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사립대 교수 A씨는 2011년 9월 “논문을 지도해 주겠다”며 여자 대학원생을 술집으로 불러냈다. A씨는 “과일 안주를 입에 넣어 달라”고 하더니, 대학원생 손을 잡으면서 몸을 밀착시켰다. A씨는 “손 감촉이 어떠냐?”며 귓속말을 했다. 그는 여자 대학원생에게 “논문 지도할 것이 있으니 모텔을 예약해라”고 말하거나,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나오는 영상이나 성적(性的) 농담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문제가 불거지자 A씨는 피해 학생에게 접근해 학교 측에 허위 진술을 해 달라고 하거나, 피해 학생이 ‘꽃뱀’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해임된 A씨는 “해임 처분은 무효”라며 학교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1·2심은 학교 손을 들어줬다.

최근 대학원생들에 대한 교수의 폭언·폭행·성추행 등 인권 침해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대학원생 등 여성 7명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강석진 전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징역2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대학원생을 폭행하고 인분(人糞)을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장모 전 교수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논문 지도와 심사 등 교내에서 절대적 권한을 가진 교수들 앞에 학생들은 ‘을(乙)’일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원생 10명 중 1명은 교수에게서 폭언과 욕설을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작년 3월부터 6개월간 대학원생 1906명을 상대로 최근 5년간 겪었던 일로 제한해 설문조사를 했다. 1906명 중 ‘교수로부터 폭언·욕설 등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말을 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정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190명(10%)이었다. ‘교수로부터 성적으로 희롱하는 말이나 음담패설을 들었다’고 답한 사람은 71명(3.7%), 교수로부터 불쾌한 신체 접촉이나 추행을 당했다’고 답한 학생은 39명(2%)이었다. ‘체벌이나 구타와 같은 신체적 위협을 받았다’고 답한 학생도 23명(1.2%)이었다. 인권위는 보고서에서 “폭언·욕설 등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한 경우가 10%라는 것은 아직도 대학원 안에서 교수가 갑(甲)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라며 “불쾌한 신체접촉이나 추행, 성희롱, 음담패설 등은 단 1%라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의 경우, 교수보다 대학원 선후배나 동료에게 당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906명 중 선후배·동료에게 불쾌한 신체접촉이나 추행을 당했다고 답한 사람은 44명(2.3%), 성희롱이나 음담패설을 겪었다는 사람은 81명(4.2%)이었다. 교수들에 대한 평가는 각각 2%, 3.7%였다. 인권위는 교수가 아닌 또 다른 갑(甲)에 의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대학원생들은 우리나라에서 교수가 차지하는 위상이 너무 높은데다, 학교에 학생을 보호하는 기구가 제대로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 대학원생은 인권위와의 심층 인터뷰에서 “교수가 너무나 갑(甲)의 위치에 있다. 교수가 술을 먹자고 하면 여학생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 사회는 여학생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성추행 문제가 발생해도 학교 측은 덮으려고만 하고, 학생들도 의견을 모아봐야 교수 한 명 쓰러트리기 힘들다고 생각해 서로 꺼리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 국립대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김모(33)씨는 “교수는 논문 지도·심사 뿐만 아니라 강의, 장학금 등 모든 것에 관련된다”며 “대학원생은 교수 인격과 인맥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노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