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장군 요리사병으로 연회 준비하며 실력 다져
김새롬은 요리로 치면 오뜨 프렌치 퀴진!
"사랑하면 입맛도 닮는다"
“요리사의 장점이요? 요리를 잘하면 미녀를 얻을 확률이 높아요. 와인을 곁들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흥분되죠. 요리사는 여자들이 원하는 바로 그 즐거움을 창조하는 사람들이에요.” 마누테라스의 오너 셰프이자 방송인 김새롬의 남편 이찬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이찬오 옆에는 어느새 김새롬이 다가왔다. 그녀는 이찬오의 몸을 미역처럼 휘감았다. 격투기 선수처럼 생긴 커다란 남자 옆에 우주선 웨이트레스같은 금발의 단발머리 여자가 한몸처럼 붙었다. 나는 깜짝 놀랐고, 이유석(레스토랑 루이쌍끄 오너셰프)은 익히 봐왔다는 표정이고, 사진 기자는 둘을 한 프레임에 찍고 싶어 몸이 달았다.
김새롬은 껍데기 속에 몸을 숨긴 소라게처럼 이찬오의 뒤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 아깝다! 흰 피부에 붉은 립스틱만으로도 레드벨벳 케이크처럼 화사하건만.
요리사는 미인을 얻는다. 잘 나가는 프렌치 레스토랑의 오너 세프이자, 대세 요리 예능 프로그램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스타 셰프, 화가이자 레스토랑 사업가인 이찬오는 대한민국 남자 중학생들에게 최고의 유망 직업인 셰프의 주가에 최고 정점을 찍었다.
이찬오에게 2015년은 드라마틱했다. 레스토랑 마누테라스는 2015년 1월에 청담동에 문을 열었다(건물 1층엔 프렌치 셰프로 유명한 임기학의 레스쁘아가 자리 잡고 있다). 그해 5월 올리브TV ‘테이스티로드'의 미식가 MC 박수진(배용준의 ‘그녀’)이 방송에 마누테라스를 소개했고, 8월부터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으며, 같은 달에 김새롬과 결혼에 골인했다.
요리하는 남자 이찬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이유는 역시나 김새롬과의 로맨스 때문이다. 백종원과 소유진의 만남처럼, 그것은 셰프라는 지위의 본격적인 ‘환골탈태’를 의미했다. 눈높고 콧대 높은 여자들도 음식의 간을 맞추듯 요리와 서비스에 능한 셰프와 사랑에 빠진다. 단 영화 ‘셰프'에 나오듯 남자가 바람둥이에 마약에 쩔은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마누테라스에서 김새롬과 작은 결혼식 올려
이찬오와 김새롬은 봄에 만나 여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야말로 초고속이었다. 결혼식장은 이찬오의 레스토랑 마누테라스였다. 40평 32석 남짓의 오붓한 공간에 친구와 가족들만 모인 전형적인 ‘스몰 웨딩'이었다. 김새롬은 눈꽃처럼 흰 미니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했고 피로연은 레스토랑의 텃밭 격인 작은 테라스에서 치렀다. 결혼식 비용은 대략 1000만 원이었다.
오늘 마누테라스의 안주인인 김새롬이 와인 한 잔을 들고 테라스에서 그날의 결혼식 장면을 설명했다. “결혼식 날은 천장에 조명을 달아서 참 예뻤어요. 허브를 따서 바로 친구들에게 요리도 했죠.” 그녀는 이 레스토랑에 자기 지분은 1원도 없다고 농담을 했다.
이찬오의 ‘베프'인 요리사 이유석도(이 남자의 아내도 유명 일간지의 기자다), 그 여름의 쿨하고 낭만적인 결혼식을 회상했다. “마누테라스에서 결혼할 때, 찬오 세프는 동시에 한쪽 테이블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하더군요. 즐겁고 캐주얼한 자리였어요.” 이찬오와 김새롬은 결혼식이 끝나고 밤늦게 다시 압구정동 골목에 있는 이유석의 심야 식당 루이쌍끄를 찾아 한 잔했다.
그와 그녀가 본격적인 첫 데이트를 한 곳도 루이쌍끄다. "마누테라스에서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부터 끌렸어요. 그래서 두번 째 만남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었어요."
벚꽃 흩날리는 봄이었고, 이찬오와 김새롬은 루이쌍끄에서 보케리아(수란에 하몽을 비벼먹는 루이쌍끄의 시그니처 메뉴)와 문어 요리를 곁들여 와인 3병을 마셨다. 두 사람은 그해 7월 임정식 셰프의 정식 바(bar) 오픈 파티에서 만취 상태로 결혼을 발표했다.
