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관이나 회사들이 일부러 기획한 만우절 가짜 보도자료나 브리핑으로 본의 아니게 언론들이 허위 보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편 언론에서도 주도적으로 만우절용 기사를 내놓는 경우도 있다. 만우절에 웃고 우는 언론들의 사례들을 유명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모아봤다.
만우절에 낚인 언론들
1997년 클린턴 대통령의 '거짓말 브리핑'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7년 4월 1일 갑자기 백악관 브리핑룸에 나타났다. 원래 매커리 대변인이 나오기로 한 자리에 대통령이 나타나자 순간 기자석이 크게 술렁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정말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는 말로 시작하며 "매커리 대변인이 백악관 계단에서 무릎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며 25살짜리 공보실 직원을 후임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갑작스런 소식에 CNN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美 백악관의 발표를 중계했다. 매커리 대변인 후임을 맡기로 한 25살 공보실 직원은 실제로 브리핑까지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클린턴 전 대통령 연출하고 꾸민 만우절 거짓말. 이내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온 매커리 대변인은 그날의 진짜 주요 소식을 말했다. "만우절을 축하합니다. CNN이 생중계까지 해줘서 고맙습니다"
▶관련기사 : 클린턴 "대변인 다쳤다" 만우절 거짓말 브리핑
1998년 '기네스 타임' 사건
영국 유력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는 98년 만우절 때 맥주회사 '기네스'의 장난에 제대로 속아 넘어갔다. '기네스'는 새 밀레니엄에 맞춰 세계 표준시인 '그리니치 시간'을 '기네스 시간'으로 바꾸고 매시간 정각에 나오는 시보를 '뚜 뚜 뚜'에서 맥주 방울 떨어지는 '똑 똑 똑'으로 변경한다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시점 제한(엠바고)까지 붙여 내용은 더욱 그럴 듯 했다.
FT는 기네스의 장난에 속은 정도가 아니라 주요 기사라고 판단하여, 엠바고까지 깨가며 다음날 신문 한 면의 절반에 걸쳐 이 소식을 전했다. 작전에 성공한 기네스의 로이 맨틀 대변인은 "기네스는 FT가 엠바고 깬 것에 대해 용서할 생각이며 FT와 같은 권위있는 신문이 만우절날 정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2003년 빌 게이츠 사망 소동
2003년 4월 4일 오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Bill Gates)회장이 피살됐다는 소식이 인터넷과 IT업계, 증권가에 퍼졌다. 소문은 CNN 홈페이지처럼 만든 가짜 사이트에서 4일 오전 빌 게이츠 회장이 괴한의 2발의 총탄을 맞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졌다는 '만우절용 기사'를 쓰면서 시작됐다. 가짜 사이트가 만우절 장난용으로 전한 소식에 국내 방송사 MBC가 사실 확인 없이 속보로 전달하면서 파장은 커졌다. 이어 타 방송사와 언론사도 앞다퉈 이 소식을 속보로 내보냈다.
보도 직후인 9시40분쯤 종합주가지수는 한때 급격히 하락, 536선까지 떨어졌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한글과컴퓨터가 9%까지 급등하는 등 '반짝' 상승세를 타기도 했다. 또 IT업체들은 물론 네티즌들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한꺼번에 인터넷에 접속하는 바람에 일부 뉴스 사이트는 접속에 장애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보도 직후 한국 MS는 "빌 게이츠 회장 사망설은 사실 무근인 것으로 본사로부터 확인받았다"고 사망 보도를 부인했다. ▶기사 더보기
만우절 장난 치는 언론들
1999년 아사히 신문 '어벤져스 내각'
언론이 직접 만우절 용 기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99년 일본 아사히 신문은 만우절날 오부치(小淵惠三)당시 총리가 정·관계의 인재난을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각료 빅뱅법안'을 준비 중이고,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대처(Margaret Thatcher) 전 영국총리,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 등이 입각 예정자라고 보도했다. 지금으로 치면 어벤져스 급 내각 발표 소식에 누구도 믿기 힘들었지만, 아사히 신문 1면 톱으로 크게 실린 기사를 보고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내 한 방송사는 이를 사실로 보도했다 경고를 받았다.
