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옷날인 지난해 6월 20일, 해인사 주지 스님 등 100여명이 사찰 맞은편 남산제일봉에 올랐다. 이들은 산 정상에 소금단지를 묻고 "해인사에 불 안 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해인사는 1695년부터 176년 동안 7번 불이 났다. 사람들은 풍수지리상 불의 형상을 한 남산제일봉의 화기(火氣)가 사찰로 날아들어 생긴 화재라 믿는다. 그래서 일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강한 날인 단오에 바닷물(소금)로 불기운을 잡는다는 뜻에서 소금단지를 묻는 의식을 치른다.
#2. 파푸아뉴기니에선 소금이 화폐 역할을 한다. 남태평양 뉴기니 섬의 서북쪽에 위치한 엥가주의 요콘다 마을에선 염정(소금 우물)에 나무를 절였다가 태워서 재소금을 만든다. 재소금은 부족 간의 신성한 교역품이다. 엥가 부족은 이 재소금 1팩을 옆 부족의 돌도끼 1개나 큰 돼지 한 마리와 교환한다.
소금은 동서고금을 떠나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지만 지역과 문화에 따라 상징하는 의미가 달랐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2014~15년 세계 12개국 현지 조사를 거쳐 최근 '염전에 가다' 사진집을 발간했다. 2013년 '청바지'에 이어 두 번째 현지 조사 성과다. 2년간 인도 사막 염전, 이탈리아 소금 박물관, 프랑스 게랑드 염전 등 12개국 소금 생산지와 박물관 등을 조사했다. 해외 조사는 6차에 걸쳐 82일, 국내 조사는 8차례 21일간 이뤄졌다. 박혜령 학예연구사는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금을 통해 인류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소금은 오래 보관해도 썩지 않는다. 인도에선 협약을 맺으면 주전자에 소금 한 주먹을 넣어서 나눠 마셨다. 변치 않는 소금을 이용해 '협약이 깨지지 않기를' 맹세한 것. 반면 소금은 액을 막거나 부정한 것을 씻는 의미로도 널리 쓰였다. 우리나라에선 아이가 오줌을 싸면 나쁜 액이 붙어서 그렇다고 생각해 소금 동냥을 보냈고, 일본에선 장례식에 다녀오면 나쁜 기운을 떨치기 위해 소금을 뿌렸다.
소금은 주술·종교적으로도 활용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소금이 화재를 예방한다고 믿는다. 해인사뿐 아니라 통도사에선 단옷날 경내 전각에 소금단지를 올린다. 반면 독일에선 소금이 부(富)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빵과 함께 소금을 집들이 선물로 가져가고 결혼하는 새 신부에겐 소금과 쌀을 주며 부귀를 염원한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폴란드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페루 계단식 염전 등 사진이 시원하게 담겼다. 박물관은 올해 상반기 중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고 내년에 소금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