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대전 중구 선화동 구(舊) 충남경찰청 청사. 1만2000여㎡ 터에 있는 본관과 별관, 전산동, 상무관 등 4개 동의 건물은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인적도 없었다.
2012년 하반기 충남경찰청이 충남도청과 함께 홍성·예산군 접경 지역에 있는 내포신도시로 이전한 이후 텅 빈 채 4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바로 옆 옛 충남도청 청사도 이곳에서 열리는 강좌를 듣기 위해 방문한 시민들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지만 한산했다. 대전시는 주변 상권 침체를 막기 위해 이 청사를 충남도로부터 임차해 도심재생본부, 대전발전연구원, 시민대학 등으로 쓰고 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6)씨는 "도청과 경찰청이 빠져나간 뒤 손님이 크게 줄어 주변 식당과 상점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고 했다.
충남도청과 경찰청 이전으로 남은 대전시내 옛 도청·경찰청 부지가 이전 3년이 넘도록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 대전시 등 이해 당사자들이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활용 방안을 못 찾고 있는 것이다.
도청과 경찰청을 합한 전체 부지는 3만7000여㎡에 이른다. 부지 가격은 1200억원대이다. 충남도 소유인 구(舊) 도청사는 1932년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이다. 국가등록문화재인 본관(7112㎡)을 비롯해 신관, 의회청사, 후생관, 대강당, 별관 등 11개 건물로 이뤄져 있다. 충남경찰청사는 중앙정부 기획재정부 소유다.
국회는 이달 초 국가가 충남도로부터 도청 부지를 매입해 대전시에 넘기거나 장기 대여를 할 수 있도록 도청이전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전시는 기획재정부가 이 부지를 사들여 넘겨주면 문화재인 도청 본관 등 일부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은 철거하고 재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곳에 문화·예술·창작 분야의 공익시설과 호텔 등 상업시설이 함께 들어가는 복합단지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부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살릴 수 있도록 건물들을 그대로 놔두고 리모델링해 사용하자는 입장이다. 문체부는 작년 7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이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한 용역을 의뢰해 올 연말쯤 최종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오규환 대전시 도시재생과장은 "대전시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 활용 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 적극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충남경찰청 청사 부지를 허물고 새 건물을 신축해 인근에 있는 대전중부경찰서를 이곳으로 옮겨오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이 방안은 기획재정부가 "기존 대전중부경찰서가 아직 지은 지 20년밖에 안 됐다"며 난색을 표하면서 일단 보류됐다.
기재부는 옛 충남도청 부지를 곧바로 매입해달라는 대전시의 요구에 대해 "청사 활용 계획이 나오고 어느 기관이 주도가 돼 개발할지가 확정돼야 예산에 반영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정부 각 부처·기관과 지자체가 서로 입장만 고집하면서 이 부지에 대한 종합적인 활용 방안 마련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박천보 한밭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청·경찰청 부지는 대전 원도심 활성화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면서 "기관별 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도시재생이란 대승적 차원에서 서둘러 최적의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