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를 풍미했던 록그룹 '더후'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센드는 무대에서 방방 뛰면서 연주하길 원했다. "치렁치렁한 의상 말고 몸을 움직이기 좋은 기능적인 옷을 갖추고 싶었다"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닥터마틴'의 '1460 부츠'였다. 발이 편안하고 내구성이 강해 영국 공장 노동자와 우체부들이 즐겨 신었다. 타운센드가 이 부츠를 신고 무대에 나타난 뒤 펑크, 글램, 그런지 등 시간에 따라 장르는 바뀌어도 록스타의 발에는 '닥터마틴'이 있었다.
'닥터마틴'이 한국에서 젊음과 저항의 상징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지난해 한국 매출은 전년 대비 35% 성장했다. 전반적으로 패션 브랜드 매출이 좋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이달 초 한국 매장을 방문한 닥터마틴의 CEO 스티브 머리는 "한국 여성들이 대표 상품인 검정1460 부츠뿐 아니라 하얀색, 형광 핑크색 등 다른 나라에선 인기가 별로 없는 색상을 많이 신는 게 흥미롭다"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색을 소화하는 법을 아는 것 같다"고 했다.
1990년대 말, 서울 강남권의 10~20대는 닥터마틴의 단화를 교복 일부처럼 신고 다녔다. 록이나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셔츠나 스웨터에 면바지를 맞춰 입은 학생들이 즐겨 신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자취를 감춘 닥터마틴은 2~3년 전부터 홍대나 가로수길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부활했다. 찢어진 청바지에도, 팔랑이는 꽃무늬 원피스에도 이 신발만 신으면 '쿨한 멋쟁이'가 될 수 있었다. 입는 사람의 개성이 강조되는 '스트리트 패션'과 '유스 컬처(청년 문화)'가 패션에서 대세가 되면서 저항과 젊음의 상징인 닥터마틴이 제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열다섯 살짜리 소녀가 핑크색 닥터마틴을 스커트에 신기도 하지만, 나 같은 중장년층도 닥터마틴의 로퍼(끈 없는 구두)를 신고 출근한다. 닥터마틴은 전통과 젊음을 함께 가진 신발이다. 50년 넘도록 같은 디자인을 고수했지만, 시대마다 록과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튼튼한 데다 무심하게 생겼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고 했다.
닥터마틴을 잘 신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는 "젊은이만 신는다는 생각을 버려라"고 했다. "쿨한 중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닥터마틴이다. 전통을 고수하지만, 저항 정신, '록스피릿'도 잊지 않았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기 좋은 선택이다. 정장 바지든, 청바지든, 원피스든 그냥 신어버리면 되는 게 바로 이 신발이다. 그래도 넥타이는 안 매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