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모터사이클은 폭주족이 타는 위험한 교통 수단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골프 다음은 모터사이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취미 생활의 하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회 2016년 서울모터사이클쇼'는 개막 이전부터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나흘 동안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만 4만명에 달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모터사이클이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인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이륜차산업협회(KOMIA) 집계에 따르면, 2012년 1만365대 규모이던 수입 대형 모터사이클 판매량은 지난해 2만879대 규모로 3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배기량 125㏄ 이하 배달 수요가 주류를 이루는 국산 모터사이클 시장은 같은 기간 5만8000대에서 5만5000대로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터사이클이 '배달용'에서 '레저용'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오토바이'라는 일본식 조어 대신 '모터사이클'이나 '바이크'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분위기 변화를 보여준다. 예전엔 오토바이를 타면 폭주족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취미로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사람을 '라이더'라고 부른다. 이들이 '라이딩'을 즐기기 위해 자주 찾는 경기도나 강원도 지역의 식당이나 카페는 '라이더 환영'이라는 문구를 내붙이고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나 캠핑족 못잖게 대접한다.
레저용으로 각광받는 모터사이클은 배기량이 1800~2500㏄로, 모양과 성능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장거리 여행을 즐기기 위한 투어러, 빠른 속도와 코너링을 즐기는 수퍼 스포츠, 비포장 도로에서 장애물을 넘으며 즐기는 엔듀로, 도심에서 유용한 스쿠터 등이 대표적이다.
BMW와 할리 데이비슨으로 대표되는 투어러는 전문직 종사자에게 새로운 취미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베스파와 프랑스 푸조로 대표되는 유럽제 패션 스쿠터는 국산 스쿠터보다 두세 배 이상 비싼데도 패션에 관심이 많은 20~30대를 중심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20~30대 여성도 도로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다.
모터사이클이 마니아의 전유물에서 대중 레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제대로 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제대로 타는 법을 배울 곳도 없이 면허 시험을 쳐야 했지만, 최근에는 운전면허 학원에서 2종 소형 면허를 딸 수 있게 된 데다 올바른 라이딩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교습소도 많이 생겨났다. 국내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대림이 운영 중인 대림모토스쿨은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교습소다. 면허 취득뿐 아니라 안전한 라이딩을 위한 심화 교육도 실시한다. 2012년 이후 대형 모터사이클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BMW는 이천에 위치한 물류창고 내에 '엔듀로 파크'를 설치해 정기적으로 라이딩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센터에서도 강습회를 연다.
불량 청소년의 탈것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는 라이더의 자정 노력도 한몫했다. 동호회 차원에서 헬멧과 보호대 등의 안전 장구 착용을 권장하는 등 '어른의 취미'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자동차 운전자의 눈에 쉽게 띌 수 있게 낮에도 헤드라이트가 자동으로 켜지도록 하는 등 이륜차 관련 법규가 개선된 것도 사고율 감소와 인식 변화에 영향을 줬다.
과거 거리에서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폭주족의 바이크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수퍼 스포츠 바이크도 최근에는 영암 국제 서킷이나 인제 스피디움 등 일반 차량이 없는 전용 경기장에서 즐기는 인구가 늘었다. 경기장까지 트레일러에 싣고 이동하는 경우도 많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스포츠로 즐기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상훈 BMW 모토라드 이사는 "독일에서도 예전에는 모터사이클이라고 하면 폭주족 이미지가 강했다"면서 "국내 모터사이클 문화가 성숙기에 들어선 데다 신규 라이더의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동호인의 숫자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진입을 막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지만, 라이딩 문화가 좀 더 성숙되면 언젠가는 선입견도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동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레옹' 편집장
모터사이클 즐기는 유명인들
모터사이클 라이딩은 해외에선 멋진 취미라는 인식이 상당히 퍼져 있다. 많은 유명 인사가 자신이 '라이더'임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배우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는 자타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모터사이클광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라이딩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할 정도다. '매트릭스'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키아누 리브스는 모터사이클 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완 맥그리거는 BMW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를 일주하며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힐턴 가문의 상속녀인 패리스 힐턴은 2011년 모터사이클 레이싱 팀을 창단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힐턴은 모터사이클을 탈 줄 모르지만 핑크색 모터사이클을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 빈 사이에서 태어난 두 왕자도 유명한 라이더다.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왕실 소유 목장에서 모터사이클 라이딩을 배웠다. 2008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610㎞ 거리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엔듀로 아프리카'라는 자선 모금 행사에 참가해 아프리카 아동을 돕는 기금을 모았다.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을 당시 현지에서 노획한 모터사이클을 타고 사막을 달리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주둔 지역 노출로 경호상의 문제가 제기돼 본국으로 송환되기도 했다.
