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파동이나 정당 간 후보 단일화, 각종 네거티브전에 가려 각 정당이 어떤 총선 공약들을 내놓았는지 한눈에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①최저임금 인상, ②가계부채 대책, ③법인세 인상, ④임대주택 확대 같은 경제·복지 공약을 중심으로 20대 총선 공약들을 비교, 검증해봤다.
새누리당까지 최저임금 인상을 약속하면서 최저임금이 총선의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강봉균 공동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3일 추가 경제 공약을 발표하면서 "20대 국회 회기 내에 시간당 최저임금을 8000~9000원(현재는 6030원)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미 최저임금 인상 공약을 선점한 야당은 여당의 참전을 반기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각각 2020년, 2019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상태다. 더민주 공약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매년 13.5%씩 올려야 한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 불평등과 빈곤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 세계 경제학계도 이를 두고 지난 20년여간 뜨거운 논쟁을 벌여왔다.
먼저 최저임금이 기업의 고용을 위축시켜 오히려 비숙련 근로자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전미경제학회가 2011년 회원들을 상대로 '최저임금제가 비숙련 근로자의 실업을 증가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동의한다'와 '조건부로 동의한다'는 응답이 각각 39%와 34%로 나왔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편의점 점주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대신 가족이나 본인이 직접 일할 수도 있고,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아예 가계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새누리당은 7일 한국판 양적 완화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20대 국회가 구성되는 대로 한국은행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러 논란에도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판 양적 완화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사를 재차 밝힌 셈이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제로(0) 금리 정책도 제대로 시행해 보지 않고 '양적 완화'로 건너뛰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제안한 한국판 양적 완화는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과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하는 MBS(주택담보부증권)를 한국은행이 사들이게 하는 게 골자다. 한은이 산금채를 사줘서 생긴 돈은 기업 구조조정에 투입하고, MBS를 사줌으로써 금융권에 넘긴 돈으로는 가계의 대출 기간을 늘려줘 빚 부담을 분산시킨다는 게 강 위원장의 구상이다. 한은이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 부채에 돈을 뿌리면서 경기 침체를 치유하는 돌격대 역할을 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한은법에는 한은이 산금채나 MBS를 매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래서 한은이 난색을 표시하자, 이날 여당이 한은법을 개정해서라도 발판을 깔아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야당은 가계 부채 대책으로 '1000만원 이하 묵은빚 탕감'을 주장하고 있고,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선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저소득층 가계들이 장기간 연체한 소액 부채를 탕감해 주겠다'는 가계 부채 대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을 모두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 방안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9번을 배정받은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의 제윤경 대표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 대표는 선거 유세에서 "100만명 이상의 채무자들이 가진 빚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약에 대해서는 "묵은빚을 없앤다고 해도 서민층의 소비 여력이 되살아나기는 어렵고, 오히려 도덕적 해이만 야기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1000만원을 초과하는 빚을 가진 사람들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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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늘어나는 복지 지출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복지 확대에는 찬성하지만, 복지 재원이 되는 세금을 더 내는 것에는 결사 반대하는 국민이 훨씬 더 많은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법인세를 올려 기업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자'는 주장은 이명박 정부 이후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 복지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려면 증세(增稅)가 불가피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법인세율이 낮은 만큼 법인세 인상이 필요하다는 게 야당 측 논리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기업들의 사내유보금만 늘리는 바람에 낙수 효과는 없고 중산층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며 이명박 정부 때 시행한 법인세 인하를 여당의 대표적인 경제 실정(失政) 사례로 꼽았다.
반면 여당과 재계는 기업의 세 부담이 이미 다른 나라에 비해 과중한 편이고, 국제적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며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과연 우리나라 기업들이 부담하는 세금은 외국과 비교해 높은 편일까, 아니면 낮은 편일까.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들의 탈출 현상이 현실화될까.
외국과 비교해 한국 기업의 세 부담이 너무 낮다는 야당의 주장과, 이미 충분하다는 여당의 주장 모두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
먼저 세율로 보면 2015년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19위다. 미국(35%), 프랑스(34.4%) 등은 물론 OECD 평균(23.19%)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기업의 고용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각종 조세 감면과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기업들이 실제 부담하는 법인세 실질 실효세율은 2008년 18.3%에서 2013년 14.2%로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기업이 내는 세금 규모는 외국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은 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3.7%로 OECD 전체 국가 중 여섯째로 높다.
미국은 법인세율이 한국보다 13%포인트나 높지만, GDP대비 법인세 비중은 2.3%로 한국보다 훨씬 낮다. 총 조세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14%로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에 이어 OECD 국가 중 넷째로 높다. 특히 대기업 쏠림이 심해 전체 50여만개 기업 중 0.1%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64%를 내고 있다. ▶기사 더보기
주요 정당은 20대 총선에서 20~30대의 표심(票心)을 잡기 위해 대학생과 신혼부부용 임대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는 공약을 일제히 발표했다. '임대주택 확대'는 선거 때마다 나온 단골 메뉴다. 하지만 이번엔 타깃이 약간 달라졌다.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을 목표로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월 "주거 불안정은 청년 일자리 감소와 결혼·출산의 유예를 낳고, 나라의 미래에까지 큰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공약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젊은 층을 위한 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을 2017년까지 14만 가구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공공 임대주택을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15만 가구씩 공급하고, 임대주택 재고량 목표인 250만 가구 중 3분의 1(38만 가구)을 신혼부부에게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공공임대 주택 공급 재원으로는 국민연금에서 매년 10조원씩, 10년간 총 10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역시 국민연금을 활용해 만 35세 미만, 신혼부부 대상으로 '청년희망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민의당은 구체적인 투입 금액과 목표 가구 수는 밝히지 않았다.
행복주택의 취지는 좋지만, 교통 여건이 뛰어난 도심에 소형 아파트 14만 가구를 모두 지을 수 있는 국·공유지를 찾기는 어렵다. 재원도 문제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따르면 국·공유지에 행복주택을 짓는 비용은 평균 1억2100만원이다. 재정과 주택도시기금이 50%, LH가 30%, 나머지 20%는 입주자가 각각 부담한다. 입주자 부담을 제외하면 한 채당 1억원 정도 공공에서 부담하는데, 14만 가구를 지으려면 공적자금 14조원이 든다. LH 관계자는 "입주자가 임대료(월 10만~20만원)를 내더라도 행복주택 1채를 지을 때마다 1330만원씩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134조원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LH 입장에선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임대주택 공급 재원으로 512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을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시세보다 싸게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국민연금을 투자하면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전 국민의 노후가 걸린 국민연금 투자처 결정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부동산은 시세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있어 안정성을 중시하는 국민연금 자산 운용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