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수담(手談)이 아니었다. 세기의 대국이었고,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지난 3월 15일,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5국으로 막을 내렸다.

제1국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이 9단의 우승을 예상하는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얘기가 달라졌다. 알파고의 실력은 대단했다. 악수로 보이는 수를 묘수로 바꾸며 사람들이 막연히 상상하던 인공지능의 한계를 뛰어넘은 알파고는 결국 제1국과 2국, 3국까지 ‘인간 이세돌’에게서 승리를 따냈다.

그러나 이 9단은 세 차례 연거푸 패배한 뒤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공지능에)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특유의 우직함을 드러냈다.

이번 대회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 단 한 번 우승했다. 3월 13일, 제4국에서다. 세 차례 대국에서 모두 불계패를 한 만큼 승리는 더욱 극적이었다. ‘단 1승’이지만 그 가치는 환산하기 어렵다. 이를 통해 컴퓨터의 직관과 계산능력보다 인간의 창의성이 앞서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비록 대결에서 승리하진 못했지만 이 9단을 패배자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보다는 컴퓨터와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은 그의 두뇌회전에 찬사를 보냈으며, 대국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바둑으로 세상 지배하라’며 세돌 이름

센돌, 마왕, 갓세돌, 돌코너…. 그의 여러 별명 중에는 '섬소년'도 있다. 이 9단은 전남 신안군 비금면 도고마을에서 태어나 열 살 때까지 섬에서 자랐다. 목포에서 뱃길로 한 시간 거리다.

바둑은 다섯 살 무렵 처음 배웠다. 형과 누나와 함께였다. 스승은 아버지 이수오 씨. 이 씨는 교대를 졸업하고 목포에서 10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그러다 홀연히 비금도로 귀향해 농사를 지으며 5남매(3남 2녀)를 키웠다. 당시 이 씨는 아마5단이었는데, 틈틈이 5남매 모두에게 바둑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 박양례 씨는 한 인터뷰를 통해 "(세돌이가) 처음에는 안 한다고 하더니 어깨너머로 보고 흥미를 느꼈는지 어느 날 저도 바둑을 배워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9단은 아버지 이 씨의 눈에 가장 크게 띄었다. 어린 시절부터 '바둑으로 세상을 지배하라'는 뜻으로 지은 '세돌(世乭)'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혼자 집에 있을 때도 곰 인형과의 바둑 두기에 몰입했고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이세돌은 한 인터뷰를 통해 "농사일을 하러 나가셔야 했던 아버지는 아침마다 나에게 사활문제를 내주고 저녁에 점검했다"면서 "글자도 깨우치지 못했던 나는 신기하게도 바둑만은 잘 이해했다"고 유년시절을 회상했다.

바둑을 배운 지 2년. 그는 아버지와 맞바둑을 둘 실력이 됐다. 아홉 살이 되던 해엔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서울행 차편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권갑용 바둑도장(현 권갑용 국제바둑학교)에 들어갔다. '바둑 유학'을 떠난 셈인데, 비금도 그 작은 섬에는 더 이상 그의 맞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둑 DNA 물려받은 5남매

이 9단은 서울에서 큰형인 이상훈 프로와 함께 생활했다. 그동안 어머니 박 씨는 생활비를 보내며 뒷바라지를 했다. 명절마다 꼬박꼬박 고향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바둑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꼼꼼히 점검했다고 한다.

이 9단은 5남매 중 막내다. 이 중 둘째 형과 셋째 누나 또한 바둑의 길을 걷고 있다. 이상훈 프로9단과 이세나 편집장(아마6단)이다. 이상훈 9단은 현재 신안천일염팀 바둑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인 누나 이상희 씨와 넷째인 형 이차돌 씨도 아마5단의 바둑 실력을 보유한 수재로, 이세돌 9단의 가족은 그야말로 '바둑 패밀리'다.

