면하리라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멸종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를 지금에 이르게 한 것은 자연선택이라는 겁니다. 저는 자연선택의 과정 없이는, 우리만큼 강력한 종이 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변화와 위기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고, 우리 중 다수는 죽거나 힘겨운 시간을 맞게 되겠지만, 살아남는 소수가 있을 겁니다. 그 소수들이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와 같이 새로운 환경(green foundation)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마도 찾아낼 겁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유전학 실험실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헨리 우라는 중국인이 그들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지 설명하려고 하죠. 그는 그 사람들 모두 여성이고 밖에서는 번식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안 말콤이라는 마법사가 어떻게 그걸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 물음에 헨리는 모두 여성들뿐인데, 번식할 수 있겠느냐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으면서, 그것은 불가능하지만 자연이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말합니다. 전 그 대사가 정말 좋습니다. 그 대사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는 과정에서, HS가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자연선택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AI는 자연선택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발명품이죠. 저는 자연선택에 의해 창조된 산물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나온 산물보다 더 우세할 거라다고 생각합니다.
하라리 : 멸종이나 소멸에 대한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로봇이 우리 모두를 쏘아 없애는 식의 멸종은 사실상 일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HS의 소멸에 대해 말할 때, 제가 뜻한 바는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비슷한 존재는 있겠지만, 그런 존재는 우리와 크게 다르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것보다 더 많이 다를 겁니다. 그런 면에서 HS가 사라질 거라고 말한 거죠. 비록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나 DNA나 일부 사람들 속에 남아있다고 해도,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요. 또 우리가 비록 HH의 후손이지만 HH가 사라진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200년 후면, 행성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존재들이, 어떻든 우리 후손들일 수도 있지만, HS라는 이름을 더는 적용시킬 수 없는 전혀 다른 존재들일 수 있으며, 두뇌와 컴퓨터를 직접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유기체에서 무기체로 옮겨가는 것과 부분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재천 : 이미 그렇게 하고 있죠.
하라리 : 제 생각엔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일부 생물학자나 컴퓨터 과학자들은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매우 의심스럽게 여기지만 가능할 수도 있겠죠. 또한 수백만 년 동안 발전을 거듭해 온 HS인 우리는 침팬지 사촌과 매우 가까운 유인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침팬지 보다는 개미와 점점 유사해지고 있습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적인 생물이라기보다, 오히려 공동체 없이 살아가는 시스템에 점점 더 연결되고 있는 존재들이 되고 있죠. AI나 공학 없이도, 이미 우리는 개미와 침팬지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업그레이드 된 침팬지가 아닙니다. 그런 상황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AI와 가상현실 등의 발전으로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1세기나 2세기 후에는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믿을 수 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신체의 일부분을 네트워크 시스템에 계속적으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런 점은 결국 여러 다른 과학적, 철학적, 의미론적 토론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HS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멸종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 말입니다. 절반은 생체공학적이고 절반은 유기체이면서, 끊임없이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있는 사이보그가 오늘날의 우리와 전혀 다른 경험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HS의 하나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새로운 종의 다른 존재로 보아야 할까요? 결국 이런 의미론적 문제를 어떻게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
최재천 : 의미론적인 부분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독자들이 방향을 잃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말해보죠. 우리는 이미 우리의 일부를 AI와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없이는 요즘 세상에서 살아나기 어려울 겁니다. 저는 제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찾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뇌의 일부분은 사실상 그 작은 기계 안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우리는 AI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교수님의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교수님이 인간 대 AI, 즉 인간 대 기계에 대한 미래를 눈앞에 그리도록 한다는 겁니다. 교수님 말씀의 요지는 인간이 기계와 더욱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 같은데 맞죠? 인간과 기계가 대립하기보다 가까워지고 있다면, 어떻든 인간과 기계라는 두 실체가 새로운 어떤 것으로 통합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새로운 존재가 더 이상 사피엔스가 아니라는 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교수님께서 그 존재를 더는 HS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요. 어려운 논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사회: 두 교수님께서 인간의 멸종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이 다르지만, 그점(인간이 기계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같으신 것 같군요. 두 번째 질문은, 한국에서는 유발 교수님을 거의 비관주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교수님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우리 미래가 너무 걱정된다고, 디스토피아나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 정말로 일어날 것 같다고 말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교수님은 비관주의자이십니까?
