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현상인가, 아니면 힘이 너무 들어가서인가.
많은 궁금증 속에 문을 연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22일 홈팀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시범경기가 열리며 본격적으로 첫 선을 보였다. 라이온즈파크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 최초 팔각형 모양의 골격을 가진 구장이라는점. 때문에 중앙 펜스에서 좌-우측 폴대까지 펜스가 직선으로 배치돼있다. 보통의 구장들은 폴대까지 둥글게 설치가 돼 외야 공간이 넓어지는 데 반해, 라이온즈파크는 좌중간, 우중간 펜스가 타 구장에 비해 앞으로 당겨진 모양이기에 홈런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예상됐다.
실제 첫 경기를 앞두고 만난 선수들은 "정말 가깝게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 4번타자 최형우는 "모든 선수들이 웬만하면 연습 배팅 때 홈런 타구를 만들어낸다. 박해민이 막 넘긴다"고 했다. 홈런타자인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이 아니냐고 하자 "아니다. 나만 넘기는 게 아니라 난타전이 일어날 것 같다. 때문에 꼭 유리하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시험이 어려우나 쉬우나 항상 고득점을 맞는 수험생이 있는데, 갑자기 시험이 쉬워지면 비슷한 점수대 경쟁자들이 많아져 원래 고득점을 기록하던 수험생에게는 매우 불리해진다. 장타자들에게는 라이온즈파크가 그런 효과를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11홈런을 기록한 구자욱이 "홈런이 더 나올 것 같아 좋다"고 말하는 걸 보니 설득력이 더해졌다.
이들 뿐 아니다. 삼성의 전설 이승엽도 조심스럽게 "홈런이 많이 나올 것 같다. 타이밍이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쉽게 홈런이 넘어갈 수 있는 '핫 존'이 있기에 조금 빠른 타이밍에 배트가 나가야 간다. 그 '핫 존'은 위에서 설명했듯, 일직선으로 뻗은 파울 폴대 인근이다. LG 양상문 감독은 "작년 대구구장과 비교하면 전체 홈런수가 2배로 늘 것"이라고 했고 이병규(9번) 박용택 등 베테랑 LG 타자들도 "삼성에서 홈런왕이 나오겠다. 외야 수비 훈련을 하는데 정상 수비 위치서 뒤를 돌아보니 바로 워닝트랙"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연전을 치른 결과, 생각보다 많은 홈런이 나오지는 않았다. 3개의 홈런이 나왔다. 그 중 2개는 어느 구장에서 날아갔더라도 홈런이 될 수 있는 큰 타구들이었다. 22일 첫 경기에서는 삼성 박해민, 23일 두 번째 경기에서는 LG 이병규(7번)와 양석환이 나란히 홈런을 때려냈다. 양석환의 홈런만이 '라이온즈파크표 홈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라이온즈파크의 규격은 그리 작지 않다. 중앙 펜스까지 122m이고 좌-우 파울 폴대까지는 99m다. 여느 구장과 비슷하다. 다만 위에서 언급했던 것 처럼 좌-우중간 끝부분이 곡선이 아닌 직선화 돼 타자들 입장에서는 착시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늘 뒤로 물러난 곡선 펜스만 보던 선수들이, 생소한 직선 펜스를 보면 훨씬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이 22일 경기 후 "연습 때는 가까워보였는데, 막상 경기를 해보니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더라"라고 말한 이유다.
아니면 첫 경기 큰 타구를 치고 싶은 선수들의 욕심에 질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아무래도 펜스가 가깝게 보이니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가면 정확한 컨택트가 되지 않는다. 최형우는 "연습을 해보니 결국 힘을 빼는 게 관건인 경기장 같다. 규모가 작은 청주에 오랜만에 가면 꼭 홈런을 치겠다는 생각에 힘이 들어갔고 성적이 좋지 않았었다"고 설명했다. 최형우는 23일 LG전에서 3타수 무안타에 그쳤는데, 삼진이 2개였다. 오히려, 힘을 빼고 가볍게 방망이를 돌린 LG 양석환이 라이온즈파크의 첫 홈런 수혜자가 됐다. 양석환의 타구는 류 감독이 지적했던 '핫 존'을 정확히 통과해 담장을 살짝 넘어갔다. 양석환은 경기 후 "좌익수 키를 넘기는 타구 정도로 예상했다. 홈런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양석환의 홈런으로 신호탄을 쐈지만, 라이온즈파크 홈런 상승 효과는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과연 라이온즈파크는 새로운 홈런 공장으로 자리매김할까, 아니면 선수들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주는 '밀당의 제왕'이 될까.
대구=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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