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명문 이튼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원 나와 해방촌에 레스토랑 낸 젊은 셰프”

한국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불리는 해방촌에 밤이 왔다. 몽마르트르엔 깃털 모자 쓴 여인이 호객하는 물랭루주의 물레방아 사인이 돌아가지만, 금요일 밤, 다문화의 젊은 열기가 가득한 해방촌엔 2:8 가르마에 앞치마 두른 젊은 촌장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서른한 살 셰프는 1년 만에 두 개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12평에 스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이태리 식 ‘실내포차’ 쿠촐로나, 스물다섯 평에 서른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이태리 ‘가정 요릿집’ 마렘마나 겉으로는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코빼기만 한 간판을 겨우 찾아 투명 비닐 막이 처진 길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빈자리 하나 없이 만석이다. 한 자리 차지하고 먹자면 최소 한 달 이상은 전화 넣고 목 빼고 기다려야 한다.

주방에서 조리 중인 김지운 셰프(31세). 그가 이태원에 차린 이태리 식당 쿠촐로와 마렘마는 1년 만에 대박을 쳤다.

그래서 “쿠촐로 가봤어?” “마렘마 가봤어?”라는 질문은, 늘 “그 예약의 문을 통과했다"는 뿌듯함과 함께였다. 워낙 입장이 어려우니, 항간에 요리 좋아하고 와인에 달통한 재벌집 아들이 친구들 불러 파티 열 심산으로 레스토랑을 냈다는 소문도 퍼졌다. 헛소문이다. 하얀 얼굴에 작은 체구의 젊은 셰프는 손님들 앞에서 한결같이 두 손을 맞잡고 미소를 짓는 모습이 안쓰러우리만치 공손하다(레스토랑 막내 서버라고 해도 믿을만하다.).

아버지에게 차용증 쓰고 빌린 돈으로, 손바닥만 한 가게를 차리다

젊은 셰프의 이름은 김지운이다.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의 차남. 해외 트렌드에 민감한 대기업 오너 2, 3세들이 외식 사업 경영에 손대는 일은 많지만, 김지운처럼 직접 요리하는 오너 셰프는 처음 보았다. 2015년 3월 이태원에서 12평짜리 작은 식당 쿠촐로를 열기 위해, 대기업 둘째 아들도 다른 청년들처럼 아버지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오픈할 때 이것저것 조언해줬던 압구정동 프렌치 심야식당 루이쌍끄의 이유석은 김지운이 최소한의 ‘종잣돈'을 들고 찾아와 머리를 싸매더니, 결국, 몇백 군데도 넘게 발품을 팔아 지금의 가게를 구했다고 했다.

쿠촐로 2호점인 마렘마에서 쑥스러운듯 포즈를 취한 김지운 셰프. 그의 아버지는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이다.

자금은 빠듯했지만, 덕분에 쿠촐로는 해방촌에서 공간 운영이 기가 막힌 곳이 됐다. 손님들은 거리를 내다보며 바깥쪽 바에 일렬로 안거나, 실내 바에 어깨를 붙이고 옹기종기 앉는다. 볕이 좋으면 바깥쪽 바의 비닐 막을 걷어낸다. 봄 여름 가을엔 '노상' 분위기가 난다. 테이블은 작은 중앙 원형 테이블 하나다. 그렇게 먹겠다고 함께 모여있는 모습은 꽤 다정하다.
김지운이 그렇게 손바닥만큼 작은 가게를 차린 이유는 말 그대로 스타트업의 모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요리 유학 갈 돈으로 실전에서 경험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업 구상을 했다.

“가게를 차리는 비용이 딱 요리 유학 가는 돈이었어요.” 청년은 아버지를 설득했다. 부자지간이라도 금전 관계는 확실히 했다. 투자가 아닌 대출이었기 때문에 차용증을 썼고, 그는 현재까지 시중 금리로 매달 이자를 내고 있다. 쿠촐로는 금세 입소문이 났고, 쿠촐로에서 번 돈과 그가 투자받은 돈을 합쳐서 7개월 만에 근처에 쿠촐로 2호점인 ‘마렘마'를 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어로 강아지라는 뜻을 가진 '쿠촐로'가 형님격이고, 강아지 종의 이름을 딴 '마렘마'가 아우 격이다. 쿠촐로의 음식과 마렘마의 음식은 비슷한 듯 다르다. 쿠출로가 남성적인 음식이라면 마렘마는 여성적인 음식이다. '밤장사'만 하는 쿠촐로는 술에 어울리는 안주 스타일의 요리가 많고, '낮과 이른 밤' 두 번의 식사 타임이 있는 마렘마는 와인을 곁들이고 싶은 귀엽고 화려한 요리가 많다.
쿠촐로의 음식은 간이 좀 짜고, 마렘마의 음식은 간은 알맞다. 같은 레스토랑이라도 점심 간은 조금 약하게, 저녁 간은 좀 더 강하게 잡는 편이다.