하라리: 아닙니다. 현실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죠. 비관론자는 현실을 마주하고 그것을 검은 색으로 칠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늘 나쁜 일, 위험한 일만 예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세상에는 긍정적인 발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 책에서 든 예를 들자면, 폭력이 유례없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과 분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기나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많은 사람들이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한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이 인간에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폭력이 인간의 본성의 일부라고 생각했었죠. 폭력의 수준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지난 수십 년간 폭력의 수준이 극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최재천: 그럼 선생님께서 스티븐 핑커의 견해에 도덕적으로(?) 동의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하라리: 그렇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들에 관해 필연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체적인 취지에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기적고 같은 일은 아니죠. 저는 이렇게 폭력이 감소한 이유로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핵무기입니다. 핵무기가 초강대국들로 하여금 국제 정치 작동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방식으로 계속 작동하다 보면 아마 전체 인류뿐만 아니라 문명 전체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지금 같은 상황이 AI의 위험성과 관련해서도 일말의 희망을 제공합니다. 인류가 새로운 기술과 함께 시작된 위협에 직면해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감소에 대한 두 번째 이유는 물질 기반의 경제에서 지식 기반의 경제로 경제 체제의 성격의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물질 기반에서 지식 기반으로요.
대부분의 역사에서, 주요한 경제적 자산과 부의 원천은 주로 금광이나 밀밭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을 일으키거나 이웃들을 강탈하면 부자가 될 수 있었으니 폭력이 수지맞는 장사였죠. 오늘날은 대부분의 세계에서 주요한 경제적 자산은 그 나라의 지식입니다. 심지어 오일도 아닙니다. 물론 몇몇 나라들은 오일로 흥하고 있긴 하죠. 하지만 세계 경제와 비교하면 아주 미미합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켜 봤자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중국을 예를 들어 보죠, 그들은 경제적 관점에서 이런 이득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의 원천이 대개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조직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폭력과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부자가 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역을 통하는 것이지 전쟁을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런 식으로,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인류를 특징지어왔던 역동적인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관련된 구조나 기술에 변화가 있으면, 그때는 우리가 1만년 전과 똑같은 동물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극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재천: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문기자처럼 행동하면서 이 질문을 묻겠습니다. 하하, 선생님께서 전쟁이나 군대의 역사에 관해서도 많이 쓰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요.
그런데 마침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 계시니 묻겠습니다. 북한이 전쟁을 시작할까요?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하셨지요. 요즘은 누구도 진짜 전쟁을 원하지 않잖아요.
하라리: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역사나 인간 사회에 대해 말하는 일반적인 진술들의 요체는,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통계적인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런 진술들은 전반적인 추세를 설명하는 것이지 개별 사안의 발생 여부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예측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해둡시다. 1917년에 비해 2017년에 인간이 폭력으로 인해 죽을 가능성이 훨씬 더 줄어들었다고요.
하지만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거나 시리아에서 일어날지 여부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여러분은 그런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적, 개인적,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가장 쉬운 예측은 실제로 지역적이고 세계적인 예측이라는 것입니다. 그 중간에 낀 모든 것은 훨씬 더 어럽습니다.
사회: 북한과 남한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하라리: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한국이 문화적 중요성이나, 역사나, 이념이나, 지금 말한 소소한 마찰들로 볼 때, 역사상 가장 훌륭한 모범 국가 중 하나라는 겁니다. 생물학이나 생태학, 지질학 등등의 학문을 비교할 때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역사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생태학적 조건이나 유전학적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역사가들 사이에 아주 흔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의 그 반대 면에서도 가장 훌륭한 모범 국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풍토와 같은 지리학적 상황에서 살고,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 같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사회 체제와 정치 체제를 만들어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런 차이를 생물학적이나 생태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AI나 그런 등등에 대해 우리가 얘기하는 것고 관련해서도 바로 그렇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기술의 발명이 그 향후 용도를 결정할 수 없으며, 그 기술의 사회 정치적 영향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술 발달에는 결정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북한과 남한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기술을 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갖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지요. 아마 단순히 통신 기술이나 AI를 발명하는 일만으로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 다는 게 다가오는 몇 십 년을 위한 교훈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기술이 완전히 다른 사회 정치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그럴 겁니다.
최재천: 분단된 국가들의 경우 이런 상태가 더 오래 지속될수록, 즉 북한과 남한 같은 두 국가는 서로에게서 문화적으로 점점 더 멀어진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어느 시점에서는 통일되기를 원하지요. 하지만 선생님 말씀을 근거로 얘기한다면, 만약 두 국가가 문화적으로 서로로부터 더 멀어진다면 아주 힘든 상황이 될 겁니다.