당시 아사히 신문은 기사의 의도에 대해 "딱딱한 일상속에 유머를 되찾아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본에 훌륭한 지도자감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풍자하기 위한 의도도 보였다. 하지만 유력 일간지에서 기사를 가지고 심한 장난을 쳐 독자를 혼란스럽게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관련기사 : 아사히신문, 만우절 기사 "고르비·대처 일정부입각"
2005년 홍콩 월간지 '한국 은행원 음주 제한'
해외 언론에서 한국과 관련된 만우절 농담을 한 일도 있다. 2005년 홍콩의 금융전문지 파이낸스 아시아 (Finance Asia)는 '한국 은행원들에 대한 규제 (Seoul bankers face ban)'라는 제목으로 "한국 금융당국이 은행원들의 음주를 제한하는 규제안을 발표했다"고 썼다. 기사는 "이러한 조치는 한국 은행원들의 68%가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술에 취해 있어 오전의 생산성이 오후의 82%밖에 되지 않는다는 보고서에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주요 투자은행들은 계약을 따는 데 지장을 받을까 충격에 휩싸여 있다."고도 덧붙였다.
기사 말미에 새 규제는 4월 1일, 오늘부터 발효된다며 만우절 장난 기사임을 암시했다. 당시 한국 금융계 사람들이 얼마나 술을 많이 마시고 술과 관련한 안좋은 이미지가 있었으면 이런 기사가 나왔겠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다. 우리 금융계의 음주·접대 문화를 제대로 꼬집은 만우절용 기사였다.
파이낸스 아시아는 2005년 4월 1일 이 기사를 실었다가 삭제했다. 만우절용 기사로 쓴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예상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0년 기사를 작성한 에디터에게 연락하여 기사 원문을 다시 올렸다.
▶관련기사 : "은행원들 술 좀 자제하시죠" 홍콩지 만우절 농담기사
2008년 佛 대통령 부인 영국의 패션운동 리더로 임명
영국의 언론들은 해마다 만우절용 거짓 기사를 내보내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2008년 4월 1일 가디언 인터넷판은 "브라운 총리(Gordon Brown)가 옷 잘 입는 프랑스 대통령 부인 브루니(Carla Bruni)를 영국 패션운동의 리더로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은 아브릴 드 푸아송이었다. '4월의 바보'를 뜻하는 불어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을 뒤집은 이름이다. 이 힌트를 눈치챘다면 이 기사가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사는 영국 브라운 총리의 최측근으로부터 들은 정보라고까지 얘기하며 기사의 신빙성을 더했다. 브라운 총리가 브루니를 영국인의 패션 교사로 임명한 것은 지난 주 윈저궁 만난 브루니의 세련된 모습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소식이 만우절용 거짓 기사임을 파악하지 못한 국내 한 일간지는 지면을 할애해 이 소식을 다시 전하는 헤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브루니가 입었던 옷과 신발 사진까지 자세히 설명하며 웃자고 쓴 가짜 기사를 내보냈다가 곤혹을 치렀다.
▶관련기사 : '영국인 패션 개조' 팀장은 佛대통령 부인 브루니?
해외 주요 언론들 중에는 만우절 마다 거짓 기사를 의도적으로 실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곳들이 많다. 국내 언론에서는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만우절용 거짓 기사를 쓴 곳은 없다. 대신 대부분 외신들의 만우절용 거짓 기사에 낚여 의도치 않게 만우절용 거짓 보도를 한 경험은 종종 눈에 띈다. 국내·외 언론들이 올해는 어떤 거짓 기사와 이벤트로 재밌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