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미국 대학들이 2016학년도 대입 정시 합격자를 발표하면서 유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 학부모들이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높은 관심과 달리 최근 국내 고교 졸업생들의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미국 명문대의 합격 실적이 주춤하고 있다. 특히 아이비리그 빅(big) 3로 불리는 하버드대·예일대·프린스턴대와 서부 지역 최고 명문 스탠퍼드대의 머릿글자를 딴 '힙스(HYPS)' 합격생은 감소 추세다. 대원외고는 5년 전인 2012학년도에 10건의 합격 실적을 낸 후 숫자가 매년 줄어들었다. 지난 6일 기준으로 2016학년도 힙스 합격자는 아직 없다. 용인한국외국어대부설고는 자율형사립고로 입학한 학생들이 처음 졸업한 2014년 힙스 합격 실적이 8건이었다. 올해에는 지난 4일 기준 5건에 그쳤다. 국내에서 유학 성과가 가장 뛰어난 외대부고, 민사고, 대원외고 세 학교의 최근 실적을 통해 유학 트렌드를 분석해 봤다.
◇유학 신중하게 고려하는 분위기 퍼져
해외 대학 입시 성과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유학 준비생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내년 외대부고 국제과정을 졸업할 학생들은 70여 명이다. 올해까지는 매년 100여명씩 배출됐다. 대원외고의 경우 지난 2012년 국제과정(GLP·Global Leadership Program)을 졸업한 학생이 94명인데 올해에는 32명뿐이다. 내년에는 11명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위준호 대원외고 국제부장은 "국제과정을 정규교육과정에 편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이 줄어든다"고 했다. 국제과정 졸업생이 줄어드는 만큼 대원외고 힙스 합격생도 2012년 10명에서 2013년 7명, 2014년 5명, 2015년 3명, 2016년 0명으로 줄었다.
아이비리그라는 이름값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지난해 한 명문 주립대에 진학한 박모(19)군은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한 곳과 명문 주립대에 동시 합격했지만 장학금을 고려해 주립대에 진학했다"며 "아이비리그 대학에 준하는 교육을 제공한다는 퍼블릭아이비 대학이어서 교육 환경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정기원 민사고 해외대학 어드바이저는 "학생이 이름 있는 대학에 합격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소질과 적성에 걸맞은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느냐에 관심을 둔다"며 "올해 졸업생 중 절반이 재정 지원과 장학금을 받고 합격해 매우 바람직한 결과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유학을 고려했던 학생들이 국내 대학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경우도 많다. 국제학교에서 아이비리그를 목표로 공부하던 김모(19)양은 지난해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해외 대학과 비교해도 교육과정의 질이 높으며 향후 취업까지 생각했을 때 국내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유리할 거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내 대학에 대한 신뢰도가 쌓인 것도 한몫했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등 글로벌 역량을 키워준다는 대학들이 졸업생을 배출하며 신뢰도를 쌓은 셈이다. 위준호 국제부장은 "해외 유학 수요를 국내 대학이 흡수하고 있다"고 했다.
이공계를 장려하는 국내 교육정책이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외대부고가 국제과정 정원을 105명에서 70명으로 줄인 이유는 자연과학과정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다. 조경호 외대부고 국제부장은 "학교가 늘어난 이과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논의를 거쳐 국제과정 정원을 감축했다"고 밝혔다.
이공계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경우는 늘고 있다. 조경호 부장의 말이다. "올해 하버드대 등을 포함해 11개 명문대에 합격한 박정연양도 이과 성향의 학생입니다. 지난해 예일대에 합격한 3명 중 2명이 예일대를 포기하고 스탠퍼드대에 입학했어요. 스탠퍼드대가 이공계열이 강하기 때문이죠." 한 유학업체 입시관계자는 "연구성향이 강한 아이들에게는 아이비리그보다 MIT, 칼텍, 스탠퍼드 등 이공계에 특화한 학교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해외 지원자 증가로 경쟁률 상승
국내 학생들과 경쟁하는 해외 지원자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10년 전 아이비리그 8개 대학의 평균 지원자는 약 2만261명이었다. 5년 전에는 약 3만717명으로, 10년 전보다 50%나 증가했다. 올해에는 평균 3만4113명이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격자 수는 큰 변화가 없어 아이비리그 대학 합격률은 거의 매년 최저 기록을 경신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인도에서 우수한 지원자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유지영 구루어학원장은 "중국에서 유학 붐이 일며 우수한 경쟁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지난 2007년 북일고 국제반 설립을 이끌고 부장을 맡았던 이영준 솔리스교육연구소 대표는 "미국 최상위권 대학은 출신 국가나 미국 시민권 유무 등으로 합격생 비율을 정해둔다"며 "중국, 인도 지원자들이 최근 크게 늘어나 같은 분류로 묶인 국내 학생들이 합격하기 더욱 어려워졌다"고 했다. 올해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에 입학하는 길여경(북일고 졸업)양은 "2016학년도 신입생들만 초대받은 칼텍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입한 374명(지난 5일 기준) 중 인도계 이름이 약 40%를 차지한다"고 했다.
국내 학생들의 비교과활동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영준 대표는 "아이비리그 등 최상위권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SAT, GPA 등 정량평가할 수 있는 점수가 대동소이하다"며 "합격을 가르는 것은 대학의 인재상에 맞춘 비교과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최상위권 대학은 관심 분야에 대해 스스로 도전하고 여기서 성과를 거두는 이야기를 원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연구실에서 실험만 하거나 소논문을 작성하고 모의유엔에 참석하는 데 그치죠. 외국에서는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려는 고교생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누구나 이용하도록 공개하는 경우가 있어요.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고 실행해 실제로 큰 성과를 거둔 학생도 있습니다. 이들과 비교하면 실질적인 경험이 부족한 편입니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