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들이 원하는 대로 가겠습니다."
지난 10일 인터넷 개인 방송 사이트인 '아프리카TV'의 한 방송 채널. 한 초등학생 BJ(Broadcast Jockey·진행자)가 사과를 책상에 올려놓더니 턱으로 내리찍기 시작했다. 사과가 부서지며 파편이 이리저리 튀자 채팅창에는 "이 XX, 나중에 크게 될 것 같다"는 시청자들의 글이 올라왔다. 그러자 이 초등생은 신이 난 듯 음악에 맞춰 더 격하게 턱으로 사과를 내리쳤다. 이 학생은 "형님들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아프리카TV는 하루 접속자가 350만명을 넘어설 정도의 인기를 끌고 있다. 아프리카TV 사이트에서 '초딩(초등생을 가리키는 은어)'으로 검색하면, 관련 방송이 수백건 나온다. 그만큼 초등학생들까지 진행자로 나서는 프로그램이 많다는 뜻이다. 방송 내용도 먹방, 화장품 리뷰, 춤추기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인터넷 개인 방송은 컴퓨터 캠코더 등으로 동영상을 촬영해 아프리카TV 사이트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어린이도 쉽게 어른들이 하는 방송을 따라 할 수 있다. 초등생들 사이에서 인터넷 방송 진행이 인기를 끄는 건 '나도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초등생 BJ들은 시청자 관심을 끌기 위해 성인 못지않게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초등생은 방송에서 불량 식품을 먹는 일명 '불량 식품 먹방'을 했다. 또 다른 남자 초등생은 방송에서 "추천을 더 눌러주면 화끈한 춤을 더 추겠다"며 손을 허리에 올리고 골반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한 여자 초등생 BJ는 "초등생 BJ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의 단골 소재 중 하나가 '외모 평가하기'"라며 "방송에서 예뻐 보이고 싶어 화장도 이것저것 많이 한다"고 했다.
초등생 BJ가 진행하는 방송을 보는 성인 시청자들이 실시간 채팅을 통해 초등생 BJ에게 욕설을 늘어놓거나 인신공격성 막말을 내뱉는 일도 많다. 지난 11일 남자 초등생 1명과 여자 초등생 2명이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채팅창에는 '셋이서 애정표현을 해 보라'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쏟아졌다. '남자 여자 둘이 뽀뽀해' '(시청자들에게) 애교 부려보라'는 식이었다. '왼쪽 (애) 못생겼네' '못생긴 애는 빠져'라는 등 외모를 비하하는 인신공격도 이어졌다.
일부 시청자는 여성 초등생 BJ에게 '브래지어를 벗어보라' '(성관계를) 하고 싶다' '자위행위를 해봤느냐'는 등 음담패설도 늘어놓았다.
아프리카TV는 작년 말부터 만 14세 미만 아동의 경우 아예 인터넷 방송을 할 수 없게 했다. 작년 9월 아프리카TV에서 한 여자 초등생 BJ가 배와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채 춤을 추고 이에 시청자들이 성희롱 발언을 쏟아내면서 선정성 논란이 일자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초등생들은 부모 주민번호나 휴대전화 번호로 몰래 인증을 받아 방송하고 있다. 아프리카TV에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김모(11)양은 "주변에 부모 휴대전화 번호로 몰래 인증을 해 방송하는 친구가 많다"며 "가끔 시청자들이 욕설을 하거나 성적인 행위를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무차별적으로 성인들과 소통하는 건 위험하다"며 "인터넷 방송에서 어린이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감독 당국이 청소년 BJ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에 대한 모니터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입력 2016.02.17. 03:00업데이트 2016.02.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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