누나인 이세나 편집장은 한 인터뷰를 통해 "세돌이가 막내여서 어렸을 때 집안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면서 "개구쟁이이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본인이 하려고 마음먹은 것이나 주장을 반드시 관철하려는 고집도 셌다. 바로 위 형인 이차돌과 다툴 때도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가 바둑을 가르칠 때는 무척 엄하셨다. 어렸을 적 아버지한테 혼날 때면 한 번쯤 울먹일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울먹인 적이 없었을 만큼 강한 심성과 승부사 기질을 타고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9단의 가족은 아버지부터 5남매, 큰 형수의 바둑 실력을 모두 합치면 43단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가족 중 어머니 박양례 씨는 단증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 이 씨는 1998년 암으로 작고해, 5남매의 비금도 고향집은 어머니 박 씨가 홀로 지키고 있다.

스트레스로 실어증, 시련의 시기도

이세돌 9단은 12세였던 1995년 7월 입단했다. 조훈현(9살), 이창호(11살)에 이어 세 번째 최연소 기록이다. 입단하던 해에 열린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예선에서 당시 최창원 5단을 꺾고 첫 승을 거두는 파란을 일으켰다.

물려받은 재능으로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시련도 있었다. 입단 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실어증이 찾아온 적도 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기관지가 약해졌다. 말은 다시 하게 됐지만 목소리를 되찾진 못했다. 이 9단은 한 인터뷰를 통해 "서울에서 보호자 역할을 하던 형이 입대해 병원에도 못 갔다"면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조금 힘들었다. 상처도 많이 받고 이야기도 잘 안 했다"고 밝혔다. 이런 사실을 고향의 어머니에겐 끝까지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시련 앞에서 더 강해졌다. 열여섯 살이던 1999년 3단으로 승단한 뒤 열일곱 살이던 2000년,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의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그 생애 첫 우승컵이었다. 그해 32연승으로 연간 최다승, 최다연승의 기록을 갈아치운 이 9단은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하며 '불패소년'이라는 호칭도 얻었다. 2002년, 열아홉 살 이세돌은 마침내 첫 세계대회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제15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대회 우승컵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2003년, 그가 이루어낸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은 바둑 최강자 세대교체를 세계 바둑계에 공표하는 계기가 됐다. '불패의 상징'이던 세계 최강 '이창호 신화'를 처음으로 깨뜨리면서다. 그 뒤로도 이세돌은 2007년과 2008년 연속 상금왕에 오르며 '쎈돌 전성기'를 누렸다. 그렇게 입단 8년 만에 9단으로 승격하면서 한국기원 사상 최단기간으로 9단에 오른 바둑기사가 됐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와 같은 어록도 그때 나온 거다.

2009년 5월까지 국내랭킹 1위, 10번째 세계대회 우승 등 정상급 기사의 면모를 보인 그에게도 난관이 있었다. 2009 한국바둑리그를 앞두고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한국기원과 갈등했고, 기보에 대한 저작권 문제와 대국료 관련 문제가 얽히면서 휴직계를 내기도 했다. 이후 사과 기자회견과 함께 복직한 그는 다시 24연승을 거두면서 세계랭킹 1위 자리에 복귀했다. 프로에 입단한 뒤 지금까지 1천 번이 넘는 승리를 거뒀고, 세계대회에서는 18번이나 우승했다.

