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박모(32)씨는 지난 10개월 동안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인근 ‘잠만 자는 방’에서 지냈다. 침대만 하나 겨우 들어갈 공간이라 취사도구나 다른 가구를 놓지 못했다. 대학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빨래는 근처 빨래방에서 해결했다. 방값으로 보증금 없이 매달 15만원을 냈다. 박씨는 “근처 월세 방이 대부분 40~45만원 정도 하는데 잠만 자는 방은 관리비나 보증금이 없어 돈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개강을 앞둔 대학가에서 방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이나 계속 오르는 원룸의 월세가 부담스러운 학생들은 ‘잠만 자는 방’이나 고시원 같은 주거 공간을 전전하고 있다. 대학가 주거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학생들 스스로 ‘셰어 하우스’를 공급하는 움직임도 있다.
대학가 하숙집 중에도 최근 ‘잠만 자는 방’을 따로 운영하는 곳이 늘고 있다. 식사 제공을 안 하는 대신 월세를 낮추고 방을 빌려주는 것이다. 서울 신촌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김선자(58)씨는 “잠만 자는 방은 보증금 없이 월 30만원이다. 보통 하숙집은 45-50만원인데 요즘 학생들은 밥보다 월세가 싼 방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 잠만 자는 방은 개강 전부터 공실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덧붙였다.
대학생들이 잠만 자는 방을 선호하는 것은 기숙사를 구하기 어려운 데다가 전·월세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저금리에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있고, 선호도가 높은 원룸의 경우는 월세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서울 신촌 우리공인중개사의 이두연 소장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70만원짜리 원룸 밖에 남지 않았다”며 “1000에 50만원짜리는 이미 다 차서 매물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숙사는 수요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지난해 수도권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10.4%에 불과했고, 운 좋게 학교 기숙사를 배정받아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 입주를 꺼리기도 한다. 서울 시내 일부 사립대는 기숙사 비용이 한 달에 50만~60만원에 달해 주변 원룸 월세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원하는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같은 정부의 지원책은 큰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연세대 3학년 정모씨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운 좋게 LH 지원 대상자로 뽑혔지만, 조건에 맞는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소를 수없이 다녔다”며 “가계약이 세 번이나 깨진 후에야 집을 겨우 구했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대학생들이 주거난 해결에 직접 나서 ‘셰어하우스(share house)’를 공급하기도 한다. 셰어하우스는 여러 명이 한집에서 살면서 침실은 따로 쓰지만, 주방·욕실 등은 공유하는 생활방식이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아예 최근 동문이 운영하는 벤처업체 ‘코티에이블’과 함께 서울대 학생들을 위한 셰어하우스 ‘모두의 하우스’를 열었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등 학교 인근에 11채의 집을 마련해 가구당 4명의 입주자가 1년 동안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보증금은 500만원으로 같고 2인 1실의 경우 월세 20만~35만원, 1인 1실의 경우 월 28만~50만원이다. 관리비나 공동 경비는 주거자 전원이 나누어 부담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140여명이 지원해 50명이 입주했다.
안혜린 서울대 총학생회 주거팀장은 “서울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11% 정도 밖에 되지 않고 까다로운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이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행복주택은 실용성이 없어 직접 학교 앞에 셰어하우스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