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는 항상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정치의 변화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냉소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참신한 인재들을 영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벌써 선거대책위원회 또는 최고위원회에 이름을 올렸고, 총선에서도 비례대표나 지역구 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들이 왜 정치를 시작하려 하는지, 앞으로 당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지 들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정치권의 기업 비판, 잘못된 점 명확히 지적해야"
호남 민심에 촉각…"부족한 게 있다면 채울것"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삼성전자 최초 상고 출신 여성 임원인 양향자(49) 삼성전자 상무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정치권은 물론 재계도 놀란 깜짝 영입 인사였다. 그리고 김종인 더민주 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22일 양 전 상무를 선대위원으로 임명했다.

양 위원은 30년 동안 반도체 설계 분야 외길을 걸은 엔지니어다. 광주여상을 졸업한 직후 삼성전자 연구원 보조직으로 입사한 그에게 맡겨진 업무는 반도체 도면을 만드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모르는 내용이 있을 때마다 주변 선배 연구원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공부했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성장해 입사 8년차에는 메모리사업부 SRAM설계팀 책임연구원이 됐다. 1995년에는 삼성전자 사내 대학인 기술대학에서 반도체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2008년에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전기전자컴퓨터 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2014년 여상 출신으로는 처음 삼성전자 상무로 승진했다. 삼성전자에서는 임원 승진을 ‘별을 달았다’고 표현한다. 막중한 책임을 맡는 만큼 파격적인 혜택과 특전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삼성 임원 몇 년 하면 본인 노후뿐 아니라 자녀들에 물려줄 재산도 보장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양 전 상무는 어렵게 달게 된 별을 내려놓고 총선을 90일 앞둔 시점에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아니고 야당 더민주에 입당했다. 30년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 상무는 “입당하기 불과 며칠 전까지도 인턴 사원들에게 앞으로 백 년을 함께 할 사이처럼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양향자 더민주 선대위원은 “삼성 임원으로서 할 일이 많이 남아있고, 회사에 갚아야 할 은혜도 있지만 정치를 시작하게 돼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함께 일하던 330명의 팀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양 위원의 입당은 문재인 더민주 대표의 삼고초려로 이뤄졌다. 문 대표를 만나기 전에도 여러 차례 더민주당으로부터 입당 제의가 있었지만 양 위원은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양 위원은 “문 대표가 ‘기업은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정치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는 고민을 얘기했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문 대표의 설득으로 정치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몸담았던 기업은 10년을 내다보고 전략을 짜서 앞으로 나가지만, 정치는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것이 너무 많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며 “문 대표의 고민이 그동안 내가 생각하던 가치와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양 위원은 또 “입당을 발표한 뒤 왜 야당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더민주를 선택한 이유는 문 대표가 가장 먼저 와서 나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대표가 그만큼 앞서 고민하고 절박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야당과 정치적 성향이 같은지를 묻는 말에는 “반도체 개발에 여야가 있느냐”고 반문하고는 “내가 정치를 통해 할 일은 야당에서 이뤄질 수도 있고 여당에서도 이뤄질 수도 있다”며 이념적인 구분을 떠나 우리 경제 전체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치권에서 찾기 어려운 삼성 출신에게 정치권과 삼성의 긴장관계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삼성은 야당이 주장하는 재벌개혁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국내 1위 그룹이다. 양 위원은 친정을 언급하는 것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정치권이 얘기하는 재벌개혁은 사실 그 실체가 없는 것 같다”며 “정치인들이 기업을 비판하려면 명확하게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잘하는 부분도 있는데 정치권과 국민이 모르는 부분이 많고, 특히나 기업과 정치권은 너무 분절된 상태인 것 같다”며 “(삼성 출신 정치인으로서) 이 부분에서 내가 가교(架橋)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국회에 입성하면 여성이나 산업 분야에서 업무를 맡을 것으로 예상했다. 워킹맘의 경험과 30년간 반도체 분야에서 일한 경력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상임위로 보면 여성가족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위원회다.

그는 입당 기자회견 당시 “출산이 출세를 막고, 육아가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꿀 책임이 정치에 있다”고 했다. 양 위원 스스로가 출산을 앞둔 며칠 전까지도 남산만 한 배에 손을 얹고 새벽까지 업무를 한 억척스러운 워킹맘이다. 그는 “육아, 교육 과정에서 나의 모토는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워킹맘의 고충을 직접 겪은 내가 정치적으로 고민하겠다”고 했다.

지난 30년 반도체 업계에서 쌓아온 경력은 양 위원의 남다른 자산이다. 특히 그는 낮은 생산비용을 무기로 국내 업체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 중국 업체의 위협에 국회가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위원은 삼성전자에 근무하며 중국의 추격을 몸소 느꼈다. 반도체 시장에서 후발 주자인 중국 업체들은 우리 기술 임원들에게 기존보다 9~10배 높은 연봉을 약속하며 스카우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그런 중국의 움직임을 막을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양 위원은 “정치권이 ‘중국의 추격이 두렵다’, ‘우리 산업의 위기다’라고 외치고는 있지만, 정말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기업이 반도체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지금처럼 엔지니어들의 애사심에만 기대서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인터뷰 사흘 전,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海爾)은 미국 대표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 부문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양 위원은 “경험을 통해 현장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며 “이제는 이런 필요를 정책으로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공부하겠다”고 했다.

입당 후 양 위원의 가장 큰 관심은 호남 지역 민심이다. 그는 입당 기자회견에서 총선 출마와 관련해 “광주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다”며 “당과 협의하겠다”고 했었다. 사실상 광주 출마로 마음을 굳힌 만큼 이 지역 민심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양 위원은 “광주는 내가 나고 자라 공부를 마친 곳인데, 이 지역 유권자들이 왜 이렇게 야당에 화가 나 있는지, 왜 더민주당에 등을 돌리는지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꾸고 부족함이 있다면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나는 호남의 딸”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