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다닌 언론사 그만둔 후, 사회 고발 소설로 단번에 주목"
"2년간 3개 문학상 수상, 1억5천만원 상금 휩쓸어"
"스톱워치로 글쓰는 시간 재는 공장형 소설노동자"
"창작의 고통, 육아의 고통보다 크지 않아"
장강명을 만났다.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소설 ‘표백’ 이후 3년 만의 만남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설가 장강명을 만나면, 왠지 조금 놀려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를테면 김훈이나 박범신, 공지영이나 은희경,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아멜리 노통브를 만날 때처럼, 소설가라는 숭고한 작위에 경의를 표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의례적인 제스처는 생략하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를 건설하느라 벽에 머리를 박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소설가, 양손에 언어라는 빈약한 도구를 쥐고, 원고지의 빈칸을 채우느라 매번 손이 곱아버린 ‘천형의 시시포스’라는 수사가 머쓱해진다.
장강명은 다른 세상에서 왔다. 채플린 영화 ‘모던타임즈’에 나오는 초기 산업 사회의 노동자처럼, 그는 소설 공장의 생산라인에 올라탄 채 성실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스톱워치를 들고 잔업을 독촉하는 작업반장도, 작업대 위에 앉아 납품 기일에 맞게 따박따박 제품을 조립하는 노동자도 그다. 1인 2역이다.
하루 8시간 1년에 2,200시간을 준수하며. 액셀로 투명하게 ‘문장 생산량’을 기록하며.
황석영 선생이 ‘소설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장강명처럼 술도 담배도 그 흔한 동업자들끼리의 ‘구라 놀음’도 없이, 빡빡하고 초연하게 시간에 언어를 채워 넣는 작가는 처음 보았다.
2014년부터 문학동네 작가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수림문학상(‘열광금지, 에바로드’), 제주 4·3 평화문학상(‘댓글 부대’)을 받아, 2년간 1억 5천만 원의 공모전 상금을 싹쓸이한 단기 전략가, 동아일보 기자로 10년간 일하다 아내에게 1년 3개월간이라는 ‘백수 시간’을 유예받아 문학계에 성공적으로 재취업한 동시대의 속사포 이야기꾼.
소설가의 지위가 ‘순댓국집 사장’보다 더 높을 이유가 없다고 믿는, 소설가의 상상력이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보다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작가들이 집단 명예 훼손으로 고소한다 해도 탈모 깊어진 머리카락만 멋쩍게 쓸어넘길 것 같은, 소설 노동자 장강명.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 중 가장 저널리스트적인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장강명의 글은, 그래서 ‘소설인지 르뽀인지 헷갈리는 점이 지대’의 블랙홀로 독자들을 흡입한다.
가령 국정원 ‘댓글 사건’을 소재로 한 ‘댓글 부대’는 여론 조작 댓글 팀이 진보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박살 내는 과정을 다룬다.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직장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에 이민 갈 수밖에 없는 사정을 그렸다. 두 편 다 베스트셀러 10위권 내 진입하며, 2015년 출판계를 뜨겁게 달궜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내가 톰슨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
을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야 도망은 쳐봐야지…"-소설 '한국이 싫어서' 중에서.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거야…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도 더 깊이 빠지게 돼. 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도 받지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소설 ‘댓글부대’ 중에서.
현존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첨예하게 건드리는, 그래서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장강명을 읽는다. ‘팩트인 듯 팩트 아닌 듯 팩트 같은’ 이야기를.
그것이 정치적 프레임을 탄탄하게 하는 하나의 각주로 쓰일지, 위험 수위로 떠오른 ‘헬조선’의 정치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는 신종 문화 상품으로 소비되고 말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그는 ‘소설광’으로 그의 임무를 다했고, 올해만 해도 6권이 책이 나올 예정이다.
-청년 자살을 다룬 ‘표백’ 이후 3년만의 만남인데, 그 사이 사십 대를 맞았군요.
“자영업자가 된 후 머리가 희어지고 탈모도 급격히 진행됐습니다(웃음).”
-탈모와 흰머리로 이뤄낸 문학적 성과가 대단합니다. 3개 문학상의 상금 1억 5천만 원을 휩쓸고,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건드린 소설 ‘한국이 싫어서’와 ‘댓글 부대’로 2015년 가장 핫한 작가로 등극했습니다.