하라리: 맞습니다. 더 기간이 오래될수록 더 어려운 상황이 되겠죠. 독일의 경우 40년이 지난 다음 국가를 통일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동독과 서독 지역 사이에 차이가 있긴 하죠. 하지만 아주 작은 차이입니다. 하지만 만약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 40년이 아니라 80년이나 지속된다면, 물론 더욱 어 힘들어질 겁니다. 특히 한 개인의 일생보다 더 오랫동안 이런 상황 속에 머물러 있다면,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 그 누구도 통일됐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특별히 더 어려워질 겁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한국의 경우가 정치적인 경계선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동시에 세계의 모든 중요한 문제들을 보면, 이런 정치적인 분할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적으로 봤을 때 더 이상 독립된 국가는 없고, 모든 국가들이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라든가 AI나 생명공학의 발전에 의해 유발되는 위협 같은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한 국가가, 심지어 중국이나 미국 같튼 초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인간이 이처럼 개별 국가가 이제 완전히 쓸모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좋다고 봐요. 아마 19세기나, 아니 20세기였다면 그런 국가가 소용이 있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기본적인 문제들 얘긴데, 세계의 기본적인 변화들 얘긴데, 그런 변화들은 본질적으로 대부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최재천: 세 가지 혁명에 대해서 물어봐도 되겠는지요. 인지, 농업, 과학의 혁명 말입니다. 만약 제가 새롭게 배운 한 가지를 고를 때, 혹은 제게 더없이 큰 충격으로 다가온 한 가지를 고를 때, 저는 그 시점에서 인지 혁명은 정말 꿈도 꾸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인지 혁명이 역사적으로 훨씬 더 늦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걸 이런 식으로 표현해 본다면 저는 첫째, 저자가 그 의미라고 말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저는 그 의미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눈부신 의미였더군요.
그걸 그런 방식으로 보는 것이 정말 대단해요. 우리는 늘 농업혁명이 킥스타트였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농업혁명 전에 두뇌가 바뀌었다고 말을 해요. 정말 대단해요. 이걸 꼭 물어봐야겠어요. 당신이 책에서 대답하지 않은 것인데, 어떻게 그것(인지혁명)이 일어났나요? 왜 사피엔스에게만 일어난 건가요? 왜 네안데르탈인이나 침팬지에게는 일어나지 않고? 진화생물학자로서, 전 언제나 선택압(selective pressure)을 생각합니다. 호모 에렉투스나 다른 호모 뭐뭐가 아닌 호모 사피엔스에게 일어났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당신은 그냥 돌연변이라고 했는데, 그건 저한테 너무 단순하게 느껴지거든요. (웃음)
하라리: 기본적으로 저는 모릅니다. 아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이론이 있죠. 점차적인 변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급변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들은 돌연변이 대 환경 변화에 다른 무게를 둡니다. 저한테 이 모든 논의의 주된 접근은, 제 생각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 같은데요. 아주 중요한 일이 약 5만, 6만, 7만, 8만 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동아프리카의 호모 사피엔스가 빠르게 전세계로 펴져나갔어요. 아주 빠르게요. 가히 혁명적이었죠.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유럽의 다른 호모 종을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호주에까지 갔습니다. 약 45,000년, 5만 년 전에. 미국에는 좀 나중에 가고(1만6000년 전) 호주에는 4만5000년 전에 갑니다. 앞서 아시아의 그 어떤 호모 종이나 유인원, 대형동물도 대양을 건너 호주에 간 적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무언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 것들 중 최초의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호주에 간 것 말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넓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대형동물 멸종의 시작이 있습니다. 그 시기에 물론 다른 호모 종도 멸종했죠. 인간이 초래한 첫 번째 대규모 생태계 멸종이 호주에 있었습니다. 약 4만5000년 전에요. 심지어 농업(혁명) 전에 대형동물의 반 정도가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에 이르렀습니다. 순수하게 생물학적 관점에서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죠. 그것은 6~7만 년 전에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아니야, 그건 그냥 2만 년 전, 3만 년 전이야, 프랑스의 주요 동굴벽화 시기야, 라고 한다면, 어떻게 이 종이 동아프리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뭔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로서 이 두 가지 이상한 사실에 세 번째 요소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 전에 없던 대규모 조합이 생긴 것입니다. 무역이나 정치적, 문화적 동맹처럼 한 인간을 넘어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중요한 사람들이 묻힌 장소가 있습니다. 수많은 예술품들과 함께. 50명이나 100명쯤 되는 개인이 이만한 양의 예술품을 만들고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5천 개의 목걸이나 동상들을 말이죠. 그것은 개인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합하면, 제가 내린 결론은 무언가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인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현재에는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런 일이 7만 년 전에 일어난 게 아니고, 실은 15만 년 전에 일어났는데 점차적으로 진화해서 7만 년 전쯤 중요한 질점에 이르렀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거예요. 매커니즘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어떤 유전자가 그 배경이 되었는지, 유전적인 것인지 아닌지 등등… 이 단계에서 가장 안전한 것은 무지입니다. 과학의 가장 좋은 점은 무언가 몰라도 괜찮다는 거예요. 종교가 아니니까요. 연구해서 말할 수 있으니까요.
