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쿨하스(Koolhaas), 렌조 피아노(Piano), 노만 포스터(Foster) 등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의 건축가 중 하나로 꼽히는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덕에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인 하디드는 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지난해에는 167년 전통의 영국왕립건축가협회상을 여성 최초로 받았다.

2014년 3월 11일 DDP에서 만난 자하 하디드는 자신의 건축을 닮은 아방가르드한 패션을 하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을 휘두른 그는 남들과 똑같이 입기 싫어 열 살부터 특이한 패션을 즐겼다.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공간의 연출가', '실험적이고 독특한 건축세계'…. 늘 그녀에게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세계의 이목이 함께 했다.

[하디드, 여성 첫 英왕립건축가협회賞]

[이라크출신 여성건축가 ‘건축계의 노벨상’ 받]

["잘 지은 건축물, 도시 변화시켜… DDP는 지역 특성·역사성 반영된 독창적 건축물"]

195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그는 1972년 영국 런던의 건축협회에서 공부했다. 독일의 BMW 라이프치히 공장, 중국 광저우의 오페라 하우스, 영국 브릭스턴의 에벌린 그레이스 아카데미 학교, 두바이의 셰이크 자이드 다리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건축물은 "예산이 너무 많이 들고 지나치게 파격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직선 대신 비정형과 곡선을 사용해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도 설계했지만, 작년 7월 일본 정부가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그의 설계를 백지화 하기도 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비대칭 거울서 모티브

1957년 이라크 바그다드에 살던 유명 정치인 무하마드 하디드가 아내, 일곱 살배기 딸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로 나들이 갔다. 가족의 목적지는 유명 관광지가 아니었다. 가구 장인이 운영하는 작은 공방이었다. 미감(美感) 좋았던 부모는 맘에 드는 디자인의 가구를 사러 이웃 나라까지 간 거였다. 그곳에서 부모는 아이방에 걸 거울 하나를 산다. 네모반듯하지도, 원형도 아닌 특이한 비대칭 거울. 아이는 집으로 와 그 거울에 맞춰 자기 방을 재배치했다. 며칠 후 아이의 방을 본 사촌이 자기 방도 똑같이 꾸며달라 하더니, 급기야 숙모 침실까지 설계하게 됐다. 그리고 진짜 건축가가 됐다. 이 시대 최고의 여성 스타 건축가인 이라크계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DDP).

중동의 거울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비정형 사랑이 57년 뒤 서울 한복판에서 집대성됐다. 5년간의 대공사를 거쳐 2014년에 개관한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다. 옛 서울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거대한(대지 6만2692㎡, 연면적 8만6574㎡) 우주선 모양으로 내려앉은 이 건물엔 직선이 하나도 없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설계한 하디드 訪韓 첫마디 "도심 속 언덕같은 건축, 정말 맘에 들어요"]

"정말 꼬마 때 얘기예요. 그 거울 참 신기했죠(웃음)."  DDP VIP룸에서 독대한 하디드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파우더향 향수 내음이 밀려왔다. 장갑, 레깅스, 구두, 스카프, 프라다 파우치, 모두 검은색으로 휘둘렀다. 펄이 감도는 팥죽색 매니큐어를 곱게 칠한 손톱, 자신의 건축을 닮은 유기적 디자인의 커다란 반지, 깊게 칠한 마스카라…. 예상보다 훨씬 여성적이었다. 건축계를 향해 "남성의 전유물(boy's club)"이라고 쓴소리하며 "내가 남자라도 사람들은 날 디바라고 부를까?(Would they still call me a diva if I was a man?)"라고 항변했던 그는 "여성 건축가를 향한 편견은 적어졌지만 여전히 힘들다"고 했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로 전 세계 디자인 뮤지엄 중 가장 크다.

하디드는 "DDP 공사 과정을 사진으로 워낙 많이 봐서 익숙한데, 실제 보니 훨씬 더 아름답다. 건축은 설계도를 해석하는 과정인데 이번 해석은 정말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그는 또 "20년 전부터 부지 지형과 건축물의 조화를 고민해 왔는데, 지형을 의식하다 보니 곡선을 많이 쓰게 됐다. DDP는 지붕이 잔디로 덮여 있고 전시장 자체가 지형에 녹아들었다. 인공적으로 새로운 지형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낯선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예리한 각보다 곡선을 더 느낀다는 점도 유선형 디자인에 담긴 철학이다. "DDP엔 다목적 공간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유기적인 곡선으로 시각적으로 차분함을 줬습니다. 직선을 사용해 이 많은 공간을 넣었다면 훨씬 복잡한 구조가 됐을 겁니다."

하디드는 학창 시절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 등 기존 설계 방식으로는 자신의 건축을 표현할 수 없음을 느끼고 '그림'을 그려 설계했다. 영국 AA스쿨 시절 스승이자, 훗날 동업자가 된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는 하디드를 "자기만의 독특한 회전 방식을 지닌 행성"이라고 불렀다. ▷기사 더보기

"살아있는 곡선으로 새로운 우주 창조"

2009년 한국을 찾았던 건축가 하디드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건축에 강한 신뢰와 자신감을 보였다.

비트라 소방서

하디드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것은 독일에 세워진 비트라 소방서였다. 칼처럼 날카로운 예각이 두드러진 건축물로, 정사각형을 찾아보기 힘든 건물이다. 이는 과거 건축에서 규정하던 룰을 깨는 것으로, 현대의 불안과 부조리를 나타내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주로 여행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하디드는 "특히 한국의 고궁(古宮)은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는 "궁의 선은 무한히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모던하다"면서 "약간 어긋난 듯 열린 문은 어떤 기운이 들어오고 나가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최근 하디드의 작품에는 영속적이면서도 유기적인 곡선이 많이 등장하는데, 한국의 궁에서 발견되는 유려한 곡선과 맥락이 닿아 보였다.

하디드가 2007년 만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철도역은 유리를 특수가공해 우주로 향하는 비행선 같은 인상을 줬는데, 동대문프로젝트에서는 뱀 가죽같이 알루미늄 패널을 연결할 예정이다. 두 건물은 생명체가 느껴지는 유기적인 곡선이 공통점이다. 그는 "동대문프로젝트에서도 건물을 매우 유니크하게 만들지만 주변 지형과 어울리도록 할 생각"이라며 주변과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우주를 창조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철도역

하디드는 '혹시 예술적인 외형만 추구하다가 사용하기 불편한 건축물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경이적일 만큼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중요한 기본은 실용성"이라면서 "실용성을 토대로 한 혁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정미 기자

이슬람 문화권에서 태어나 여성 건축가라는 세상의 편견을 보란 듯이 깨며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감각과 비전을 창조적이고 도발적인 건물들로 표현했던 자하 하디드. 그녀의 생각보다 빨랐던 세상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