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두 시간 동안 다 잊고 푹 쉬십시오."

지난 30일 서울 청담동에 있는 '해스텐스' 침대 매장. 이곳 매니저가 10㎡(약 3평)가량 크기 체험실로 안내하면서 건넨 말이다. 조명이 적당히 어두운 방엔 물건을 둘 수 있는 협탁과 의자 그리고 침대만 있었다. 이곳에선 미리 전화로 예약하면 침대에서 두 시간 동안 자볼 수 있는 있는 소위 '슬립 스파(Sleep Spa)' 서비스를 한다.

서울 청담동 한 고급 침대 매장에서 한 여성이 ‘슬립 스파’를 체험하는 장면. 전화로 예약하면 3억2000만원짜리 침대에서 2시간 동안 자볼 수 있다.

방에 놓인 침대의 가격은 3억2000만원. 매니저의 설명은 이렇다. "이 침대는 작은 매트리스 두 개를 붙여 놓았는데 매트리스 한 개에 1억6000만원입니다. 고무·폴리우레탄·라텍스를 전혀 쓰지 않은 말총을 비롯한 천연 소재를 쓴 침대라서 그렇습니다." 매니저가 문을 닫고 나간 뒤 침대에 누웠다. 잠시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잠이 들었다.

한국은 잠이 부족한 나라다. 수면 시간이 평균 7시간 49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짧다. 프랑스는 8시간 50분, 미국은 8시간 38분이다(2012년 기준). 그래서일까. 최근 잠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고가(高價)의 침대 매장이 속속 한국에 문을 열었고, 구매 고객도 은밀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스웨덴의 '해스텐스', 영국 '사보이어', '바이스프링'처럼 수천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침대가 국내 백화점에 들어오거나 단독 매장을 냈다. 매트리스 하나에 몇천만원씩 하지만 "생각보단 잘 팔린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해스텐스 김수정 매니저는 "기업가 가족을 비롯한 재력가들이 찾아와서 슬립 스파를 경험해보고 구입해 간다"면서 "잠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고 했다.

재력가들이 남에게 보여주는 가구가 아니라 침대에 돈을 쓰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바이스프링을 수입하는 '인피니' 김동현 부장은 "5~6년 전만 해도 고객들이 거금을 투자하는 가구는 보통 소파였다"며 "그러나 요즘엔 침대에 돈을 가장 많이 쓴다. 그만큼 나만의 경험, 나만의 만족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꿀잠'에 대한 욕구는 이제 낮잠으로까지 번진다. 최근 서울 도심엔 수면 카페가 50곳 정도 생겼다. 서울 계동에 있는 카페 '낮잠', 역삼동에 있는 '쉼스토리' 같은 곳이 유명하다. 5000~6000원 정도의 음료 값을 지불하고 침대나 해먹, 안마 의자 같은 곳에서 오수(午睡)를 즐기는 손님이 많다. 이런 카페에서는 새 소리를 틀거나 선선하게 바람이 통하도록 해 잠이 잘 오게끔 해주기도 한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과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주요 고객들이다.

극장에서도 '수면 마케팅'을 시작했다. 직장인이 몰려 있는 CGV 여의도점은 최근 평일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시에스타'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입장료 1만원을 내면 영화를 보는 대신 리클라이너에 누워 잠을 잘 수 있다. 음료수와 안대, 슬리퍼, 귀마개, 담요 등도 준다. 백혜신 수면개선지도사는 "삶이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잠이라도 편하게 자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면서 "거금을 투자해서 수면 환경을 바꾸는 것도 좋지만, 잘 때만큼은 책이나 휴대전화 같은 것을 다 치우는 간결한 생활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