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가십니까? 저희가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후문. 등산복 차림의 40대 남성 20여명이 무전기를 들고 병원 문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처방전을 손에 쥔 환자가 보이면 우르르 몰려가 "저희 약국으로 모시겠다"며 환자 유치 경쟁을 벌였다. 이들이 무전기로 운전기사에게 연락하면 승합차가 곧바로 달려와 환자들을 약국까지 태우고 갔다. 약을 받은 손님은 근처 지하철역까지 다시 태워다 주기도 했다.
대형 병원 앞에서 벌어지는 약국들의 이 같은 서비스는 사실 불법이다. 현행법상 약국은 호객(呼客) 행위를 할 수 없고, 영업용으로 등록되지 않은 차량으로 환자를 운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실제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9월 서울아산병원 일대에서 집중 단속을 벌여 약사 20명과 운전기사 4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하지만 이런 불법 호객 행위는 단속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선선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장은 "보건 당국이나 경찰이 단속을 해도 약국들의 호객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어 기소를 못 하거나, 재판에 넘겨도 대부분 수십만원의 벌금형에 그친다"면서 "한 번 단속한 곳을 자꾸 단속하는 것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어 결국 약국들의 자정(自淨) 노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약국이 단속 위험을 감수하면서 불법 영업을 계속 하는 것은 편의점의 상비약 판매 허용과 드러그스토어(drug store·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매장) 증가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유모(여·52)씨는 "약국 주변에 드러그스토어가 두 곳 생긴 이후 약국에서 팔던 건강보조제나 화장품류는 아예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동네 약국은 생존을 위해 의약품 배달 같은 불법 영업도 하고 있다. 약사법에 따르면,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전화 주문이나 통신판매, 의약품 배달 등도 당연히 불법이다.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 유대규 사무관은 "의약품은 환자 본인이 대면(對面)으로 복약(服藥) 지도를 받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하지만 본지가 서울 종로·동대문구 일대 약국 10곳을 조사한 결과, 이 중 7곳이 의약품을 택배로 보내주고 있었다. 3곳은 전화로도 의약품 주문을 받았다. 한 약사는 "동네 약국에선 단골 손님들이 중요하다"며 "불법인 걸 알지만 고객이 원하면 배송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일부 약사들은 "소비자의 약국 선택권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환자 편의를 위한 약국들의 서비스까지 막는 건 지나친 규제"라고 주장한다. 서울아산병원 인근에서 호객 영업을 하고 있는 한 약국 관계자는 "승합차 운행을 그만두면 오히려 손님들에게 항의가 들어온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서비스를 하는 건데 이것까지 막는 건 너무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약사는 "보건복지부가 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어 택배 배송이 불가능한 건강보조식품 상당수가 '해외 직구' 등을 통해 음성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배송되고 있다"며 "현실에 맞게 규제를 풀면 약국의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건강보조식품을 무분별하게 구입하는 행태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