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의 문화사|헤더 안트 앤더슨 지음|이상원 옮김|니케북스|496쪽|2만2000원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윌리엄 시트웰 지음|안지은 옮김|에쎄|608쪽|2만6000원

"순전히 우연의 결과였다. 밀을 끓이던 냄비를 불에 올려 두고 깜박 잊어서 망치게 되자, 형제는 그냥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에 너무 익어서 곤죽이 된 밀을 강철 롤러에 통과시켰다. 롤러 밖으로 우수수 떨어진 것은 얇은 조각형 시리얼이었다. 켈로그 형제는 이 시리얼에 '그래노스 플레이크'라는 이름을 붙여 1895년부터 출시했다."(89쪽 '아침식사의 문화사')

"14세기 닌토쿠 천황이 즉위하던 시기에 한 일본 왕자는 지방을 순행하던 중 얼음 구덩이를 우연히 발견했다. 왕자가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묻자 마을 사람들은 무릎을 꿇으며 굽실거렸다. '고귀하고 저명하신 왕자님, 그것은 얼음 구덩이입니다. 초가지붕의 짚단을 뚜껑처럼 덮어 웅덩이를 만든 것입니다. 이 얼음으로 시원한 사케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지요."(226쪽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

'미식의 인문학'이라는 작명(作名)이 어울릴 두 권의 신간이 같은 주에 출간됐다. 하나는 시리얼·베이컨 등 서구의 아침 식사를 역사·문화·사회적으로 탐구한 '아침식사의 문화사', 또 하나는 빵·아이스크림 등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매력적인 100가지 음식 역사를 추적한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다. 각 책의 작가인 미국의 헤더 안트 앤더슨과 영국의 윌리엄 시트웰은 요리 칼럼니스트와 비평가로 명성 높은 이름들. 납작하고 얄팍한 취미 수준을 넘어, 두툼하고 입체적인 전문가의 시야를 제시한다.

'아침식사의 문화사'의 두툼함은 종교·무역·기술·편리성이라는 네 겹 반죽에서 비롯된다. 가령 종교. 13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인용하자면, 육체의 쾌락은 악(惡)이며, 하루 2식을 넘어 아침까지 먹는 건 폭식이다. 중세 신학에서 아침식사는 금기(禁忌)였다는 것. 이후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5시 기상, 9시 아침식사, 5시 저녁식사, 9시 취침' 선창(先唱)이 '아침 해방'의 씨앗이 됐다. 헤더 안트 앤더슨은 이런 방식으로 조식(朝食)의 문화사를 쌓아 올린다. 17세기 무역을 통해 들어온 홍차·커피·코코아 맛에 유럽인은 환호했고, 철도의 '발명'으로 오리건에서 훈제한 연어가 뉴욕의 아침 식탁에 올라올 수 있었으며, 19세기 말 아침식사용 간편한 시리얼이 등장하면서 미국 중산층 주부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판 슬링어란트의‘청년의 아침식사’. 청어는 먹기 좋게 살만 발라져 있고, 검은 빵이 놓인 푸른 무늬의 흰 자기 접시는 그가 부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익살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 중세와 달리 르네상스는 풍성한 아침식사를 찬미했다.

죽·시리얼·머핀·샌드위치·팬케이크·와플·아침용 케이크·페이스트리·도넛 등 아침식사로 무엇을 어떻게 먹었을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시커멓게 탄 아침죽을 먹고 메스꺼워하던 제인 에어, 작살로 아침식사의 스테이크를 찍어 먹던 모비딕의 등장인물 등 아침식사를 주제어로 모은 문학과 영화 이야기도 시선을 낚아챈다.

'역사를 만든 100가지 레시피'는 말 그대로 100가지 음식 이야기다. 얼핏 요리책 같지만, 백과사전적 나열은 아니다. 차라리 '4000년 음식 연대기'라는 명명(命名)이 맞춤하다. 영국 작가의 연대기인 탓에 '사순절 금식 기간이 아닐 때 먹는 라비올리'(1465년), '칠면조 타말레'(1540년) 등 우리에게 낯선 요리도 가끔 보인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빵'(기원전 1958~기원전 1913년), 염소구이(기원전 30년), 말린 생선(800년경), 파스타(1154년), 아이스크림(1718년), 샌드위치(1787년) 등 상당수가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들이다. 요리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읽는 요리인 셈이다.

인도의 난, 터키의 피데 같은 빵의 기원을 보자. 작가 윌리엄 시트웰은 우리를 뜨겁고 먼지 풀풀 날리는 이집트 룩소르의 지하 묘실(墓室)로 안내한다. 차양 아래 그늘에서 남자들이 황소 한 마리를 잡고 있는 벽화도 있지만, 그 옆에 소녀가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비벼서 원뿔 모양 틀에 넣는 벽화도 있다. 소녀 뒤의 남자가 그 틀을 화덕에 넣는 장면도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빵 만드는 과정을 담은 그림(세네트 묘실의 벽. 작자 미상)이다. 시트웰은 이 벽화를 소개하며, 효모와 빵 반죽, 그리고 성경 출애굽기의 누룩과 빵 구절을 인용하고, 맥주 제조법으로까지 화제를 확장한다. 뇌와 혀를 모두 자극하는 유쾌한 독서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