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고른 이모티콘(emoticon) 하나만 있으면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다. 이모티콘은 감정(emotion)과 조각그림(icon)의 합성어로, 자신의 감정을 담은 작은 그림을 뜻한다. 카카오톡에서 오가는 이모티콘 건수는 한 달 20억건,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사람은 하루 1000만 명이다.
장난처럼 여겨지던 이모티콘이 캐릭터 사업으로 진화하면서 국내 시장 규모는 연간 1000억원대, 관련 상품까지 합치면 3000억원대로 성장했다.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2015년의 단어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 이모티콘을 선정했을 만큼 '그림문자'의 광범위한 사용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요즘 이모티콘은 '패션' 같은 기능을 한다. 새로 나온 옷을 골라 사입듯 '신상' 이모티콘을 찾고, 자신의 개성을 잘 드러내 줄 만한 것을 사들인다. 회사원 양민영(33)씨는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주는 이모티콘을 발견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예전엔 누가 그런 걸 돈 주고 사나 했지만 요즘은 한 세트에 2000~3000원 하는 이모티콘 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안미경(57)씨는 한 달에 한 번 딸에게 최신 유행 이모티콘을 선물해달라고 부탁한다. 지인들끼리 만든 단체 카톡방에서 '신상' 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안씨는 "지인들이 '너 이거 어디서 샀니?' '대박!' 같은 반응을 보이면 내가 유행에 앞서가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기분 좋다"고 했다. 회사원 정경수(50)씨는 부하 직원들과 함께 쓰는 단체 카톡방에 요즘 유행하는 '못 간다고 전해라' 이모티콘을 썼다가 후배들로부터 '센스 최고!'라는 칭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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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이모티콘 관련 설문조사(마크로밀엠브레인·1000명 대상) 결과를 보면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한다는 응답이 34.5%, 가끔 사용한다는 45.5%였다.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응답(5.2%)은 전년도(9.0%)에 비해 줄었다. 자주 사용한다는 여성(49.8%)이 남성(19.2%)보다 많았고, 유료 이모티콘 구매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31.3%)도 전년(21.1%)에 비해 늘었다. 사용 이유(복수 응답)로는 '재미있게 표현'(58.1%), '다양한 표현'(52.2%), '할 말 없을 때 편리하다'(42.8%)는 응답이 많았다.
이모티콘은 차가운 디지털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풍부한 감정 표현을 돕는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일종의 놀이, 가벼운 농담 기능을 하면서 '재미'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주부 최인선(33)씨는 "민망하고 미안할 때, 또는 예의상 대응해야 할 때 하나씩 던지면 유쾌하고 자연스럽다"고 했다. '무티(무료 이모티콘)족'도 생겨났다. 기업들이 이벤트로 제공하는 이모티콘을 받으려고 수십 개 기업과 친구를 맺고, 공짜 이모티콘을 제공하는 앱이나 게임을 깔았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대학생 오정민(21)씨는 "유행 주기가 짧기 때문에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돈 주고 살 필요 없다"고 했다.
나이 든 세대는 이모티콘을 더욱 특별하게 받아들인다. 이모티콘 구매 이유 조사에서 '남들에게 없는 것을 갖고 싶어서'라는 응답은 27.8%. 50대 응답은 모든 세대 중 가장 높은 44.4%였다. '새로운 이모티콘을 쓰면 유행에 앞서가는 느낌을 준다'(34.7%)는 응답도 50대(43.2%)에서 가장 높았다. 카카오 이윤근 매니저는 "나이 든 여성들에겐 꽃그림, 젊은 세대엔 직설적인 이모티콘이 인기를 끈다"며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잔소리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만들어달라는 부모들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모티콘 과잉'은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직장인 변모(32)씨는 얼마 전 소개받은 남성과 만날 장소를 정하기 위해 메신저 대화를 하다가 소개팅 자체를 취소해버렸다. 그는 "생각과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이모티콘으로 대충 뭉개려는 모습이 성의없어 보였다"고 했다. 마크로밀엠브레인 윤덕환 이사는 "세대별 특성이 뚜렷한 한국 사회에선 이모티콘 코드를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