이태리 포장마차가 컨셉인 쿠촐로는 비닐 막을 걷으면 노상 분위기가 난다. 여럿이 함께 모여 앉아 음식을 먹는 바 테이블 구조로 공간 활용을 극대화했다.

메뉴판은 사실 보고도 잘 모르겠다. 한글로 된 친절한 메뉴판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직원들이 와서 음식을 설명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쿠촐로에서 먹어본 음식들은 죄다 샴페인과 함께였다. 그러니까 샴페인을 마시면서 그것과 어울리는 안주를 먹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산양유로 만든 페토리노 치즈는 짜고 톡 쏘는 맛이었고, 트뤼프에 재운 개복숭아(모양은 꼭 올리브 열매같다)는 산도가 좋아 손으로 집어 먹는 안주로 제격이다.

면, 치즈, 후추만 넣은 간결한 파스타부터 트뤼프를 변주한 화려한 요리까지

식전 빵은 이 집의 자랑이다. 두툼한 나무에 툭툭 놓인 듯 가지런한 파마산 치즈스틱과 비스킷은 고르곤졸라와 트뤼프 허니의 풍미로 한입 물면 굉장히 사랑받은 느낌이 든다. 직접 구운 미니 피자 피제타는 제철 돼지감자 퓌레를 찍어 먹는다. 오징어 먹물에 재운 오징어 다리 몇 개를 고명처럼 얹어서. 이렇게 털털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제법 흥이 올라 왁자해지면, 꽃처럼 플레이팅된 비프카르파치오가 여봐란 듯 나와 살짝 기를 죽인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완전 이태리식은 아니에요. 이태리식은 기계도 안 쓰고 소고기를 칼로 저며서 올리브유에 절여서 파마산에 루꼴라를 올리는데, 우리 집 것은 겉을 돌돌 말아서 허브를 묻혀 시어링(표면을 강한 불에 구어 갈색으로 만드는 것)을 했어요. 향이 배어들어 가도록. 차가운 카르파치오는 샴페인 한잔 하기 좋은 안주죠.” 만든 음식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한 가득인데, 그걸 표현하는 예법이 들뜨지 않고 자신감에 차 있다.

요즘엔 어딜 가든 다 트뤼프를 써서 레스토랑 음식이 평준화됐다는 생각도 든다. 쿰쿰하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진한 향을 지닌 트뤼프는 어디에나 잘 어울려 심지어 달걀부침이나 짜장라면에 뿌려 먹어도 맛있다. 한마디로 트뤼프는 음식 세계에 축복처럼 자리 잡은 화려한 조미료, 비싼 미원이다.
김지운은 트뤼프를 많이 쓰지만, 그 어떤 집보다도 다이내믹하게 변주해서 쓴다. 트뤼프 허니, 트뤼프 페이스트, 트뤼프 따야린까지… 값비싼 트뤼프를 실컷 먹으면 대접받는 느낌이 드는 건 확실하다.

부엌에 들어갔던 김지운이 세 가지 파스타를 만들어 왔다. 젊은 셰프는 입가에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마치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길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얼굴로 세 접시의 파스타를 앞에 놓았다.

보드카 크림 토마토 리가토니. 농가에서 할머니가 차려주는 것 같은 이 싱싱한 파스타를 먹으면 레드 와인을 병째 들이켜고 싶다. 29,000원.

와인과 보드카에 정통한 김지운은 요리에 술을 쓰기 좋아한다. 보드카 크림 토마토 리가토니는 튜브 모양의 리가토니 면에 술 취한 토마토카 덩어리째 씹힌다.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와 토마토의 식감은 마치 농가에서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파스타를 먹을 때처럼 싱싱하고 투박하다. 이런 파스타는 샴페인보다는 와인을 병째 들이키며 게걸스럽게 먹는 게 맞다.

