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서울은 책을 읽지 않는 도시다. 본지 취재진이 지난달 24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지하철 2호선 충정로~서울대입구 구간에서 객차에 탄 승객들을 관찰했다. 책과 신문 등 종이 인쇄 매체를 들고 있는 사람이 수백 명 중 12명뿐이었다. 그나마 토익책이나 전공 서적 펴든 대학생, 신문 보던 장년 남성 등까지 합한 숫자다. 책 보는 사람 대신 거북목으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승객들만 객차 칸칸이 되풀이됐다.

이틀 뒤 영국 런던 교외를 오가는 기차. 거의 모든 칸에서 책 읽는 시민이 적어도 한둘은 눈에 띄었다. 대학생 팀(24)은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나 통학하는 버스·기차에서 책 보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며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책을 읽는다"고 했다.

서울 지하철 스마트폰 삼매경 - 서울에서는 책 읽는 풍경이 갈수록 희귀해지고 있다. 3일 서울 지하철 열차 안. 자리에 앉은 승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20년 전에 비해 21.5%포인트나 떨어졌다. 그렇다고 전자책 읽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 한국출판연구소의 '전자책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전자책 독서율(지난 1년 동안 전자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은 15.5%로, 2년 전과 비교해 0.9%포인트 늘었다. 독서량으로 따지면 되레 0.2권 줄었다.

◇독서 천국 핀란드, 스마트폰보다는 책 읽는 미국 공항

북유럽의 핀란드는 '독서 천국' 같았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 30분쯤 핀란드 헬싱키대학 도서관. 퇴근길 직장인의 발길이 줄줄이 이어졌다. 정장 갖춰 입고 서류 가방 든 직장인, 어린이집에 맡겼던 자녀를 찾아 유모차에 태우고 온 직장 맘이 도서관 3층 소설 코너에서 책을 집었다. 직장인 이로 펠토넨(34)씨는 "헬싱키 대성당을 마주 보고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이 도서관은 헬싱키대 학생뿐 아니라 시민 누구나 자유로이 책을 열람하고 빌릴 수 있다. 핀란드의 15세 이상 독서율(2013년 OECD 조사)은 83.4%로 한국(74.4%)보다 9%포인트 높고 OECD 국가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지난 2일 미국 애리조나주(州) 피닉스의 공항 라운지. 비행기를 타러 온 여행객들이 저마다 방법으로 지루한 대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혼자 여행 중인 사람들의 손에는 대부분 책이 들려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노벨상은 어떻게 제정되었을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보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절반 이상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소설, 잡지, 투자 가이드 등 종류는 다양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는 광학 엔지니어 스콧(35)씨는 소설 '갱스터'를 읽고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종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밖에선 스마트폰도 쳐다보기 싫다"면서 "일과 후 짬이 나면 주로 책을 읽는 편"이라고 말했다.

독서율 81.1%인 미국인은 공공장소에서 여전히 스마트폰보다 책 읽기를 선호한다.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센터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일반 미국 성인은 1년에 약 5권을 읽었다. 또 전자책(28%)보다는 종이책(70%)을 선호하는 사람이 여전히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에선 1년에 책 6억4000만권 팔려

일본 사회도 한국처럼 '국민이 책 안 읽는다'며 걱정이 크다. 일본의 15세 이상 독서율은 67.0%로 한국보다 더 낮다. 하지만 우리는 고교생의 입시 대비 책 읽기 등까지 다 포함된 수치라 독서의 질(質)은 일본이 더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게다가 한국은 55~65세 독서율(51.0%)이 16~24세 때(87.4%)보다 36.4%포인트 급격하게 떨어지지만 일본은 13.1%포인트 정도만 준다. 우리보다는 전 연령에서 골고루 책을 본다는 얘기다. 2014년 일본출판자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1억2000만 일본인이 한 해 서점에서 6억4000만권을 사보고 도서관에서 7억권을 빌려 봤다.

미국·핀란드·영국·일본과 우리나라의 '5색(色) 독서 풍경'을 비교해보면, 책을 읽지 않는 한국인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윤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서율이 하락하면 그 사회 인적자원의 혁신·창의성이 함께 떨어진다"며 "책 읽지 않는 사회에서는 선진국 진입은커녕 현 수준의 국가 경쟁력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