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내 아파트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의 놀이터. 금발, 흑발의 어린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놀고 있었다. "Catch me(나 잡아봐라)". 백인 어린이들이었다. 얼마 뒤 한국인 어린이들이 왔다. 서로 인사를 하고 영어로 대화를 나누더니 함께 놀이터 이곳저곳을 뛰어 다니며 술래잡기를 했다.

미국인 클라크(48)씨는 "아름다운 바다와 세련된 도시가 어우러진 마린시티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안 번화가. 마린시티에는 마천루를 이루는 초고층 아파트들 사이에 고급 상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부산 해운대의 마린시티가 부산을 넘어 전국 최고 주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린시티는 1983~1987년 수영만 중 39만6000여㎡를 매립, 만들어졌다. 한동안 그냥 복주머니 모양을 한 빈 매립지였다. 1995년 선프라자 입주 이후 아파트·오피스텔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10개 아파트 단지가 지어져 있다. 모두 최고급, 최고 높이의 주거시설들이다.

이들 아파트는 '백만불 짜리' 해운대 앞 바다 풍광을 일상처럼 즐길 수 있는 '초특급 프리미엄'을 자랑한다. 각종 맛집과 가게, 깔끔한 길거리들이 다른 곳에선 누릴 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밤이 되면 야경이 '홍콩'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같은 여건 때문에 마린시티의 초고층 아파트 지역에는 부산을 비롯한 울산과 경남의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마린시티에 사는 것이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특히 마린시티에 살면서 울산과 경남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달 31일에는 고급스런 마린시티의 분위기와 바다가 어우려지는 풍광을 배경으로 한 공중파 방송이 드라마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응답하라 1988'에 출연했던 혜리 등 새로운 드라마 촬영을 위해 마린시티를 찾았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많은 영화 배우들이 바다와 세련된 도심미를 갖춘 마린시티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마린시티는 일단 높이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 건물 1~4위가 마린시티와 그 주변에 있다. 가장 높은 건물은 80층 높이의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로 아파트 중에서는 국내 최고 높이다. 그 바로 옆에는 '해운대아이파크'(72층)가 있다. 전국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 중 36% 가량이 해운대에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마린시티와 그 주변에 상당수 몰려있다. 이곳에는 단독주택이 없다. 사실상 기초생활수급자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역 아파트 가격은 5년 사이 40% 가까이 상승했다.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 마린시티에서는 외국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동네 커피숍이나 식당가에 가면 아이들을 외국인학교에 보내고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 나온 외국인 여성들이 많다.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다. 해운대와 접해 있는 기장군에는 부산국제외국인학교가 있다. 교육은 고급 외국인력이 가족 단위로 마린시티에 자리를 잡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다. 마린시티에 사는 외국인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고, 국적도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아주 다양하다. 길에서는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성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통계상으로도 드러난다. 마린시티에 사는 외국인은 688명. 마린시티 전체 인구 1만5000여명의 5% 가량 된다. 해운대구 전체의 인구 대비 외국인 비중1% 가량, 부산시 전체의 1.5% 가량에 비해 외국인 비중이 3~4배 가량 높다. 특히 미국, 영국, 스웨덴, 일본 등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많다. 688명 중 450여명이 선진국 사람들이다. 마린시티에 사는 한 외국인은 "마린시티에 집을 마련하고, 울산이나 경남 거제 쪽으로 출퇴근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같은 외국인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좋다"고 말했다.

마린시티 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걸어서 해운대 해수욕장과 동백섬까지 갈 수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앞 마당처럼, 동백섬을 정원처럼 즐길 수 있어 이곳에서 아침 저녁으로 산보를 하는 주민들이 많다. 서울에서 내려와 5년째 마린시티에 살고 있는 이성현(44)씨는 "마린시티에 산다고 하면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워할 정도로 알려져 있고, 여름에는 마린시티와 해운대를 보기 위해 부산으로 직접 오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