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 논설위원

하도 알파고와 인공지능(AI)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 ‘AI 피로증’ 같은 것이 생긴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기계가 아니라 동물 얘기를 해볼까 한다. 중국에서 보내줘 용인 에버랜드에 와 있는 판다곰 암수 한 쌍 아이바오, 러바오에 관해서다. 판다는 세계적으로 2000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은 ‘멸종위기 보호종’이다. 판다를 키우고 있는 에버랜드 사육사 강철원씨와 중국에서 기술 지원을 위해 와 있는 류좐(劉娟)씨 설명을 들어봤더니 판다가 멸종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은 원래 잡식성인데 판다는 채식만 한다. 거의 대나무만 먹는다. 왜 그렇게 됐는지 확실하지 않다. 고기의 감칠맛을 느끼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기능을 잃었다는 학설도 있고, 서식지 경쟁에서 밀려 대나무 숲으로 들어간 후 대나무 먹이에 적응했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판다의 해부학적 구조는 여전히 잡식성이다. 장(腸) 길이가 짧다. 판다가 먹은 대나무 잎·줄기가 대변으로 배출되기까지 6시간 걸린다. 보통 초식동물은 15시간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대나무 섬유질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17% 정도만 소화할 수 있다. 사슴은 먹는 풀의 80%를 소화한다. 결국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려면 무지 먹어야 한다. 판다는 자는 일 빼놓고는 하루 종일 먹는 게 일이라는 것이다. 에버랜드에선 하루 6번 먹이를 준다. 사육사들이 밤 10시쯤 마지막으로 대나무를 쌓아놓고 아침에 가 보면 뒤적거린 흔적이 있다고 한다. 자다가도 일어나 먹는 것이다. 그렇게 먹어대도 여전히 영양분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판다는 최대한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코알라처럼 느릿느릿 움직인다. 뇌의 크기도 작다. 뇌가 크면 작동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낳는 새끼도 아주 작다. 100㎏ 몸집 어미가 낳는 새끼가 100g밖에 안 된다. 생쥐 크기다. 어쩌다 쌍둥이를 낳더라도 어미가 한 놈은 포기해버린다. 둘 다 키울 자신이 없어서다. 황당한 것은 암수 교미 가능 기간이 1년 중 하루, 길어야 하루 반 정도라는 점이다. 3~4월에 짝짓기를 하는데 암컷이 10~15일 발정기 동안 성(性)호르몬 수치를 올려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치가 뚝 떨어지면서 배란(排卵)을 한다. 그때 하루 안에 교미를 마쳐야 한다. 사육사들은 암컷 배설물을 꾸준히 분석해 가다가 이때다 싶으면 따로 사육 중이던 수컷을 암컷 방에 넣어 합방을 시도하게 된다. 야생에서도 암컷, 수컷이 만나는 것은 배란기 하루뿐이다. 문제는 수컷 판다의 성욕이 별로라는 점이다. 그래서 교미를 유도하려고 비아그라도 먹이고 비디오도 보여준다. 결국 한두 해 시도해보다 안 되면 인공수정 방식을 써야 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교미 또는 수정을 시켰다 해도 새끼를 낳는 데까지 골인하는 확률은 절반 이하다. 이렇게 서식지가 협소하고, 먹이가 까다롭고, 단독 생활을 하고, 새끼 낳는 것이 힘든데도 어떻게 명맥을 이어가는 걸까. 곰곰 따져보면 판다 외모(外貌)가 판다의 생존을 지켜주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보통 곰처럼 거무튀튀하게 못생기고 사납거나 했으면 진작 사라지고 말았을지 모른다. 워낙 앙증맞고 성격도 유순한 편이어서 인간이 상당한 돈을 들여서 개체 수를 늘려가고 있다. 동물 종(種)들은 각기 다양한 비교우위를 갖고 있어서 생존 경쟁에서 버텨나간다. 판다의 비교우위는 사람들이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귀여운 겉모습이다. 지금까지 중국 밖에서 판다 번식에 성공한 예는 미국·홍콩·대만·말레이시아·스페인 등에서 20여 차례에 불과했다. 두 살, 세 살인 아이바오(암컷)와 러바오(수컷)는 2~3년 더 있어야 번식 연령이 된다. 한국서도 판다 새끼를 볼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