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영남제분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의 피해자 하지혜(사망 당시 22세)씨의 어머니 설모(64)씨의 빈소.


2002년 영남제분 회장의 아내 윤길자씨의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해' 사건으로 딸 하지혜씨를 잃고, 지난 20일 아내까지 떠나보낸 피해자의 아버지 하모씨가 "아내의 죽음은 (가해자들에 대한) 마지막 항변이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23일 부인의 장례식을 마친 아버지 하씨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집사람의 죽음은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마지막 몸짓이었고, (가정을 무너뜨린)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항변이었다"면서 "2002년 이후 단란했던 가족이 암흑 속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하씨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보면 장시간에 걸친 자살행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2년에 딸을 잃고) 아내가 3~4차례 자해를 했고,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견뎌왔다"고 말했다.

하씨의 부인 설모씨는 사망 당시 몸무게가 38kg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하씨는 "세월이 갈수록 치유되기보다는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고 술에 의존하게 됐다"면서 "몸무게도 병적으로 이렇게 줄어들었다. (아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 같다. 영양실조도 있고 쇼크로 죽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스스로 사려는 삶을 포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범인 윤길자씨가 호화병실에서 지냈던 것에 대해 그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하씨는 "죄를 지은 사람이 호화병실에서 저녁메뉴까지 지시해가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면서 "반성하는 표시 한 번 없이 피해자를 비웃는 듯한 행태를 보는 비통함과 분노를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앞서 2002년 윤씨는 사위의 이종사촌 여동생인 하지혜(사망 당시 22세)씨를 청부 살해했다. 판사인 사위가 하씨와 불륜 관계라고 오해한 윤씨가 조카와 그의 고교 동창에게 1억7500만원을 주고 벌인 일이었다. 이화여대 법학과에 다니던 하씨는 그해 3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납치돼 경기 하남의 검단산 산중에서 범인들이 쏜 공기총을 맞아 숨졌다.

그로부터 14년여가 흐른 지난 20일 하씨의 어머니 설모(64)씨가 집에서 숨을 거뒀다. 홀로 살던 설씨의 시신 옆에는 절반쯤 마시다 남은 소주 페트병과 빈 맥주 캔이 뒹굴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서 빈 막걸리병과 소주병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遺書)는 없었고, 부검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일단 영양실조에 따른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