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의 최고 화제는 북한 미사일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개헌 발언도 아니다. 2일 밤 야구영웅 기요하라 가즈히로(淸原和博·48)가 각성제 소지 혐의로 자택에서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TV·신문·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기요하라는 1986년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세이부에 입단해 요미우리·오릭스 등을 거쳐 2008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525 홈런을 친 전설적인 강타자다. 인생 역정도 드라마틱했다.
기요하라는 오사카 근처의 서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 출신이다. 고교 시절, 동급생 투수 구와타 마스미(48)와 함께 두 사람 이름의 영어 첫 글자를 딴 'KK콤비'라 불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 둘이 어떤 거목으로 자랄지 전 국민적 관심사였다. 구와타는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반면 기요하라는 프로야구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정해질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요미우리가 선택한 건 기요하라가 아니라 구와타였다. '구와타의 부모가 아들 몰래 요미우리와 밀약을 맺었다'는 풍문을 포함해 온갖 말이 나돌았다.
기요하라는 추첨을 통해 세이부에 입단했다. 그는 거기서 이를 악물었다. 1989년 최연소 100호 홈런(21세 9개월), 1990년 최연소 1억엔 연봉(23세), 1992년 최연소 200호 홈런(24세 10개월) 기록을 세웠다. 그러자 명문팀 감독들이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고향이 그에게 '시민영예상'을 안겼다. 기요하라는 "기시와다 시민 대표로 도쿄를 휩쓸겠다"고 했다.
기요하라가 체포된 뒤, 평생의 라이벌 구와타에게 아사히신문 기자가 심경을 물었다. 구와타는 중류 가정 출신으로, 기요하라처럼 화려한 기록을 세우지 않았지만 차분하고 신사적인 모습으로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는 고교시절 야구 덕에 행복해졌다. (은퇴 후) 기요하라에 대해 나쁜 소문을 들으면 내가 바로 연락했다. '사실이냐' 물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3년 전 기요하라가 앞으로는 개입하지 말라고 했다.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걸까. 그래도 자주 연락하는 게 좋았을지 모른다. 야구는 핀치에 몰리면 대타나 구원이 있는데 인생엔 그런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