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販 '방범 창살' 직접 잘라보니

지난 1월 말 서울 강북·은평구 등 4개구 주택가를 반년 동안 넘나들며 빈집을 털어온 절도범 임모(38)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10회에 걸쳐 약 1300만원어치 현금과 귀금속을 훔친 임씨의 범행 수법은 대부분 비슷했다. 휴대용 절단기로 부엌 창문 쪽 방범창살을 자른 뒤 잠기지 않은 창을 열고 들어간 것이다. 임씨를 검거한 강북경찰서 강력3팀 이종순 팀장은 "마루 쪽 창과 달리 부엌 쪽 창은 작기 때문에 창살만 믿고 제대로 잠그지 않는 사람들의 습관을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절단기에 취약한 방범창이 빈집털이범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되고 있다. 요령이 붙은 범죄자는 대부분의 방범 창살을 1~2분 만에 자르고 침입한다. 침입에 이용되는 절단기는 철물점에서 몇만원이면 살 수 있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침입 절도·강도 총 검거 건수(3만3815건) 중 범인이 창문을 통해 침입한 경우(6808건)가 20.1%였다.

겉으로 매끈하고 단단해 보였던 알루미늄 방범 창살이 절단기로 몇 번 자르자 텅 빈 속을 드러내며 끊어졌다. 경찰은 “방범 창살 대부분은 시각적으로 안심되는 효과만 있지 실제 방범 성능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알루미늄 창살 자르는 데 1분 안 걸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범 창살은 그 재질과 금속 두께, 파이프 모양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가 '함마톤'이라 불리는 철제 창살이다. 두께 0.5㎜가량인 강판을 직경 1.5㎝ 원형으로 말아 만든 형태다. 오래되면 녹이 슬어 흰색 도장이 누렇게 변색된다. 둘째는 알루미늄 창살이다. 두께 1㎜ 정도 강판을 직경 1.9㎝ 파이프 모양으로 제작한다. 녹이 잘 슬지 않아 방범 창살을 쓰는 대부분의 가정집에 설치돼 있다. 스테인리스 창살은 두께와 굵기가 알루미늄 창살과 비슷하지만 금속의 전단응력(잘리지 않고 저항하는 힘)이 높고 원형이 아닌 사각 형태가 많다. 일부 업체는 스테인리스 창살 안 공간에 직경 9㎜ 정도의 철근을 넣어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도 한다.

서울 신내동 한 방범 창살 업체의 도움을 받아 방범 창살들을 직접 잘라봤다. 철물점에서 3만5000원에 살 수 있는 소형 동(銅) 커터를 이용했다.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동 커터는 원래 에어컨 설치 기사들이 원형 동 파이프를 자를 때 쓰는 도구다. 갈고리 안쪽에 함마톤 창살을 끼우고 갈고리 밑에 달린 밸브를 돌리니 밸브 쪽에서 강철 날이 나와 창살을 비누 자르듯 파고들었다. 그 상태에서 창살을 중심으로 커터를 한두 바퀴 돌리니 바로 절단됐다. 창살을 처음 잘라보는 건데도 한 곳 절단하는 데 1분이 채 안 걸렸다. 알루미늄 창살도 절단하는 데 드는 시간이 비슷했다. 권오형 의정부경찰서 강력6팀장은 "소형 동 커터는 손바닥보다 작아 휴대가 간편하고 절단면이 깨끗해 범행 후 원래 모습대로 끼워넣기 쉽다"며 "전문 빈집털이범들이 많이 쓰는 도구"라고 말했다. 스테인리스 창살은 모양이 사각이라 둥그런 갈고리 안에 넣고 돌릴 수가 없었다. 방범 창살 업체 '잘 막는 친구들'의 김대용 대표는 "동 커터를 이용한 범죄를 막으려다 보니 사각 창살이 개발됐다"고 말했다.

'오리발'이라고 불리는 길이 약 30㎝ 가위 모양 절단기를 사용하니 시간은 더 단축됐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힘껏 누르니 함마톤과 알루미늄은 바로 껌 씹히듯 찌부러졌다. 그 상태에서 절단기를 비틀자 절단면이 벌어졌다. 한 번 더 반복하니 창살이 끊어졌다. 소요시간이 30초 안쪽이었다. 스테인리스 창살은 강도가 높고 안에 철근이 들어있어 쉽게 찌그러지지 않았다. 손잡이 한쪽을 배로 받치고 다른 쪽을 두 손으로 노 젓듯 끌어당겼다. 한 곳을 있는 힘껏 자르는 데 약 2분이 걸렸다. 권오형 팀장은 "오리발 절단기는 절단력이 뛰어나지만 창살 모양을 일그러뜨린다"며 "범행 흔적이 명백해져 '전문가'들은 잘 쓰지 않는 도구"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함마톤 창살, 알루미늄 창살, 스테인리스 창살. 방범기술산업협회 관계자는 “방범창 전문 업체들은 최근 스테인리스 창살을 주로 취급하지만, 동네 공업사들은 아직 알루미늄 창살을 많이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능 인증 업체는 두 곳뿐

창살을 줄톱으로 자르는 데는 시간이 많이 들었다. 가장 약한 함마톤 창살 한 곳을 자르는 데 2분 이상 걸렸다. 창살 간 간격이 좁으면 줄톱을 넣기부터 어려웠고, 톱날이 창살과 마찰하며 내는 소리도 컸다. 이종순 강북서 팀장은 "소음이 나면 현행범으로 잡힐 확률이 높다"며 "줄톱이나 그 이상 소리가 큰 전동 그라인더, 유압식 절단기 등은 범죄에 쓰기 부적당하다"고 말했다.경찰은 "창문이 잠겨 있으면 방범 창살을 쉽게 절단할 수 있다 해도 절도범이 유리창을 깨지 않고 범죄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며 "외출 시 복도식 아파트나 빌라 1층의 창문을 반드시 잠가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2013년 설립된 방범기술산업협회는 작년 말 5등급의 방범 창살 성능 표준을 마련했다. 가장 낮은 단계인 S1은 1㎏ 이하 손도구로 사람 머리가 들어갈 만한 면적(100㎠)을 잘라내는 데 3~5분 소요된다는 의미다. 가장 높은 단계인 S5는 전동이나 화기 장비로 같은 면적을 자르는 데 3분 이상 걸린다는 걸 뜻한다. 현재 이런 인증을 받은 방범 창살 업체는 두 곳뿐이다. 그중 하나로 S4 등급을 인증받은 '깨끗한창' 정영주 실장은 "방범창을 일(一)자가 아닌 격자형으로 만들어 자르기 어렵게 했다"고 말했다.

방범기술산업협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방범창을 쓰는 가정의 60~70% 이상에서 쓰는 알루미늄 창살은 S1에도 못 미치는 등급 외 수준"이라며 "업계 대부분이 연매출 10억원에 못 미치는 영세업자이다 보니 인증을 받는 업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