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도 브라질도 이탈리아도 아니다. FIFA(국제축구연맹) 209개 회원국 중 1위를 지키고 있는 나라는 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 정도인 벨기에다. 작년 11월 사상 처음 1위에 올라 벌써 5개월째 버티고 있다. 유럽의 '붉은 악마'인 벨기에 대표팀엔 20대 초중반 세계 정상급 선수가 즐비하다. '황금 세대'가 어떻게 이처럼 갑자기 쏟아져 나왔을까.
최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차로 30분 달려 인구 2만 소도시 투비즈를 찾았다. 도시는 주말을 맞아 축구로 시끌벅적했다. 축구팀 AFC 투비즈는 이번 시즌 벨기에 2부 리그에서 2위를 달리며 선두 앤트워프를 승점 2 차로 쫓고 있었다.
올 시즌 벨기에 2부 리그는 전쟁터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1부 리그 16개팀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2부 리그에선 17개 팀 중 8팀만 남는다. 나머지 9팀이 3부도 아닌 아마추어 리그로 강등된다. 중하위권 팀들은 매 경기 벼랑 끝 승부를 벌인다. 벨기에 오이펜 팀의 팬인 미셸 아메루는 "주말마다 벨기에 팬들은 울고 웃는다"며 "자기 팀이 하루아침에 아마추어 리그로 내려간다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리그는 생존을 위해 가혹할 정도의 군살 잘라내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리그와 팀 가치를 높여 중계권료를 올리고 구단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피에르 프랑수아 벨기에 프로리그 CEO는 "1·2부 합쳐 33팀은 벨기에 규모에 너무 많다"며 "리그 축소가 오히려 경쟁력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인구는 1100만에 불과하다. 주변에 영국과 독일 스페인 등 인기 리그가 즐비해 많은 국내 중계권 수입은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마루앙 펠라이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세르 샤들리(토트넘) 등을 키워낸 벨기에의 명문 스탕다르 리에주의 중계권료 수입은 한 시즌에 80억원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벨기에 클럽들은 자체 육성한 유망주들을 타국 빅리그로 이적시켜 수익을 올린다. 리에주는 매년 130억원의 이적료 수익을 목표로 한다. 헹크는 2011~2012년 쿠르투아 등 3명의 선수를 떠나보내며 400억원을 벌어들였다.
벨기에가 유소년 육성에 관심을 두게 된 건 개최국이던 유로 2000 당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재앙을 맛본 이후의 일이다. 이후 벨기에는 오랜 구상을 거쳐 2004년 '축구 개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핵심은 유소년 정책이었다. 벨기에 협회는 전국 모든 유소년 축구팀에서 7세 이하 어린이들은 2대2, 9세 이하는 5대5, 11세 이하는 8대8 경기를 치르게 했다. 경기장 크기도 성인 규격의 절반이 넘지 않도록 막았다. 선수들이 공을 많이 다루도록 한 혁신적 조치였다.
그 결과 뛰어난 선수들이 비슷한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2014~2015시즌 프리미어리그 MVP 에덴 아자르(25·첼시),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 2위(18골) 로멜루 루카쿠(23·에버턴), 이번 여름 유럽 전체 최고 이적료인 1000억원에 맨체스터 시티로 간 케빈 더브라위너(25), 차세대 세계 최고 수문장 티보 쿠르투아(24·첼시)가 모두 벨기에 출신이다. 그들은 지금 벨기에의 1위를 이끄는 주역이다.
크리스 판 푸이벨테 벨기에축구협회 기술이사는 "K리그도 중국의 자본이나 일본의 시스템을 당장 따라잡기 어렵다고 들었다"며 "K리그가 내실을 기하기 위해 벨기에로부터 참고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벨기에 축구의 성공 비결은 14일 오전 12시 30분 TV조선에서 방영되는 'FIFA 랭킹 1위, 벨기에의 비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