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새해 아침 차례상
앞줄 왼쪽 두 번째에 놓을
밤을 깎으시는 할아버지
손자가 마주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할아버지 눈썹은 왜 희어지셨어요?"
"오늘 같은 섣달 그믐에 잠을 자서 그렇단다."
"저도 오늘 밤에 자면 눈썹이 한 올쯤은 희어지겠네요."
"암, 그렇다마다."
한 해를 보내며
아쉬워하시는
할아버지 날줄과,
새해를 맞아 설렘에 부푼
손자의 씨줄이 한데 어울려
새로운 동화를 엮어낸다.
뜬눈으로 밤을 지샌다.
ㅡ송근영 (1925 ~ )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이야기. 어린 시절에 누구나 그 동화 같은 이야기에 잠을 안 자려고 안간힘을 썼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설 명절을 맞을 꿈에 부풀어 섣달그믐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면 올해에도 크고 밝은 해가 솟으리라. '새해 아침 차례상' 같은 둥근 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