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요즘 서른 살'들에 대해 성토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좀 서글펐다. 나도 별수 없이 꼰대가 되는구나…. 쓸쓸한 마음에 도서관에 들러 내 또래들이 서른 즈음 열광했던 책을 빌려 보았다.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이 쓴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는 2008년 출간 이래 60만 부 넘게 팔렸다. 표지 그림도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창가의 소녀'(1925). 마드리드의 국립 소피아왕비 예술센터에 소장돼 있다.
활짝 열린 창으로 하염없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소녀의 모델은 화가의 누이동생 안나 마리아다. 달리는 1923~26년 네 살 아래 여동생을 집중해 그렸다. 달리 초기작 중 대표작인 이 그림의 모델을 섰을 때 안나 마리아는 17세였다.
"그를 위해 포즈를 취하면서 나는 단 한 번도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지겨워한 적이 없다. 풍경은 그 순간부터 영원히 나의 일부가 되었다. 살바도르는 항상 창문 곁에 있는 나를 그렸다!"
1949년 낸 책에서 안나 마리아는 이렇게 회고한다. '창가의 소녀' 배경은 달리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카다케스의 아버지 집 1층 방이다. 푸른 빛이 오묘하게 도는 소녀 뒷모습에 이끌려 창 밖 바다로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화가가 왼쪽 창문을 과감히 생략해 버렸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그림은 1925년 11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달리의 첫 개인전에 선보였고 피카소의 극찬을 받았다.
안나 마리아에게 서른 살은 고난의 시기였다. 그녀가 28세 때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다. 30세 때인 1938년 반(反)정부 스파이 누명을 쓰고 체포당한다. 투옥 중 고문과 강간을 당했고 후유증으로 평생 지독한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편집자는 스페인 여행 중 이 그림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림을 책 표지로 쓰자고 제안했을 때 회사 동료들은 반대했다. 우울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우울한 정조에 수많은 서른 살이 공감했다. "표지가 눈길을 끌어 책을 샀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서른 살 안팎 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야단맞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다. 부모의 보호 아래 공부만 잘하면 웬만한 잘못쯤은 그냥 용서받을 수 있었던 그들은 비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었을 뿐인데도, 그것을 비난으로 받아들여 심하게 좌절하고 상처를 입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서른 살이 직장에서 괴로운 까닭을 분석한 이 구절에서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들과 못마땅해하며 지적했던 '요즘 서른 살'의 문제점과 똑같았다. 그래, 나도 서른 살 땐 이랬었지…. 마흔에 가까워 갈수록 서른의 미숙함에 너그럽지 못하게 되는 것은 여전히 내 안에 있는 그 시절의 나약함과 다시 마주치는 게 싫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창가의 소녀'와 같은 해에 발표된 '위대한 개츠비'의 문장 하나를 가만히 읊어보았다.
"서른 살― 고독 속의 십 년을 약속하는 나이, 독신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나이, 야심이라는 서류 가방도 점점 얄팍해지는 나이, 머리카락도 점점 줄어드는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