그리고 오늘도 김새롬은 여전히 테라스에서 즐겁게 취해있다. 젊고 실력 있는 셰프와 자기 일을 사랑하는 ‘미녀' 방송인 커플은 보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
이찬오가 오늘 준비한 메뉴는 가리비 프레골라와 굴튀김, 비트 수프, 곶감 블루 치즈였다.
"그는 요리계의 모네, 아니 바스키아입니다"라고 이유석이 첫 요리부터 그를 추켜세웠다.
◆가리비 프레골라, 곶감 블루 치즈… 여유와 새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요리
가리비 프레골라는 치킨과 랍스터 어깨로 우린 육수로 맛을 낸 프레골라(일종의 곡물 파스타, 보리쌀 정도의 크기다)에 신선한 가리비를 세팅한 요리다. 해산물 재료를 좋아하는 셰프의 취향답게 마누테라스의 가리비는 육질 사이사이로 초여름의 바람이 불었다. 배고프면 타이어라도 씹을만큼 육고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만약 지금 최고급 등심과 마누테라스의 가리비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가리비를 선택할 것 같다.
스테이크의 피 맛처럼 미디엄 레어의 가리비가 뿜어내는 바다의 육즙, 쉽게 부서지지 않고 덩어리로 몰려오는 가리비의 싱싱한 박력에, 보리밥 알갱이 굴러오듯 프레골라가 입 안의 빈 공간을 리듬 있게 채워주었다. 게다가 프레골라 국물의 간과 농도는 또 얼마나 절묘한지.
오징어 먹물에 빵가루를 묻혀서 구운 굴튀김은 곁들여 나온 미역 크림 소스가 일품이었다.
"계란 노른자를 오래 휘저어서 미역과 참기름을 넣었어요." 이찬오가 그 특유의 느린 말투로 설명했다.
이찬오는 1984년생. 한국 나이로 33살이다. 청년 특유의 패기는 있으되, 삼십대 초반의 나이에 도드라지기 쉬운 초조함이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찬오는 15분 만에 요리를 완성해야 하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조리도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샴페인까지 마셔서 보는 이들을 놀래켰다. 포스로 따지면 거의 50대 후반의 이연복 세프 급이다.
이찬오의 요리도 마찬가지다. 초조함이 느껴지지 않는 요리. 실험적인 요리 임에도 불구하고 저변에 깔린 여유가 그 요리를 믿음직스럽게 만든다. 굴 튀김은 그 겹겹의 레이어가 촉촉하게 살았고, 참기름이 들어간 마요네즈 풍의 미역 크림은 굴튀김의 짙은 맛을 더 짙은 맛으로 정리해버렸다. 잘 그린 유화 한 점을 보는 듯 했다.
추켜세우길 좋아하는 이유석이 이찬오에게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찬사를 내뱉은 것은 그가 만들어 낸 곶감 블루 치즈 디저트를 맛본 직후였다. "이건 제가 작년과 올해 통털어 먹어본 최고 요리 중 톱3에 들어요."
곶감 블루 치즈는 찐득한 곶감과 농밀한 블루 치즈를 곁들여 내는 프렌치 치즈 코스 중 하나로, 그는 얇은 페이스트리를 돛처럼 꽂아 플레이팅을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곶감과 블루 치즈가 지닌 텍스처의 궁합은 완벽에 가까웠다. ‘동서양이 결합한 헬레니즘 문화의 현현'이라는 이유석의 호들갑이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 찐득찐득하고 달콤한 곶감에 쿰쿰하고 짭쪼름한 블루 치즈를 합쳐낼 생각을 했을까. 한 가지 식재료가 지닌 물성에 같은 성질의 물성을 더해 힘을 배가시킨 후, 그 충돌의 위험을 서로 다른 맛으로 조화시키는 연출력은 마치 최민식과 송강호가 함께 나온 CF를 보는 것 같았다.
초리조(스페인 햄)와 블루 치즈를 곁들인 비트 스프의 풍부한 식감도 수준급. 비트가 이렇게 고운 자줏빛으로 접시에 담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이찬오의 힘은 이처럼 힘든 일을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내는 데 있다. 그것이 고등학교 때까지 수영선수로 활약했던 그의 육체적 유연성에서 기인한 것일까.
만 18세에 호주로 유학간 이찬오는 호주 레스토랑 주방에서 육체적으로 격렬하게 일하는 세프들의 에너지에 반해, 요리사로 직업의 방향을 틀었다. 큰 덩치에 비해 행동이 기민하고 영혼이 맑은 그는 금새 셰프 사회에 적응했고, 여러 해 견습을 거쳐 시드니의 한 레스토랑에서 총괄 셰프의 자리에 올랐다.