국내 연예계에도 라이더가 많다. 배우 중에서는 최민수·김상중·김민준·조승우가 열혈 라이더로 유명하며, 가수 중에서는 이문세·정지훈(비)도 활발하게 라이딩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계 인사 중에도 모터사이클 애호가가 적지 않다. 두산그룹의 박정원 신임 회장은 희귀 모터사이클을 여러 대 소유하고 있는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자전거 애호가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모터사이클 실력이 상당하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한때 BMW 모터사이클 클럽 회장을 맡으며 안전 라이딩 강습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라이딩을 그만둔 상태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도 오랜 기간 모터사이클을 타온 베테랑 애호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수석대표를 맡은 김종훈 국회의원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시간 날 때마다 지인과 함께 라이딩을 즐긴다. / 김기홍 기자
바이크에 살고 바이크에 죽는남자 vs 남자
모터사이클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마음속에만 간직하는 로망이 아니다. 대형 모터사이클을 취미로 즐기는 이들은 나날이 늘고 있다. 주변에서도 주말마다 동호회원들과 열을 지어 투어링을 나서는 라이더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전문가는 국내 대형 모터사이클 라이더가 최소 2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멋들어진 자연과 길 위에서 맺는 새로운 인연, 그리고 진짜 나의 얼굴.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전 세계 10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할리데이비슨 공식 동호회 H.O.G.(Harley Owners Group)의 코리아챕터 윤귀동(54·의류사업) 회장은 20년 넘게 할리만을 고집한 진정한 할리 마니아다. 10년간 H.O.G. 코리아챕터 경기지회장을 맡아 활동하다 올 초 코리아챕터 회장으로 취임했다. H.O.G. 코리아챕터는 14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규모의 모터사이클 동호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3 때 처음 바이크를 접했다는 윤 회장은 1989년 할리에 입문했다. 현재 그가 타는 모델은 할리의 베스트셀러 ‘울트라 클래식 일렉트라 글라이드’. 뛰어난 승차감과 웅장한 디자인을 앞세운 투어링 계열의 모터사이클이다. 2인용 시트가 장착되어 아내와 함께 동승하기에 안성맞춤. “90년대 초부터 아내와 함께 투어링을 했어요. 처음에는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전혀! 오히려 아내가 주말투어를 기다릴 정도입니다.”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아내와의 투어링은 최상의 로맨틱 데이트라 할 만하다.
윤 회장은 할리데이비슨을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로 안전성을 꼽는다.
“바이크 자체의 안전성도 높지만 할리만의 문화가 남다릅니다. 절대 고속으로 주행하는 법이 없죠. 평균시속 80~100㎞로 달립니다. 투어링을 함께 하는 회원들 역시 ‘준법운전’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어요.”
내친김에 윤 회장은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우리가 터프한 이미지로만 각인된 건 아쉬워요. 바이크 조작 자체가 워낙 섬세한 작업이라 라이더들의 성향도 대체로 섬세한데 말이죠. 가죽재킷과 워커요? 이 역시 멋보다는 안전을 위한 장치죠. 넘어지거나 바퀴에 밟히더라도 외상을 입을 염려가 거의 없습니다.”
사회생활의 고단함을 라이딩을 통해 풀어낸다는 윤 회장. 동호회 회원들과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멋진 풍광, 맛있는 음식을 즐기다 보면 에너지가 절로 생긴다는 그는 바이크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말한다.