최재천: 당신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정말 많이 그었어요. "나도 이렇게 생각해. 나도 이렇게 생각해." 하고 말이죠. 당신이 책에서 줄곧 얘기하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스토리텔러라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당신이 자세하게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 저기서 그렇게 언급했죠. 사실 제가 몇 년 전에 베를린에 있는 비숀 셰프트 스콜렉에 초청을 받았는데 정말 가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계속 연기를 했어요. 거기서 자리를 제안했을 때, '설명하는 뇌'라는 책을 쓰기 위한 프로포절을 썼어요. 그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제가 뇌과학자로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는 동물 행동(animal behavior), 자웅 선택(sexual selection), 동물 사회 혁명(animal social revolution), 개미 등을 공부했거든요. 그들이 자웅 선택이나 사회 혁명에 관해 쓰는 게 어때요? 갑자기 왜 뇌에 관해 쓰겠다는 건가요? 했고, 저는 요즘 뇌에 빠져 있어서 거기에 관해 쓰고 싶다고 했죠. 그 문제를 풀지 못하고 몇 년이 지나버렸어요. '설명하는 뇌'라는 제 아이디어가 당신에게 단서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두뇌 진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생존하는 뇌, 그 다음은 느끼는 뇌, 그 다음은 생각하는 뇌가 옵니다. 저는 다른 단계(다음 단계? another step)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설명하는 뇌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본 만화가 있는데요. 두 원시인이 앉아 있고, 다른 한 남자가 모닥불 가에서 여러 명의 여자들과 함께 있죠. 두 남자가 말하죠. 우리는 불로 요리를 해. 우리는 불로 사자를 쫓아. 쟤는 뭘 하는 거지? 그들은 그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모닥불 가에 서있는 그 남자는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얘기를 하며 밤새 이야기를 했죠. 그 남자가 유전자를 증식시키는 사람이죠. 요리나 하고 사자나 쫓는 남자들이 아니라. 이제 설명하는 뇌는 그야말로 인간의 뇌입니다. 인간의 뇌와 다른 뇌 사이에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침팬지는 설명을 못하지만, 우리는 설명을 한다는 거죠. 당신이 책에서 모두 언급했죠. 우리는 그저 '사자가 올 거야'라고 말하지 않고, '어제 연못 근처에 사자가 있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어쩌고 저쩌고' 하고 말하죠. 어쨌든 우리의 뇌는 변합니다.
