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조국도, 어머니도, 하버드대학도 아닌 동네 도서관이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1년에 책 50권가량을 읽고 있다. 빌 게이츠가 다녔던 집 근처 도서관처럼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도서관이 우리 주변엔 의외로 많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고 읽는 곳을 넘어 동네 사랑방이자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센터, 평생 교육의 장 역할도 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근해 이용할 수 있는 전국 도서관들을 연중 기획으로 소개한다.

서울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떨어진 25일 오전 9시 30분.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관악구청 안 '용꿈꾸는 작은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 카페 같은 느낌을 줬다. 구청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기 좋을 것 같았다. 통유리 안쪽 정면으로 책(장서 1만7653권)으로 가득 찬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문 옆엔 약시(弱視)인 사람들이 컴퓨터 문서 등의 내용을 음성으로 변환해 들을 수 있는 문자 인식 음성 출력기도 있었다.

25일 서울 관악구청 내 1층에 있는 ‘용꿈꾸는 작은도서관’을 찾은 주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서가와 독서 공간이 효율적으로 어우러진 이곳은 지역 주민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관악구청은 2007년 9층으로 신축됐는데, 2010년 부임한 유종필 구청장이 1층 사무실의 일부를 헐고 외부로 넓혀 2012년 11월 도서관으로 개조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실내 공간(230㎡)을 복층으로 활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열람석 70개는 주로 2층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용객은 오전 11시 무렵 50명 정도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아동문학 코너'에도 어린이 대여섯 명이 그림책 독서에 빠져 있었다. 이 도서관 신계영 팀장은 "2012년 11월 개관 이후 작년까지 47만여명이 다녀갔다"면서 "점점 이용객이 늘고 있고, 방학인 요즘은 하루 1000명 넘게 온다"고 말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유종필 관악구청장이 부임했을 당시 5개였던 도서관은 현재 43개(무인 대출기 갖춘 지하철역 5곳 포함)로 늘었다. 그중 20개는 낙후된 동주민센터의 새마을문고를 미니 도서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국회도서관장을 지냈던 유 구청장은 관악구를 '도서관 타운'으로 만들기 위해 '걸어서 10분 거리의 작은 도서관' 사업에 나섰다. 용꿈꾸는 작은도서관이 대표적이다.

['다독가(多讀家)'로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은?]

이 도서관의 최고 단골은 관악구청 인근에서 구두 수선 일을 하는 강규홍(62)·김성자(52)씨 부부라고 한다. 김씨는 지난 3년간 허영만 작가의 '식객'이나 '지하철로 떠나는 서울&근교여행' 등 400여권의 책을 빌렸다고 한다. 김씨는 "한 번에 대여섯 권씩 가져다 읽은 적도 있다"면서 "용꿈 도서관은 내 서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난해 관악구 도서관 전체 대출 권수는 94만권이었다. 인구 51만명인 관악구민 한 명이 평균 두 권 가깝게 책을 빌린 셈이다.

◇스마트 폰·PC로 대출 가능

관악구 도서관의 특징은 43개의 크고 작은 도서관이 하나의 통합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이용자가 다니는 동네 도서관에 원하는 책이 없으면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가져다 빌려준다. 대출 신청을 한 후 1~2일이면 신청자 휴대폰으로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다. 이런 방식으로 작년에 배달된 책이 31만여권에 이른다. 5개 지하철역(신대방·신림·봉천·서울대입구·낙성대)의 무인 대출기에서 책을 빌리고 반납도 할 수 있는 'U도서관(지하철역 무인 대출 시스템)'도 이 네트워크를 이용한다.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책을 신청하면 배달 차량이 재고가 있는 가까운 도서관에서 책을 가져다 지하철 무인 대출기에 갖다놓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작년에 6만여권을 대출했다.

이달 초 관악구를 방문한 덴마크 코펜하겐시 모르텐 카벨 기술환경 부시장도 U도서관 현황을 살펴보고 "읽고 싶은 책을 지하철역에서 찾는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고 했다고 한다. 유종필 구청장은 "요즘 국내 도서관들은 시설이 훌륭하지만 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가지 않게 된다"면서 "누구나 쉽게 도서관을 찾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서관 네트워킹에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