BMW 모터사이클 동호회 MCK(Motorrad Club of Korea)의 김계상(57·석유유통사업) 회장은 현재 BMW의 R1200GS와 K1600GTL을 탄다. 이들은 속도에서 단연 돋보이는 모델. BMW의 간판스타 K1600GTL의 경우 최고 시속이 자그마치 280㎞에 달하고, 온로드와 오프로드 어디에서도 손색이 없는 R1200GS 역시 최고 시속이 250㎞에 이른다.
결혼 후 아내의 반대 때문에 바이크를 처분한 그는 5년 전 화려한 복귀를 선언했다. 나이 쉰에 접어들면서 불현듯 바이크 생각이 났다고.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았어요. 탈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러다 잠시 잊고 지내던 바이크를 떠올렸고,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야겠다 싶었습니다.”
그 길로 그는 바로 모터사이클을 구입하고 일주일 만에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했다. 무게가 250㎏에 육박하는 대형 바이크를 조종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 라이딩 스쿨에서 ‘집중 과외’를 받은 후 MCK 활동을 통해 자연히 기량을 늘렸다.
김 회장은 매주 일요일이면 10~20명의 MCK 회원과 함께 강원도 등지로 주말투어를 떠난다. 봄, 가을 열리는 MCK 1박 2일 정기투어나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회원들과 수시로 즐기는 전국 투어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그룹 라이딩에서는 원하는 만큼의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다. 로드마스터가 지시하는 룰을 지켜야 하기 때문. “답답할 때가 있지만 그 같은 룰을 지키는 게 라이딩 투어의 기본”이라고 김 회장은 말한다. 그러나 라이딩 중간 자유구간이 주어졌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시속 250㎞로 질주하는 기분이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는 그다.
구불구불한 와인딩 코스 역시 그가 열광하는 것 중 하나다. 강원도 홍천 오대산의 구룡령 고개를 넘어가면 근사한 와인딩 로드가 나오는데, 이곳이 그가 자주 찾는 코스다.
“생각하면 머리가 핑핑 돌죠. 30분 이상 와인딩을 하다 보면 어지럽고 취한 기분이 듭니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못할 일이죠.”
초보를 위한 모터사이클 상식
모터사이클은 용도에 따라 크게 온로드(onroad)와 오프로드(offroad), R-타입으로 나뉜다.
온로드는 일반적인 포장도로를 달리는 용도를 말한다. 장거리 주행에 적합한 투어링 바이크, 높은 핸들과 낮은 좌석으로 대변되는 아메리카 스타일의 크루저, 경주용 바이크를 시판용으로 만든 스포츠 바이크, 바이크의 외장을 감싸는 카울이 덮여 있지 않아 엔진이나 프레임이 고스란히 드러난 형태의 네이키드 바이크, 그리고 배달 등 각종 비즈니스에 주로 이용되는 언더본 바이크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용도의 오프로드는 산악용과 묘기용이 있다. 온로드보다 차체가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숲이나 해안 코스 등에서 타는 엔듀로 바이크, 익스트림 스포츠용 트라이얼 바이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R-타입은 공식 경주용으로, 최고시속이 300㎞가 넘는 기종도 있다.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겸하는 바이크도 있다. 온로드 바이크는 험한 길을 달리기가 어렵고, 오프로드 바이크는 일반 도로에서 승차감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듀얼바이크는 온·오프로드를 모두 달릴 수 있도록 만든 다목적 바이크인 셈이다. 듀얼 퍼포즈 또는 멀티 퍼포즈 바이크로 불린다.
대형 바이크의 오너 라이더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125㏄ 이상의 바이크를 몰기 위해서는 2종 소형 면허가 필요하다. 자동차 면허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2종 소형 면허를 따야 한다. 자동차 면허가 있다면 필기시험은 면제다. 참고로 125㏄ 미만의 스쿠터는 원동기형 2륜차로 분류된다. 이는 1·2종 보통 자동차 면허만 있으면 별도의 면허 없이 몰 수 있다.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통행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며, 대부분의 국가는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통행 기준을 엔진 배기량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배기량의 모터사이클에 대해 고속도로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도로교통법 제63조). 긴급자동차로 지정된 사이카 및 소방용 모터사이클을 제외하고 말이다. 위반 시 3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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