이태리 북부 지방에서 즐겨 만드는 달걀 노른자로 만든 따예린 면에 미트 소스 라구를 버무린 두 번째 파스타 따예린은 매우 부들부들해서, 우리나라로 치면 시장통에서 먹는 기계 칼국수처럼 중독성이 있어 자꾸만 손이 간다.

“이 파스타에는 제 철학이 담겨 있어요.” 김지운이 비장하게 내놓은 마지막 파스타의 이름은 카치오 에 페페. 면, 치즈, 후추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파스타다. 버터, 기름, 양파, 마늘… 맛을 높이는 아무런 장치도 없다. 트뤼프 쓰는 데 도가 텄는데도 카치오 에 페페에는 한 톨의 트뤼프도 넣지 않았다.

’셰프와 한 끼’의 게스트 에디터인 압구정동 프렌치 심야식당 루이쌍끄의 이유석 셰프와 포즈를 취한 김지운 셰프. 김지운이 첫 가게를 낼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이유석은 얼마 전에 ‘이유석의 이유식'이라는 책도 발간했다.

면과 치즈와 후추가 딱 떨어지는 위치에서 딱 떨어지게 자기 역할을 해내는 그 파스타는 내가 일생에 먹은 파스타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마치 무인양품의 디자이너 하라 켄야의 식단을 먹는 느낌이었다. 동행한 셰프 이유석은 거의 말도 안 하고 후루룩 짭짭 파스타를 먹어치웠다. 그의 입에서는 ‘맛있다. 너무 맛있다"라는 감탄사가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아버지와 함께 압구정동 프렌치 식당 루이쌍끄 등 찾아다니며 미식 즐겨

해방촌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쿠촐로에서는 기적처럼 밤 12시에도 파스타를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이유석은 온종일을 땀을 흘리기 때문에 밤에 염분 보충 차원에서 파스타가 좀 짜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태리 속담에 "너무 짜서 못 먹기 전까지 짜게 하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그렇게 여기서 이탈리안을 하고, 나중에 외국에 한식당을 내고 싶어요." 김지운이 말했다.

비프 카르파치오와 파스타 카치오 에 페페. 간결하고 완성도 높은 카치오 에 페페에는 김지운의 음식 철학이 담겨있다. 각각 27,000원.

타협이 없는 파스타. 글의 장르로 치자면 김지운의 음식은 에세이나 르포, 장편 소설이 아니라, 안톤 체호프의 완성도 높은 단편 소설에 가깝다.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고집이 느껴지는, 한마디로 장인 스타일의 요리를 갓 서른 넘긴 셰프가 한다는 게 신기했다.

이쯤 되면 진짜 궁금해진다. 이렇게 자기만의 언어로 주장이 강한 음식을 만들어 내며 몸에 밴 겸손으로 호감까지 불러일으키는, 대체 ‘누구냐 너?”. 재벌가의 막둥이 아들은 순순히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그 전에 호형호제하는 셰프 이유석이 가로막고 먼저 말을 시작했다.

어느 날 루이쌍끄에 영국 신사처럼 멋진 한국 남자 셋이 찾아왔다. 노신사와 두 아들이었다. 언뜻 봐도 좋은 옷에 좋은 몸가짐, 음식에 대한 범절이 범상치 않았다. 포크와 나이프를 잡는 자세부터 달랐다. 그날 그들은 달팽이 요리와 오리, 양고기 등을 시켜먹었다. 멋진 부자는 그렇게 간간이 루이쌍끄를 찾았고, 군대 가기 전날을 마지막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신사는 아들 없이 몇 번 식당을 찾았지만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냥 조기축구회 회장처럼 생각하라고 했다. 이유석은 나중에 신문을 보고서야 그 노신사가 쌍용건설 회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들은 알려진 소문을 정정하고 싶어 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아버지가 소속된 회사가 IMF 이후 공중 분해되었기 때문에, 본인은 유복하긴 했으나 어쩌면 ‘기울어가는’ 집안의 평범한 막내아들일 뿐이었다고. 그가 요리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미래에 대한 디렉션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원 논문은 한식, 영국 상류사회 자제들과 생활하며 오히려 수수함을 배웠다

대신 그는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하고 싶은 게 점점 더 뚜렷해졌다. 아버지는 형과 그를 좋은 학교에 보냈다. 그와 형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영국의 왕세자들이 다니는 유명한 사립학교 이튼 칼리지에 입학했다. 첫 한국인 입학생이 형, 두 번째 입학생이 그였다. 대학은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원은 케임브리지를 나왔다. 어쩌다 보니 영국의 윌리엄 왕세자가 중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그의 선배다.