딸 혜림 양, 제주국제학교 입학 예정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이 9단은 아내 김현진 씨, 딸 혜림 양(10)과 함께 제주도에서 긴 휴식에 들어갔다. 지난 3월 16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는 "즐겁게 대국해 스트레스는 없다"면서 "제주에서 가족과 함께 일주일 정도 쉬고 싶다"고 밝혔다.
현재 이 9단은 기러기 아빠다. 아내와 딸은 2012년부터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데, 혜림 양은 올해 9월 서귀포 영어교육도시에 있는 KIS한국국제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이 9단은 "제주에 정착할 계획은 없고 딸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자주 드나들게 될 것 같다"면서 "딸을 돌보기 위해 딸의 재학기간 동안 아내가 제주에 머물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올해는 이 9단과 아내 김 씨가 결혼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알파고에 3연패를 당한 지난 12일이 바로 둘의 열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모 입시학원 강사 출신인 부인 김 씨와는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합석한 뒤 연락처를 주고받아 연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1년간 교제 후 2006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이세돌은 “(예비신부는) 예쁘고 착하다. 결혼하면 편할 것 같고 변치 않을 타입이다. 사귄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 내가 먼저 ‘언제 결혼할까’ 하고 자연스레 얘기를 꺼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휴식을 취하기 위해 제주도에 간 이 9단이지만 수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편히 쉬진 못할 것 같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그에게 광고모델 제의가 끊이질 않고 있다고 한다. 생명보험사, 제약사, 은행, 건설회사, 자동차회사, 식품회사 등 지금까지 제의한 곳만 무려 13개 기업에 달한다고. 일부 기업은 ‘6개월 2억원’, ‘1년 4억원’ 등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중 이세돌 9단은 최소 6~7개 기업과 광고계약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고 업계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은 “알파고에게 1 대 4로 패하며 우승상금 11억원은 놓쳤지만, 앞으로 벌어들일 광고수익만 해도 11억원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이 남긴 것

우선 '바둑붐'이다. 몇 해 전 웹툰 이 일으킨 바둑에 대한 관심과는 또 다르다. 세대를 막론하며, 본격적이고 전국적이다. 바둑이 인내심을 기르고 집중력을 높여 두뇌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일선 여러 학교에서는 '바둑부'를 창단하기도 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당국 또한 바둑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선포했다. 바둑학원가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서울시 중구에서 기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대국 이후 상담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고 밝혔다.

바둑용품 시장에도 봄바람이 불었다. 바둑판을 생산하는 업체 대표는 "이번 대국으로 주문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3월 17일 G마켓의 발표에 의하면 대국이 치러진 일주일간(3.9.~3.15.) 매출을 집계한 결과 바둑용품 판매가 전년보다 7배가량(573%) 늘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바둑과 비슷한 게임용품인 장기와 체스의 매출도 같은 기간 각각 156%, 49% 증가했다. 큐브(25%)나 루미큐브(8%)처럼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용품 판매도 전년보다 수요가 늘었다. G마켓 관계자는 "최근 일주일 사이 두 배 이상 잘 팔렸다는 것은 '이세돌 효과'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둑 관련 책 판매량 또한 대결 이후 50% 이상 증가했다.

경기가 진행된 일주일 동안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과 또 다른 상장주 시가총액은 우리 돈으로 58조원이나 늘었다. 그동안 인공지능 분야의 선구자로 불리던 구글의 기술력이 온 세상에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도 급속도로 커졌다. 알파고가 보여준 것은 제4차 산업혁명의 서막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을 대표로 한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제 또한 '4차 산업혁명'이었다. 클라우스 슈밥 WEF 창설자 겸 회장은 "인류는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을 겪는 중"이라며 "4차 산업혁명은 물리학, 생물학, 디지털 분야의 기술이 융합하면서 정치·경제·사회시스템에 전적으로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고 극적인 충격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물리적, 생물학적 영역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기술이 융합되는 것을 뜻한다.

모든 사물이 지능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는 사물지능사회가 된다는 얘기다. 무인비행기 '드론'에 주소만 입력해도 사람과 물건을 원하는 장소에 데려가주고, 자동차를 사람이 운전할 필요가 없으며, 3D프린팅이 일상에서 사용되고, IoT는 가정집의 일부가 되는 사회다.

한마디로 편한 세상이 되는 건데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점쳐진다. 지금보다 더 큰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격차, 노동시장의 붕괴 등이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힌다.

[- 더 많은 기사는 여성조선 4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