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전 11시 4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뒷골목. 주변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과 학원생 30여명의 손에는 담배와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이들은 빌딩 뒤편의 한 중식당 앞 화단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선 꽁초를 바닥에 휙 던지더니 발로 비벼 불을 껐다. 바로 옆 화단에는 흡연자들이 버린 담배꽁초와 종이컵, 빈 담뱃갑 등이 널려 있었다. 식당 주인 이모(57)씨는 "하루 4~5번씩 담배꽁초를 청소해도 감당을 할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도심 거리 곳곳이 담배꽁초로 뒤덮이고 있다. 공공 기관에 이어 음식점·카페·호프 등 민간 상업 시설까지 모두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흡연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데다 이 중 상당수가 꽁초를 길거리에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영등포시장 먹자골목. 30여분 동안 흡연자 22명을 지켜본 결과 꽁초를 골목 한쪽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린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했다. 인근 여의도 증권사 밀집 지역의 한 골목길에도 직장인 2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운 뒤 꽁초를 갖고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담배를 피우던 한 남성(36)은 "쓰레기통도 없는 데다 우리끼리 '담배길'이라 부르는 곳이어서 꽁초를 길에 그대로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서울은 광화문광장이나 강남대로 등 지방자치단체가 조례(條例)로 지정한 금연 구역이 아니면 야외에서 담배를 피워도 불법이 아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업들도 직원 건강 등을 이유로 건물 내 흡연 구역 설치를 꺼려 거리 흡연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도로 가장자리에 설치된 빗물받이나 지하철 역사(驛舍) 환기구, 화단 등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꽁초와 깨진 일회용 라이터, 담뱃갑으로 가득하다. 강남구청 환경미화원 이모(62)씨는 "4㎞ 남짓한 담당 구역을 청소하는데, 매일 담배꽁초만 마대자루로 3개 분량 정도가 나온다"고 말했다.
반면 흡연자들은 "주변에 재떨이나 쓰레기통이 없는데 어디다 버리란 말이냐"고 하소연하고 있다. 1995년 7600개에 달했던 서울 시내 공공 쓰레기통은 쓰레기 종량제 도입 이후 크게 줄었다. 2007년엔 3700개로 급감했다가 최근엔 다소 늘어 5090개 정도가 설치돼 있다. 화재 위험 등을 이유로 재떨이 부분을 막아놓은 쓰레기통도 적잖다.
서울시는 지난 14일 25개 구청에 재떨이 기능을 갖춘 쓰레기통을 추가로 설치할 의향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하지만 2개 구(區)를 제외한 나머지 구는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흡연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거나 '재떨이를 설치하면 인근 상인들이 반발한다'는 등의 이유가 많았다.
경찰과 지자체는 주로 쓰레기 무단 투기 단속을 통해 꽁초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4년 담배꽁초 무단 투기 단속 건수(8만1260건)는 전체 쓰레기 무단 투기 건수의 82%를 차지했다. 서울시가 꽁초 투기 과태료로 벌어들인 세외(稅外) 수입도 29억2500여만원에 달했다.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리다 경찰에 적발되면 3만원의 범칙금을, 지자체 공무원에 적발되면 과태료 5만원을 물어야 한다.
거리에 재떨이를 설치하고 꽁초 무단 투기를 강력히 단속해도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회의론도 적잖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예산을 들여 휴대용 재떨이를 흡연자들에게 나눠준 적도 있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꽁초 무단 투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뒤처리를 할 수 있는 시설을 확충하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