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었다. 김진숙 회장(70)에게 지난 1976년의 어느 날은 차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서른두 살 되던 해,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찾아왔다. 바로 둘째 아들의 교통사고. 다섯 살 어린 아들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뇌 손상까지 입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 병원에 들렀다 돌아가던 그 또한 그날, 똑같은 사고를 당했다. 불과 사흘 만에 일어난 참사. 아들은 오른쪽, 남편은 왼쪽 뇌를 다쳤다.
몇 년에 걸쳐 간호와 기도를 거듭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우리 가족이 회복될 수만 있다면 평생을 베풀면서 살겠다고.
숱한 날, 간절했던 마음. 하늘은 외면하지 않았다. 다행히 둘은 차츰 회복세를 띠었고, 지금은 많이 회복했다. 육사 출신인 남편의 남다른 재활 의지도 크게 한몫했다.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 ROTC장교로 군대를 다녀올 정도가 됐다.
김 회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에 따라 40대 중반의 나이에 특수교육을 전공, 석박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동방사회복지회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2007년부터는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10년째다.
“원래 제 전공은 교육학입니다. 젊은 시절 동방사회복지회에 근무를 하긴 했지만, 사명감 차원은 아니었어요. 그땐 그저 직장을 다닌다는 생각이었지, 복지에 대한 큰 뜻은 없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아이를 키우며 살려고 했는데 연이은 사고가 인생을 바꾼 셈이지요.”
부임 첫날. 김 회장은 새벽같이 책상에 앉아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예전처럼 행복할 수만 있다면…’ 했던 바람. 그건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복지회의 기조와도 같았다.
설립 반세기, 국내아동 전문 복지에서 국제사회까지 확장
김 회장은 지난 10년간 복지회를 제집처럼 아끼고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해왔다. 운영에 있어서도 빈틈이 없다. 지금도 총 32개 산하기관의 일간, 주간, 월간 보고를 손수 검토할 정도다. ‘투명성’은 말할 것도 없다. 후원금 지출 내역은 물론, 커피값 영수증까지 모두 챙길 만큼 깐깐하다.
복지회는 지난 1972년에 설립돼 올해 창립 44년을 맞았다. 설립자는 고암 김득황 박사. 그간 입양, 미혼모 지원, 장애인·노인복지 등 다방면에 걸친 업무를 수행해왔는데, 이 중 특히 아동과 미혼모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김 회장은 “아동이 자라서 사회구성원이 된다. 때문에 아동이 건강하게 잘 자라줘야 한다. 복지의 근원은 아동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복지회는 원스톱 아동보호체계를 갖추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기관이다. 학대아동보호, 상담치료, 생활시설, 아동입양, 부모교육, 소아과, 교육기관 등 아동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일관된 체계 안에서 제공하고 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최적화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일 이슈가 되고 있는 학대 아동이 발생한 경우, 신고가 들어오면 저희 산하시설 중 하나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출동하게 됩니다. 응급차가 출발한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상담과 치료가 진행되는데요,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로 인계합니다. 그곳에서 보호하면서 정기적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는 ‘동방평택복지타운’에 있는 ‘야곱의집(3세 미만)’으로 보냅니다. 3세 이상 아동에 대해서는 적합한 기관을 물색하고요. 한마디로 종합병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국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1년부터 코피노를 위한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필리핀 현지에서 코피노 아동들과 그 엄마들을 위한 교육과 직업교육을 지원하고, 아동센터도 운영 중이다. 지금은 코피노뿐만 아니라 필리핀 빈곤지역 아동들을 위한 사업으로 확장됐다.
‘해피맘’ 미혼 양육모가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아동 문제를 들여다보니, 시선은 자연히 엄마에게도 갔다. 복지회에서는 국내 최초로 미혼양육모 지원의 전방위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아이를 혼자 키우는 미혼모는 18만8천여명으로 추산되며 미혼모 10명중 8명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다.
“제가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명예이사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사회복지정책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특히 입양정책이 급변함에 따라 기관의 변화가 불가피했죠. 지난 2012년 입양특례법이 도입되면서 우리 기관은 물론 사회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2011년 동방사회복지회의 ‘해피맘’ 사업이 탄생한 배경이다. 해피맘은 총 3단계의 체계적인 과정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우선 상담으로 자존감을 높이고, 소득 증대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직업교육을 받게 한다. 이후 창업을 보조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자립을 돕는다.
“지난해에만 약 2백 명의 미혼양육모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였죠. 이분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상담, 직업교육, 양육코칭 분야의 전문가 1백80여 명을 초빙했습니다. 거의 일대일 맞춤형 코칭이 이뤄진 셈입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엄마들의 일터는 카페, 네일 샵 공방 등 8곳이다. 내년에는 11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혼모 스스로 자신감이 향상된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김 회장은 말한다.
“스스로 본인이 미혼모인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자신감과 상실감을 회복한 것이죠. 미혼 양육모 지원의 전방위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해피맘 사업으로 엄마들이 정말 ‘해피’해 졌으면 좋겠어요.”
국내 입양 활성화, 미혼모 인식 개선 숙제
10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우선은 국내 입양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그게 좀처럼 쉽지 않아요. 사회 인식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누구의 딸, 누구의 아들과 같은 꼬리표를 항상 달게 돼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해외에 나가는 것보다는 같은 얼굴, 같은 정서인 국내에서 자라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복지회에서는 입양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중·고등학교에 가서 인식 개선 교육을 펼치기도 한다.
두 번째는 미혼양육모에 대한 외부 인식 개선이다. “아직도 미혼모라는 걸 밝히는 순간 취업에서 낙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스스로 자긍심은 많이 고취됐지만, 아직 외부 인식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국내 입양을 고려하는 부모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예쁜지, 건강한지, 혈액형이 뭔지. 물론 자신의 아이이기 때문에 그 또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입양아를 너무 많이 가리는 것, 그건 부모 중심의 입양이죠.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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