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선 해마다 '바게트 콩쿠르'가 열린다. 프랑스인 주식 바게트는 겉은 파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빵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길이 55~65㎝, 무게 250~300g 기준에 맞춰 밀가루를 반죽한다. 오븐에 반죽을 넣으면 겉이 노릇해지면서 서서히 부풀어올라 껍질이 터진다. 반죽 속 효모가 내는 가스가 열을 받아 폭발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우승한 빵집은 한 해 동안 대통령 관저 엘리제궁에 바게트를 댄다.
▶미생물 효모는 밀가루에 든 당분을 먹고서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배출한다. 밀가루 조직 글루텐이 이산화탄소를 꽉 붙들면서 반죽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른다. 구운 빵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도 효모 때문이다. 효모는 빵 모양과 맛을 결정한다. 하지만 대부분 빨리 부풀어오르도록 개량해 생산한 이스트를 쓴다. 발효력은 뛰어나지만 맛은 단조롭다.
▶일본 돗토리시에서 차로 30분 가는 시골 폐교에 '다루마리'라는 빵집이 있다. 주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서른 살 넘어 제빵을 배우다 '발효'에 눈을 떴다. 건강하고 풍미가 빼어난 빵을 만들려면 공장에서 배양한 효모 대신 천연 효모를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연계에서 채집한 효모와 일본 술 빚는 쌀누룩으로 '주종(酒種)'을 만들어 '일본 식빵'을 내놓았다. 그 빵 맛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든다.
▶'파리바게뜨'로 이름난 식품 기업 SPC그룹이 서울대와 함께 전통 누룩에서 제빵용 천연 효모를 찾아냈다고 한다. 연구팀은 지리산과 청풍호를 비롯한 청정 지역을 10여년 돌며 미생물 1만여종을 채집했다. 꿀·누룩 같은 토종 식품을 찾아 5일장을 누볐다. 채취한 미생물 가운데 제빵에 어울릴 만한 효모를 1000여종 골라내 분석했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다이아몬드 찾듯' 광주광역시 인근 누룩에서 가장 알맞은 효모를 발견했다고 한다. 토종 천연 효모로 만든 빵을 먹어보니 여느 빵과 다르다. 구수하고 쫀득쫀득하다.
▶11년 전 토종 효모를 발굴하자고 나선 이가 허영인 SPC 회장이다. 30대에 미국 제빵 유학을 다녀온 빵 전문가다. 그를 모델로 삼아 만든 드라마가 '제빵왕 김탁구'다. SPC 그룹은 한 해 70억원어치씩 수입하던 효모를 모두 우리 토종 효모로 바꿀 계획이다. '천연'과 '로컬(우리 것)'은 현대 식품·음식의 양대 명제(命題)다. SPC는 토종 효모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토종 효모 빵이 성공하면 우리 음식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토종 효모가 세계를 넘보지 말란 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