어쨌든 우리 뇌는, 교수님이 말씀하고 계신 그 즈음 변화되었다는 것이죠. 아마도 우리의 뇌 구조 혹은, 잘은 모르겠지만 뇌의 연결 조직이 변화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단순히 무언가를 전달하기보다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개미도 말을 하고, 꿀벌도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개미나 꿀벌에게도 언어가 있습니다. 댄스 언어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다른 언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설명하고, 소설을 쓰고, 종교를 만들어내고, 신화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러므로 뇌의 진화, 교수님이 그 즈음에 말씀하고 계신 그것에 대해,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것에 대해 책을 쓰려고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뇌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뇌에서 설명하는 뇌로 변화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라리: 두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변화는 뇌의 내부구조와 관련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크기에서는 아무 변화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마도 뇌의 두 부분이 서로 대화를 함으로 연결되고, 이는 무언가를 설명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나아갑니다. 실제로 저는 뇌에 다양한 층이 있고, 맨 꼭대기에 뇌의 설명하는 층이 있다는 개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약간 덧붙이고자 합니다. 아니 약간 바꾸고자 합니다. 뇌는 단지 설명만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도 하고, 발명도 하고, 창조도 합니다. 이렇듯 설명보다 조금 못한 것과 조금 나은 것을 합니다. 왜냐하면 특히 과학자들이 설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과학에서 아주 흔히 일어나는 일로--한 사람이 왜 사자가 왔는지(?) 같은 것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도 어떤 설명을 만들어낸 다음, 더 나은 설명을 하는 사람이 살아남아--그가 실재를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겨주고, 설명은 점점 나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역사에서 아주 자주 일어나듯, 최고의 설명이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역사 내내 발전시킨 지배적인 수많은 이론들, 특히 어떤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이론들은, 아주 좋지 못한 설명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제 역할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누군가를 모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제 생각에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세상의 주요 종교들을 볼 때, 그 종교들은 아주 설명이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당신이 설명할 능력이 있지만, 당신 역시 제대로 설명이 안 되거나 나쁜 설명이 담긴 허구적인 소설을 만들어낼 능력도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 설명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 까닭은, 핵심은 실재를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실재를 만들어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이야기를 창작해 냄으로써 인류를 협동시키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는 유익할 것입니다. 또 협력하고는 있지만 실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재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지만 전혀 협력할 수 없는 몇몇 사람들보다 훨씬 영향력 있을 것입니다. 또 이는 오늘날 특별히 중요하며, 특별히 과학자들이 이를 유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할 때에만 진리가 널리 퍼질 것이라는 생각, 비진리는 잘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일종의 진화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이런 일이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만약 아인슈타인이나 어떤 물리학자로 하여금 물리적 실재를 설명하게 하고, 목사에게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게 한다면, 목사가 훨씬 성공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두 분 교수님께서는 너무 멀리 가셨습니다. 아시겠지만, 불과 2주일 전에 캐나다의 트뤼도 수상이 모여 있던 기자들 앞에서 양자 컴퓨터에 대해서 기자들보다도 더 자신만만하게 설명하는 걸 듣고 무척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건 그렇다치고요, 잠시 화제를 돌렸으면 합니다. 인터뷰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요.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해왔으니, 그 질문들에 대해서 교수님들의 의견을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직장이 없다는 걸 정말로 두려워합니다. 두 분 교수님은 인공지능(AI) 이후를 걱정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AI 세대 이후인 AI 시대에 대해서 교수님들께서 생각하시는 해결책이 있습니까? 하라리 교수님부터 말씀해주시죠.
하라리: 이번에도 역시 100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지만, 지식인들, 철학자들, 혹은 학자들이 앞장서서 닥쳐올 위험성을 강조함으로써 일반인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들어 특히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와 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이루어진 혁명을 이끌고 있는 전문가들이 이러한 기술들에 대해서 지극히 현실안주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일반 대중의 손에 더 많은 권력을 쥐어주고, 더 많은 자유와 경제 성장과 더 많은 평등을 가져다줄 것이라고요.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실리콘 밸리의 전문가들이 기대하고 있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걸 목격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때로 더 많은 억압과 훨씬 적은 프라이버시를 이끄는 주범이 되어 자유와는 관련이 없는 존재가 됩니다. 세계적인 평등은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이 더 많이 초래되고 있는데, 몇몇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기술들의 일부가 극히 소수의 손에 더 많은 부를 집중시킨 직접적인 결과라고 믿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같은 인식을 갖고 있는 터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제 위험스러운 가능성에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데, 가장 위험스러운 가능성 중의 하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을지라도 많은 사람들을 인력시장에서 몰아낼 것이라는 점입니다. 택시운전기사로부터 의사, 심지어 기자들까지도요. AI는 점점 더 많은 직업군에서 인간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게 지나지게 과장된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이전에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기계류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두려워했었고 또 많은 직업군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졌지만, 뒤를 이어 새로운 직업군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단지 농사꾼이 아니라 컴퓨터 과학자로 직업을 옮겨가는 결과만 나았을 뿐이니까요. 그건 나쁜 게 아니죠. 문제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신체적인 면과 인식적인 면의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산업혁명 때는 기계류가 신체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군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체했습니다. 이제 기계류나 인공지능은 인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인간능 능가할 가능성이 많아진 겁니다. 우리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는 게 실제로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감정적인 기술을 말하고 있지만, 제 생각이 틀렸다면 지적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생물학적 발견으로는 감정이라는 게 무슨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신체 내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인 과정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심지어 감정이 생물학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인간의 감정을 더 잘 파악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된 터라 감정이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감정에서조차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었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어떤 게 해결책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한 어떠한 경제적인 모델로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몇몇 사람들은 매우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아,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으므로 인간은 더 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고, 정부는 이러한 인간들에게 돈과 먹을 걸 주기만 하면 된다고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면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 맞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모티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설혹 인간들에게 먹을 걸 제공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들은 자신의 살아가는 가운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사회: 일반인은 실업에 대해 걱정한다. 특히 AI에 대해, AI가 다가오고 있는데 두 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라리: 철학 등 학계에서 AI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기 만족적으로 기술 발전이 자유를 증대하고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라이버시를 희생되고 있고 경제 불평등은 더 커졌다. 자기 만족에 취할 게 아니라 신중해야 합니다.
