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원·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우리 아파트에는 '두 얼굴의 사나이'가 산다. 그는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에 소리를 지르며 화(火)를 표출한다. 히스테리컬한 그의 분노는 아내와 아이들을 향하는데, 누군가를 사납게 몰아붙이는 고함이 같은 동에 사는 우리 집까지 전해진다. 간혹 물건을 던지거나 기물을 부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소음으로 단잠에서 깨는 것도 괴로운 일이나 아이들에 대한 위협이 학대 수준인 것 같아 근심스럽다. 남의 집 가정사에 끼어들 수 없는 노릇인지라 방관하고 있지만 뒷짐만 지고 있기에도 석연치 않다.

아침에 보는 그 남자는 딴판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그는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있었는데, 인자한 아버지로 정체를 가장(假裝)했다. 내면에 숨겨진 화를 억제하고 온화한 미소, 사랑하고 있음이 역력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감싸는 모양이 당최 동일 인물로 보기 어려웠다. 한 번은 주차장에서 아내를 윽박지르다가 내가 나타나자 표정과 태도를 싹 바꾸는 장면도 목격했다.

그 남자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전시하고, 과시하기 위해 꾸며내는 연기(演技)가 몸에 밴 이 사내는 자신이 군림할 수 있는 밀실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협하면서 상투적으로 행복을 가장하는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범생의 얼굴 뒤에 숨겨진 폭군의 마성은 타인의 평판에 연연해하는 사람들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일종의 병이다.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가 분리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순발력 있게 둘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때마다 표정을 바꾸어가면서 연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남자의 분노에 찬 고성이 아파트에 울려퍼졌다.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그를 어찌해야 할까. 층간 소음으로 경비실에 알릴까. 현관문 아래로 메모라도 밀어 넣어볼까.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두 얼굴의 사나이'는 요즘 나의 일상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미스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