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KF16 전투기가 추락했다. 국방부는 미국 엔진 회사에 엔진 결함에 따른 품질 보증을 요구하기 위해 대책반을 꾸렸다. 당시 법무관이던 김지홍(44·사법연수원27기) 변호사도 대책반에 투입됐다. 하지만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김지홍 변호사는 “극한의 조건에서 기동하는 전투기는 품질 보증이 어려워 별도의 보험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군의 계약 실무자들은 보험에 들어야 하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이 때의 경험을 계기로 국제 중재 전문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김지홍 지평 변호사

◆ “세계적인 변호사 되겠다” 벤처 로펌 선택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 사법연수원장상 수상 등 성적이 우수했던 김 변호사는 2001년 변호사 10여명이 만든 ‘벤처 로펌’에 합류했다. 국제 중재 등 경험을 쌓기에는 ‘벤처 로펌’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아버지인 김인종(80·사법시험 12회) 변호사도 “판사 보다는 세계적인 변호사가 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격려했다.

‘닷컴 기업’이 뜰 때였다. 벤처 로펌과 벤처 기업은 좋은 동반자였다. 하지만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당시 자문했던 벤처 기업 대부분이 사라졌다. 네이버, 안 랩 정도만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1년 변호사 12명이었던 벤처 로펌은 변호사 160여명이 일하는 중대형 로펌 지평으로 성장했다.

김 변호사는 국제 중재·분쟁 업무를 맡을 기회를 기다렸다. 미국 변호사와 국제법을 공부하고 영어 토론을 했다.

2002년 기회가 왔다. 한 대기업이 미국 기업과 원자력 발전 설비 공급 입찰 등을 두고 국제 중재를 신청했다. 김 변호사는 미국 로펌 시들리 오스틴(Sidley Austin LLP)과 함께 국제상공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ICC) 중재를 수행했다.

김 변호사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외국 기업이 국내 대거 진출했지만 분쟁 해결 능력이 있는 로펌은 많지 않았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젊은 변호사들이 참여하자 기업들이 반겼다”고 말했다.

◆ ‘오토론 부실대출 사건’ 등 합의 도출

김 변호사는 ‘오토론 부실 대출 사건’에서 영국계 재보험사인 ‘로열 앤드 선 얼라이언스’(Royal & Sun Alliance·RSA)를 대리, 2005년 합의 도출에 성공했다.

김 변호사는 “입 소문이 나자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벌이는 소송(아웃 바운드)과 해외 기업이 국내에서 벌이는 소송(인 바운드)을 맡을 기회가 많아졌다”고 했다.

오토 론은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자동차를 담보로 최고 3000만원까지 빌려주는 금융 상품이다. 보증 없이 자동차 할부 대출이 가능한 장점 때문에 2001년 1월 첫 출시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4700억원이나 대출이 이뤄졌다. 하지만 부실 대출이 늘면서 판매가 중단됐다.

오토론은 당시 국민은행이 판매했다. 수협은 오토론 공제(보험) 계약을 체결했고,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와 재보험 계약을 했다. 코리안리는 삼성화재에, 삼성화재는 RSA와 각각 재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복잡한 보험 계약인 만큼 관련 금융 회사들이 대출 손실금 1400억원의 책임 소재를 놓고 소송을 했다.

김 변호사는 “국민은행의 부실 심사 여부, 공제 계약 성격을 놓고 3년이나 소송이 진행됐다. 소송이 길어지면서 합의 필요성이 커졌고, 보험사 전부 책임이 아닌 일부 책임 조건으로 합의를 봤다“고 했다.

40%는 국민은행이 부담하고 나머지 60%를 보험사들이 분담하는 조건으로 2005년 8월 합의가 성립됐다. 관련 소송은 모두 취하됐다.

◆ “법률시장 개방은 기회, 국제화가 살길”

김 변호사는 국제법 체계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현지 실정에 맞는 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령 대표적인 국제 중재 기관인 ICC는 상대적으로 중재 비용이 비싸고 유럽계 중재인이 배당될 가능성이 크고, 미국 뉴욕, 중동 바레인, 싱가폴 사무소를 운영하는 미국중재협회(American Arbitration Association, AAA)는 중재 비용은 싸지만 미국 중재인이 주로 배당된다.

김 변호사는 “복잡한 국제법 체계에 따른 맞춤형 법률 서비스 제공이 절실하다. 기업들과 궁합이 맞는 재판소를 조언해 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동남아 지역의 로펌들은 분쟁 해결 경험이 많지 않아 국내 로펌들의 현지 지사가 기업들의 현지 적응을 도울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법률 시장 개방으로 해외 로펌이 국내 로펌을 위협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오히려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보고 있다. 적극적으로 해외 법률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