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대학가를 뒤덮었던 1965년 봄, 정부는 휴교령과 조기 방학 조치를 내렸다. 대학 신입생들은 갈 곳을 잃었다. 고려대 65학번 신입생 30여 명은 그해 5월 교양학부 강의실을 빌려서 독서 토론회를 열었다.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가 첫 작품이었다. 남북 간 이념 대립, 토지개혁 등을 주제로 한 토론은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내친김에 정기적으로 독서 토론회를 열기로 하고 '호박회(虎博會)'라는 서클 이름을 붙였다. 고대의 상징인 '호랑이'와 박람강기(博覽强記)를 지향한다는 뜻에서 '박(博)'을 합친 말이었다.
올해 반세기를 맞은 '호박회'가 19일 고려대에서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독서 토론회답게 이들은 이날도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토론하기로 했다. 김인환·김명인·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윤영대 전 통계청장,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모두 호박회원 출신이다. 졸업생 회원들은 40~50년 후배인 재학생 회원 80여 명과 요즘도 3개월마다 책을 읽고 토론한다. 재학생 회장을 지낸 이형규(고려대 경영 10학번)씨는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은 선배들과 토론하면 생생한 체험이나 깊이 있는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호박회의 도서 목록은 지금도 전통으로 내려온다. 처음엔 선우휘의 '불꽃'과 이범선의 '오발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등 문학 작품이 많았지만, 플라톤의 '향연',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으로 주제가 다양해졌다. 1969년에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로 100회 기념 토론회를, 1973년에는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으로 200회 기념 토론회를 열었다.
정지용 시집 등 당시 해금되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은 회원들이 필사해 돌려가면서 읽었다. 호박회 회원인 이명자 시인은 "바래지 않은 잉크 글씨로 남아 있는 필사본 시집이 원본보다 귀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토론회는 빈 강의실이나 학교 앞 빵집과 주점에서 열렸지만, 신촌까지 가서 연세대 학생들과 합동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소설가 최인호씨도 연세대 졸업생 자격으로 참석했다. 독서 토론의 '고연전(연고전)'이 열린 셈이다. 호박회 회원들은 상가(喪家)에서도 책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유진채 전 충북대 교수는 "독서 토론으로 밤을 새우는 모습에 주변 문상객들이 놀라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호박회 회원들이 졸업 후 사회로 진출하면서, 회원들이 쓴 책이 토론 주제로 선정되는 일도 늘었다. 김명인 교수의 시집 '파문', 이상수 전 장관의 '충무경찰서 초대가수', 최광식 전 장관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대표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광식 전 장관은 "학보사 기자로 호박회 토론에 취재 갔다가 회원으로 가입했다"면서 "내 삶은 호박회와 박사 논문, 박물관이라는 세 '박(博)'으로 이어진 셈"이라고 했다. 김인수 강원대 명예교수는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 두 졸업장을 받았다. 하나는 학교 졸업장, 다른 하나는 호박회에서 받은 상앗빛 도장"이라면서 "이 도장은 지워지지 않는 내 영혼의 인감도장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