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외규장각 의궤 보셨어요? 조선실에 전시돼 있는데."
"외규… 뭐라고요? 그게 뭐예요?"
토요일인 9일 오후 3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에서 전시를 보고 나오는 관람객마다 붙잡고 물었다. 주말인 데다 '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 특별전이 폐막을 하루 앞두고 있어 박물관은 북새통이었다. 이날 두 시간 동안 출구에서 만난 100여 명 중 '외규장각 의궤'를 봤다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프랑스에서 돌려받은 외규장각 의궤, 기억 안 나세요?" 대답 없는 질문만 허공에 메아리쳤다.
◇프랑스서 귀환 5년, 갱신 이미 완료
지난 2011년 4월 14일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에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儀軌·조선 왕실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책)가 돌아왔다. '145년 만의 귀향'이라며 떠들썩했다. 이날 유일본 8권을 포함해 75권이 먼저 돌아왔고,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나머지 책들도 착착 도착했다. 6월엔 광화문광장과 경복궁에서 성대한 환영 행사가 열렸다. 귀국 직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는 두 달 동안 20만명 넘게 몰릴 만큼 국민적 관심이 뜨거웠다. 하지만 완전한 반환이 아니라 '영구 임대' 형식이라는 점, 5년마다 갱신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14일이면 의궤가 돌아온 지 5년이 된다. 지난 2월 2일 '대여 합의'가 갱신됐다. 한국과 프랑스 외교부는 '2016년 2월 7일부터 5년 동안 대여를 연장한다'는 합의문을 교환했고, 3월엔 소장 기관인 프랑스국립도서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사이에 갱신 절차가 완료됐다. 장상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어차피 최초 합의문에 '영구 임대'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5년마다 하는 갱신은 최소한의 형식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다만 소유권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한계는 있다. 지난해 12월 문화재청이 국내에 있는 조선왕조 의궤 2756권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지만, 외규장각 의궤는 소유권이 프랑스에 있다는 이유로 빠졌다.
◇"외규장각 의궤가 뭐예요?"… 대중은 무관심
귀환 5년, 뜨거웠던 관심도 사그라졌다. 박물관은 지난 2월부터 상설전시관 1층 조선 4실에 특별 코너를 만들어 외규장각 의궤 5권을 전시하고 있다.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는 행렬을 그린 반차도를 펼쳐놓고, 문효세자(정조의 첫째 아들·1782~1786)의 무덤을 조성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와 함께 실제 무덤에서 출토된 항아리와 벼루, 청화백자 등을 나란히 전시했다.
하지만 대다수 관람객은 무심히 지나갔다. 심지어 의궤가 전시된 조선실 출구로 자리를 옮겨 물었는데도 책을 보고 나왔다는 사람이 없었다. "태조 이성계 어진은 봤는데 의궤는 못 봤다" "아, 책이 있었는데 그게 프랑스에서 온 의궤였냐" "다시 가서 봐야겠다"는 답이 줄을 이었다. 별도의 설명문 없이 의궤 밑에 '2011년 입수, 외규 221' 하는 식으로만 소개한 전시 방식 탓이다. 커플끼리 온 전미경(32·회사원)씨는 "책에 얽힌 사연을 꼼꼼히 소개했으면 눈여겨봤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기자가 만난 100여 명 중 유일하게 "의궤를 봤다"고 답한 유경조(22·공무원 시험 준비 중)씨는 "프랑스에서 돌려받은 그 의궤 맞죠? 고등학교 때 뉴스에서 봐서 기억한다"며 "왕이 보던 거라 역시 색감도 좋고 묘사도 세밀하다"고 했다.
◇연구 작업은 착착 진행 중
연구와 활용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3년부터 시작한 외규장각 의궤 종합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끝내고 2월 1일부터 홈페이지(http://uigwe.museum.go.kr)에서 297권 전체의 원문 이미지와 텍스트를 공개하고 있다.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도 3권까지 나왔다. 외규장각 의궤는 특히 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된 만큼 표지와 종이, 글씨체와 그림 등에 당대 최고의 예술과 기술이 집약돼 있다. 이재정 학예연구관은 "어람용 의궤는 국내에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연구가 부족했었는데 외규장각 의궤 덕분에 연구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총서 5권까지 낼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