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비가 쏟아지면 어김없이 청개구리가 울었다. 할머니는 "진작 엄마 말 좀 듣지" 하고 혀를 차며 거꾸로 행동하는 청개구리 얘기를 들려줬다. 큰비가 내리면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구슬피 울고 있을 청개구리를 상상했다. 처마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왠지 슬퍼지는 여름밤이었다.

지난 1일 서울대 생명과학부 브루스 월드만 교수와 안득남 연구원이 영국 왕립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거꾸로 하는 청개구리'를 떠올리게 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항아리곰팡이에 감염된 청개구리 수컷은 정상 수컷보다 더 빠르고 강한 구애(求愛)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 어느 동물이든 병에 걸린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청개구리는 오히려 병에 걸린 수컷이 더 매력적인 울음소리를 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청개구리의 '거꾸로 사랑' 습성 때문에 항아리곰팡이는 청개구리 후손으로 퍼질 가능성이 커진다. 항아리곰팡이에 감염된 청개구리는 일종의 혼수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그 상태에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울었던 것. 곰팡이가 청개구리를 '좀비' 상태로 만드는 셈이다. 월드만 교수는 "곰팡이가 자신을 위해 청개구리의 번식 행동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항아리곰팡이는 전 세계 양서류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1993년 호주에서 포자(胞子)가 항아리처럼 생긴 곰팡이가 처음 발견됐다. 항아리곰팡이는 양서류에 침입해 피부 안쪽 세포를 보호하는 케라틴 조직을 먹고 산다. 피부 호흡을 하는 양서류에게 케라틴이 없어진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곰팡이에 감염된 양서류는 90% 이상이 질식사한다. 이후 항아리곰팡이로 인해 수백 종이 멸종했고, 남은 양서류도 3분의 1이 위협을 받고 있다.

항아리곰팡이에 감염되고도 몇 년을 끄떡없이 사는 개구리도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사는 청개구리가 그렇다. 곰팡이에 감염되면 아무래도 몸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허약한 개체는 집단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왜 청개구리 집단에서는 항아리곰팡이에 감염된 개체가 꾸준히 발견되는 것일까. 월드만 교수가 이번에 그 답을 찾은 것이다.

과학계는 이번 연구 결과가 항아리곰팡이로부터 개구리를 지켜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논문의 제1저자인 안득남 연구원은 그런 찬사를 들을 수 없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청개구리 연구를 하는 내내 유방암과 싸우다가 2014년 7월 8일 서른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석사학위 수여식을 한 달 앞둔 때였다. 자신의 논문도 보지 못했다. 당시 생명과학부 학과장이던 이건수 교수는 가족의 요청에 따라 막 인쇄된 석사 학위논문과 학위증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도착 몇 분 전 숨이 멎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안 연구원은 늦깎이 과학자였다. 그는 경남 김해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인제대 국제경상학부를 나왔다. 4학년 때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 인턴에 선발될 만큼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었다. 전공 관련 직장생활을 계속하던 중 서른이 되던 2011년 그렇게 좋아하는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딸은 어릴 때부터 키우던 개가 죽으면 직접 산에 올라가 무덤을 만들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연구에 모든 것을 바쳤다. 대학원 입학 1년 전에 유방암 2~3기 판정을 받은 상태였지만 논 옆에서 밤새 청개구리 울음소리를 녹음하는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에 있는 날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또 밤을 새워 무역 관련 문서를 번역했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안 했고 병원도 혼자 다녔다.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공부할 수 있다"며 잠시 학업을 중단하라고 종용했지만, 안 연구원은 연구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마지막 연구임을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월드만 교수는 안 연구원이 세상을 떠날 때 "스승으로서 꼭 국제학술지에 그의 연구를 소개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의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본 것이다. 안 연구원의 아버지는 "딸은 늘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과학자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올여름 청개구리 울음소리는 슬프게만 들리지 않을 것 같다. 질병에 쓰러질지언정 시련에 굴복하지 않았던 한 과학도의 열정이 먼저 떠오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