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발생한 ‘이태원 살인 사건’ 진범(眞犯)으로 지목돼 18년만에 법정에 선 아서 패터슨(37)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심규홍)는 1997년 4월 3일 서울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당시 23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패터슨에게 징역 20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기징역형을 선택했지만, 패터슨이 범행 당시 만17세였던 점을 감안해 소년범에 선고할 수 있는 최고 형량인 징역 20년을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관련자 진술과 증거 등을 볼 때 패터슨이 조씨를 칼로 찌르는 것을 목격했다는 공범 에드워드 리(37)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반면, 조씨를 죽이지 않았다는 패터슨의 주장에는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건 발생 당시 화장실 벽에 묻은 혈흔을 보면, 조씨를 찌른 사람의 온몸과 오른손에 상당한 양의 피가 묻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건 직후 패터슨은 온몸에 피가 묻어 화장실에서 씻고 옷도 갈아 입었지만, 리의 옷에는 적은 양의 피가 뿌린 듯 묻어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리가 패터슨에게 살인을 부추기고 앞장서서 화장실에 들어갔다”며 리도 공범이라고 인정했다. 리는 과거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가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기소될 수 없다.
재판부는 “패터슨은 전혀 모르는 사람인 조씨를 이유 없이 뒤에서 흉기로 9차례 찔러 과다출혈로 숨지게 했다. 범행수법이 너무 끔찍하고 죄질이 불량하다”며 “패터슨의 범행으로 조씨는 모든 기회를 잃었고, 조씨 부모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게 됐다.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을 조씨의 원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패터슨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1997년부터 현재까지 공범인 에드워드 리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를 위한 배상은 물론 진심어린 위로도 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1997년 에드워드 리를 살인 혐의로, 패터슨은 범행에 사용된 칼을 갖고 있다가 버린 혐의로 기소했다. 징역 1년6개월이 확정된 패터슨은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98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런데 그해 리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살해당한 조중필씨 아버지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고, 검사는 재수사했다. 패터슨은 담당 검사 실수로 출국정지가 연장되지 않은 틈을 타, 1999년 8월 미국으로 출국했다.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에서 체포됐지만, 미국 법원에 “범죄인 인도를 막아달라”며 소송을 냈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인 2011년 12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작년 9월 미국 사법당국이 패터슨의 송환을 결정하면서, 패터슨은 국내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패터슨은 그간 “리가 죽였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혈흔 및 진술 분석 등을 통해 ‘패터슨이 진범’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