가장 큰 위험은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몰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에서 겪었듯이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가 또 나타날 거라고 합니다. 산업혁명 때 기계가 사람이 노동력을 대신했고 지금 AI는 인간의 인지를 대신할 수 있다는 거죠. 지금의 상황에서는 제3의 기술을 모릅니다. 어떤 이는 감정의 기술이 있지 않냐고하는데, 틀렸습니다. 감정은 초현실적인 게 아닙니다. 생명화학적 알고리즘의 결과일뿐. AI는 인간의 감정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을 더 잘하죠. 따라서 감정이 해결책이 아닙니다.
아무도 해결책을 모릅니다. 우리는 현재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모델(?)을 모릅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다면 인간은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정부가 돈과 먹을 것을 제공할거라고 하는데 우리는 경제적 사회적 모듈이 없다.
사회: 그런데 그게 뭔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죠. AI 시대, 대량실업의 대안으로 조건없는 '기본 소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최재천: 모듈을 이야기하셨는데 두 가지는 말하고 싶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첫번째 로마 시대엔 노예가 모든 일을 했습니다. 일반인은 할 일이 없고 정부가 오락을 제공했죠. 콜로세움이 오락의 상징이죠. 요즘은 노 잡 노 페이. 일이 없어 돈이 없습니다. 농업시대는 직업을 몰랐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하고 먹었죠. 우리가 직업을 개발한 것입니다. 농업 시대로 가봅시다. 모든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남았습니다. 이게 완전히 새로운 것일까요? 우리는 일, 노동이 뭔지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새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라리: 말했듯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삶의 의미는 약물이나 가상 현실이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새로운 콜로세움이죠. 인간의 두뇌와 신체는 점점 더 통제를 받게 됩니다. 즐거움을 얻기가 쉬워지는 거죠. 이게 바로 올더 헉슬리의 신세계 모델입니다. 미래의 사람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원하는 모든 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주요 메시지는 이런 문제가 사이언스 픽션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문제고 오늘날 아이들과 학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작동하는 모델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결핍의 산물이고, 지금은 풍부의 시대입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찾아 은행으로 가고 종교를 찾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모델의 부재를 인식하고 진짜 열심히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을 정말 열성적인 독자입니다. 전공은 역사인데 유전공학 등 박람강기, 박학다식하죠.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하라리: 진짜 많이 읽기는 합니다. 나는 질문을 따라갑니다. 영역에 한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왜 남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는가? 이게 가장 큰 역사상의 문제라 봅니다. 생물학과 역사에 한정하지 않는 것이죠.
나는 스마트폰이 없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고, 하루에 2시간 정도 명상을 합니다. 일년에 한번은 1~2개월 정도 칩거합니다. 휴대폰도 없고 이메일도 없이 책도 없이 말이죠. 이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전에는 정보 결핍이라면 오늘날은 정보의 홍수가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도서관 등에 가야 정보는 얻을 수 있으니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엿죠. 현대는 반대입니다. 한국은 불교 전통이 있는 국가인데, 이게 집중하는 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명상은 화가 나는 이유와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회: 유명해진 후에도 그게 가능한가요?
하라리: 더 중요합니다. 뭔가는 하자는 제안이 많으므로 집중하는 게 더 필요합니다.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게 도움이 디ㅗㅂ니다.
최재천: 당신은 자연 선택과 지적설계(인텔리전트 디자인)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5~6번 정도 되지 않나요? 당신은 창조론의 인텔리전트 디자인이 아니라고 의미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라리: 내 책을 다 읽어봤다면 오해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말하는 인텔리전트 디자인은 신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이죠.
최재천: 자칫 창조론자들은 이렇게 오해할 수 있을 겁니다. "어머, 하라리 교수는 인텔리전트 디자인을 선호한대. 자연선택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창조론자들이 '할렐루야'를 외칠 수 있거든요.
하라리: 고맙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내가 했던 인터뷰 중에 지적 자극이 가장 높았던, 최고의 흥미로운 인터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