영국의 하이 소사이어티 문화 속에서 함께 생활했지만, 그 자신, 동양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귀족들이나 부자들이나 최고의 것을 경험한 그들은 반대로 험블하고 수수하게 생활했다. 과시하는 건 창피한 일로 여겼다. 마세라티 대신 20년 된 폴크스바겐 왜건을 타고 명품백 대신 에코백을 들었다. 높이 사는 건 안목의 취향이었다.

고급스럽고 섬세한 취향과 동시에 겉치레를 중요시하지 않는 수수한 태도는 김지운의 취향이 되었다. 포장마차처럼 비닐 천막을 둘러쳤지만, 쿠촐로의 중앙엔 대리석 원형 테이블과 세련된 꽃장식이 중심을 잡고 있다. 벽면 액자와 메뉴판은 간결한 영문 타이포로 군더더기 없이 실용적인 디자인이다.

김지운은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에서는 정치외교를 케임브리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역사학을 공부했다. 대학원 논문은 한식에 관해서 썼다. 논문을 쓰면서 그는 골방 집부터 이름난 식당까지 뉴욕의 한식당 30곳의 업주들을 인터뷰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제출된 그의 한식 논문을 읽어보고 싶다.

쿠촐로 2호점인 마렘마의 실내 공간. 이곳에선 가정식 이태리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간 곳은 귀신 잡는 해병대였다. 일곱 살 어린 동기병들과 같이 김포 애기봉 청룡회관에서 조리병으로 일했다. 삼겹살을 파는 대형 회관에서 불판 닦는 막내 사병을 벗어날 즈음 통역병으로 차출돼 제대했다.

해병대 취사병으로 삼겹살 불판 닦고, 제대한 날 오후에 바로 설거지 보조로 취직

해병대 전역한 날 오후, 그는 이태원의 한식당 비채나에 가서 저녁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을 푼 후 찾아간 곳은 한식의 대가라 불리는 이종국(현재 전경련 사대부집 곳간의 곳간 by 이종국 운영)선생. 그 집에서 1년을 살다시피 하며 한식을 익혔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한식을 배워 작년 3월 이태원에 정통 이태리 음식을 하는 식당을 차렸다. 타협하지 않는 한식을 하는 스승 밑에서 배운 후라 타협하지 않는 이탈리안 음식이 나왔다. 한 가지 메뉴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한 권의 논문을 쓰는 방식을 택한다. 모든 자료를 수집해서 자기에게 맞는 가장 맞는 ‘정도'를 찾아낸다. 한식을 하든, 프렌치를 하든, 이탈리안을 하든, ‘좋은 재료를 선별해서 고도의 기술로 손님에게 맛있게 전달한다는 건 같은 맥락'이라는 게 그의 논리였다.

무쇠 냄비에 버터로 요리한 치킨.27,000원.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는 가게라, 그의 아버지도 몇 번 왔다 그냥 간 적이 많다. 아버지는 지인들에게 열심히 자기 일을 찾아 사는 자식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행복하냐고요? 손님들이 앉아서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순간순간 행복감이 들긴 해요. 하지만 그냥 안도하는 정도예요. 오늘 하루도 잘 넘겼다는 정도죠(웃음).”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에도 요리책을 본다. 집에 요리책이 5백 권이 넘는다.

이유석도 말을 보탰다. “사람들이 다 각각 자기 직업으로 드라마를 찍잖아요. 요리사도 다를 게 없어요. 하루 무탈하게 지나가고 손님들이 좋아하고 직원들이 실수 안 하고 퇴근할 때쯤 와인이나 맥주 한잔하고 집에 가면 오늘 하루 잘 마무리했구나, 그게 행복인 거죠.”

며칠 후 쿠촐로 2호점인 마렘마를 찾아갔다.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화려한 가정식 메뉴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패션으로 치면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사랑스럽게 리뉴얼한 버버리를 먹는 느낌이랄까.
김지운은 선배인 영국 윌리엄 왕세자가 가게에 와도 보통 손님들과 똑같이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