6년을 호주에서 보낸 후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싶어 찾아간 파리. 하지만 거기서 제대로 된 시련을 만났다. “제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배타적인 파리 요식업계에서 완전히 바닥을 쳤어요.” 돈도 못 받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당시에 미대생 친구 집에 얹혀 살며, 그림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파리에서 보낸 1년, 네덜란드에서 보낸 1년을 그는 경쟁으로 숨막혔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2009년 군 입대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 군대에서 보낸 2년이 그에게는 천국이었다.
"강원도 고성 22사단, 최북단에 있었어요. 미식가 장군님의 요리사병으로 수많은 연회를 책임졌어요. 제가 지향하는 섬세하고 예술적인 요리의 기초를 그때 닦았어요."
◆스피드와 내공으로 군대에서 미식가 장군님의 입맛 사로잡아
최북단 미식가 장군님을 만족시켰던 스피드와 내공을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여지 없이 발휘했다. 닭안심살을 명이나물로 감싸서 선보인 요리 ‘소풍가는 닭'에 안정환이 엄지를 추켜세웠고, 홍시 소스 위에 아스파라거스와 푸아그라를 얹은 요리 ‘홍시밭의 거위'는 이승철이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듣는 것 같다"고 극찬했다. ‘냉장고를 부탁해' 1주년 특집에선 셰프 김풍에게 15분 만에 미슐랭3스타급 코스요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대결구도가 다소 터프하지만, 저는 셰프로 자리잡는데, ‘냉장고를 부탁해' 덕을 많이 봤어요. 마누테라스는 오픈한 지 8개월 만에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불가리아 와인을 곁들여 이찬오 셰프의 요리를 먹는 사이,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다. 남자는 그 사이에도 몇 번 씩 테라스에 나가 여자의 컨디션을 살폈다. 바람이 많이 불자, 아내는 남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손으로는 아내를 안고 한 손으로는 와인의 잔을 채우며, 이찬오는 여유있게 식탁을 이끌어 갔다. 그 사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애저(새끼 돼지 요리)가 완성되었다. 애저는 마누테라스의 메뉴판에는 없는 요리다. 이유석이 ‘우정의 이름'으로 애저를 가지고 왔고, 이찬오의 지시대로 주방의 오븐에서는 몇 시간째 애저가 구워지고 있었던 것.
돼지 감자와 아스파라거스 사이에서 웃고 있는 갈색 새끼 돼지를 보니, 애잔하면서도 웃긴,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베지테리언이나 동물애호가들이 보면 기절할 요리가 아닌가. 이유석이 말했다.
"다니엘 뵐루가 쓴 '젊은 요리사를 위한 14가지 조언'이라는 책에 보면 캐비어 식당에서 요리사들 끼리 모여 애저를 먹는 장면이 나와요. 베이컨을 터번처럼 두른 애저의 머리에 양파 마늘 감자가 흘러내리면, 바삭하고 흐믈거리고 쫄깃한 그 요리를 함께 나누는 요리사들… 그건 이후에도 다시 없을 요리사들끼리의 '우정의 만찬'이었죠."
이유석은 살아 있는 생명이 죽어갈 때 손으로 그 마지막 생명감을 느끼는 것은 셰프의 운명이라고 했다.
"생명은 귀하고, 그 귀한 생명을 먹고 우리가 숨을 쉰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해요."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애저와 함께 마지막 와인을 비웠다. 이찬오는 김새롬을 어깨에 두르고 그녀와의 만남이 자신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고 했다. 고기만 좋아하던 남자는 여자를 만나 곤드레밥과 메밀 국수 떡볶이와 매운 닭발을 먹게 되었다.
“사랑한다는 건 입맛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새롬은 저에게 오뜨 퀴진 프랑스 요리같아요. 있는 그대로가 다 매력이죠. 마누테라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안정감을 저는 가정에서 느껴요. 아내와 함께 테니스를 치고 나면 레스토랑에 와서 더 기운을 내서 일해요. 그리고 다시 또 아내를 만나러 가죠. 올해는 그림 전시회도 열고 아내와 함께 약간 터프한 고기바도 낼 계획이에요.”
이찬오는 좋은 셰프를 목표로 삼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훌륭한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요리사는 미녀를 얻는다. 그리고 미녀는 요리사를 더욱 멋진 남자로 조련한다. 그렇다면 최초에 이 놀라운 스파크를 일으킨 주범은 사랑일까? 음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