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음반회사에서 일하는 캐서린 바렛(31)씨는 3년 전 한국인 인턴 직원을 통해 '쿠션 팩트'를 처음 접했다. "파운데이션도, 파우더도 아닌데 바르면 잡티를 감쪽같이 감출 수 있다"며 흥분한 그는, 친구가 한국 갈 때마다 쿠션 팩트를 사다 달라고 부탁한다. 요즘 애용하는 제품은 자는 동안 바르는 '슬리핑 팩'. 바렛씨는 "이젠 뉴욕 세포라나 인터넷에서도 살 수 있는 한국 화장품은 사용법이 재미있고, 가격도 부담 없어 이것저것 사서 쓴다"고 했다.

뉴욕 맨해튼에도 K뷰티 붐 - 뉴욕에서의 K뷰티 바람은 2~3년 전부터 시작됐다. 색조보다 스킨케어에 중점을 둔 한국식 화장법에 서양 여성들이 큰 매력을 느낀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사진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국지사가 뉴욕 맨해튼에서 개최한‘코리아 코스메틱 블리스’행사장.

베를린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사브리나(30)씨는 1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으로 한국의 네일케어 관련 사진들을 보면서 트렌드를 따라잡는다. "손톱마다 색깔을 달리 칠하고 반짝이는 보석, 스티커로 꾸미는 한국 네일 아티스트들의 손재주에 매번 감탄한다"고 말했다.

◇로레알도 따라 하는 한국 화장품

한류 스타를 내세워 아시아 시장에서 걸음마를 시작한 K뷰티가 세계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는 물론 미국과 중동, 중남미까지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 브랜드 '더페이스샵' 글로벌 모델인 배우 김수현이 지난해 9월 중국 항저우의 최대 복합쇼핑몰 인타임 시티에서 팬 사인회를 하는 모습.

세계 최대 화장품 편집매장 세포라는 지난해 10월 한 달간 미국 전역에서 'K뷰티'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빌리프'(LG생활건강) 와 '아모레퍼시픽'은 물론 '투 쿨 포 스쿨' '닥터 자르트' '조성아22' 등 중소기업 제품들이 집중 조명 받았다. 제품 선정에 까다로운 세포라가 특정 국가 제품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한 예는 없다. '뉴 뷰티 매거진' 안나 히메네즈 편집장은 "색조보다 스킨케어에 중점을 둔 한국식 화장법은 미국 여성들이 원했던 가장 쉽고도 확실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요즘 각광받는 BB크림, 쿠션 팩트, 시트 마스크 등도 모두 한국에서 시작된 유행이다. 한국 업체들은 기존 시장에 없었던 제품들을 공격적으로 내놓으면서 '재밌고 새롭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파리의 유명 편집매장 '콜레트'에 입점한 한국 중저가 브랜드 '투 쿨 포 스쿨'은 학용품처럼 생긴 제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크레용처럼 생긴 립글로스를 산 줄리 마넹(38)은 "이렇게 귀엽게 생긴 화장품은 처음"이라며 "촉촉한 데다 발색이 뛰어나 놀랐다"고 했다. 한국 BB크림이 아시아에서 대유행하자, 1~2년 뒤 바비 브라운·랑콤·에스티 로더 등 해외 브랜드에서도 같은 제품을 내놨다.

◇한국 여성처럼 촉촉한 피부 원해

[한국 대표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은?]

K뷰티는 한국 드라마와 K팝 열풍이 거세게 분 중국과 동남아에서 시작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의 '도자기 피부' 덕분이다. 이영애, 이민호 등 한류 스타를 모델로 앞세운 마케팅도 한몫했다. 지난해 한국 화장품 해외 수출액은 24억3936만달러로 전년보다 53.1% 증가했다. 삼성 휴대전화 1320만대 수출과 맞먹는다.

미국에서 K뷰티 플랫폼인 소코 글램을 창업한 샬럿 조는 "한국 화장품들은 가격에 비해 품질이 높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회원 중 70%가 비(非)아시아인이다. K뷰티가 유행하자 미국 5대 출판사인 하퍼 콜린스가 선인세 15만달러를 제시하며 샬럿 조에게 책을 내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리틀 북 오브 시크릿'에는 한국말 '촉촉'이란 단어가 'chokchok'으로 적혀 있다. 샬럿 조는 "미국 여성들이 '촉촉'이란 표현을 알 정도다. 색조 화장을 즐기던 미국 여성들이 피부 관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여자처럼 되고 싶다'는 로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차이나 리스크' 넘어서는 게 관건

K뷰티의 중국 시장 의존도가 큰 것은 여전히 숙제다. 지난해 화장품 수출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40.7%. 화장품 업계가 K뷰티를 미국뿐 아니라 중동, 중남미로 넓히려는 것도 '차이나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0월 토니모리는 멕시코시티에 중남미 지역 첫 매장을 열었다. 개점 첫날 4시간 만에 1만달러(약 1200만원) 매출을 기록했다. 더 페이스샵은 2006년 요르단, 2007년 아랍에미리트 를 시작으로 중동 4개국에 30여개 매장을 열었다. 2014년 중동에서만 매출 400만달러를 달성했다. LG생활건강 측은 "K뷰티가 고소득층이 많은 중동으로 넘어가고 있다. 인구 평균 연령이 낮은 중동 지역에서 10~20대 소비층을 공략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