“덕분에 옥수수수염 자라듯 흰 머리가 생겼어요.”
-(염려하며)재능의 뿌리가 머리카락입니까?
“(체념하듯)외가 친가 모두 탈모 유전자라 걱정이 없습니다. 과학 기술이 저의 탈모 속도를 따라잡길 바랄 뿐입니다.”
-다행히도 문학적 유전자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으셨지요? 어머니께서 사십 대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셨던 거로 압니다.
“1987년 서울신문에 ‘햇무리’라는 소설로 등단하셨어요. 할머니한테 효도하는 스토리였죠. 평범한 전업주부셨는데, 갑자기 소설가로 등단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되던 해였지요.”
-아버지는 탈모 말고 무엇을 물려주셨습니까?
“독서가의 기질이죠. 집이 항상 책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온갖 전집류를 닥치는 데로 읽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부터 펄 벅의 ‘대지’까지.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는 일본 만화에 심취했지요.”
-계몽 문학의 엄숙한 토양 위에 일본 만화의 스피디한 스토리텔링이 자리 잡았다면, 대중 소설가의 기본 코스를 밟은 셈이네요. 글 쓰는 게 즐거운가요?
“즐겁습니다.”
-진심입니까?
“진심입니다.”
-보통은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기 마련인데요.
“10년간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매일 3~4개의 기사를 마감해야 했어요. 빈 화면을 글로 채워야 하는 건 일상입니다. 창작의 고통이 없지는 않지만, 영업의 고통, 청소의 고통, 육아의 고통보다 더 심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견딜만하다는 말이군요.
“영업하는 분들은 매 순간 거절을 당하는 고통이 있죠. 굴욕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작가도 초기에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는 고통이 있지요. 어쨌든 작가로서 취재, 글쓰기, 퇴고, 편집자와의 조율 과정 등의 공정을 자연스럽게 거치는데, 그중 글쓰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진 않아요.”
-그런데 왜 머리카락이 빠졌을까요(웃음). 김훈 선생은 세종대왕이 만든 24자를 가지고 밤새 이리 붙여다 저리 붙였다, 담배 한 갑 다 피우고 달랑 나온 원고지 2매를, 그것마저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버릴 때 딱 죽고만 싶다던데요.
“제가 글쓰기에 특화된 인간인가 봅니다(웃음). 저는 워드로 작업하니까 원고지를 버릴 일이 없죠. 저는 글 쓰면서 대단한 희열을 느끼기보다 다소 건조한 노동으로 대하는 편이에요. 간간이 낭패감과 좌절감도 겪지만, 애 키우는 일보다는 쉽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김훈, 영국의 조지 오웰, 잭 런던, 미국의 헤밍웨이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뛰어난 작가들입니다. 선배 작가들에게 어떤 영감을 받고 있나요?
“저는 조지오웰을 정말 좋아해요. 기자 출신 작가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소설이 저널리즘의 연장처럼 보이는 작가가 있고, 소설가면서 저널리스트였구나 싶은 사람이 있고, 분리된 사람이 있죠. 제 경우는 저널리스트이면서 소설가인 것 같습니다.
-저널리스트 소설가들은 정교하며, 압축적이고 이해하기 쉽고 드라이한 문장을 썼죠.
“그런 면이 좋습니다. 조지 오웰이나 헤밍웨이 다 스페인 내전에 종군 기자로 참전했죠. 두 분 다 현장을 중요시했어요. 저도 당대의 현장에 끌립니다. 저널리스트가 갖게 되는 단단한 사명 같은… 과몰입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도 타고난 기자의 자세죠. 조지오웰이 탄광에 내려가서 광부를 취재했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노동자에게 큰 애정이 있으면서 미화하지 않아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나 ‘교수형’ 같은 글을 봐도 그렇죠. 눈앞에 그려지는 치밀한 묘사와 감정을 배제한 냉담한 태도로 상황을 직시하게 하죠.
“맞습니다. 자신이 노동자가 아닌 지식인 출신의 관찰자라는 것도 명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요. 무엇보다 자기 취재에 자기가 감격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르포 기사의 함정이 현장에 자기가 먼저 감격해서, 촉촉한 문장들을 뽑아낸다는 거예요.
저는 그런 문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원래 제 기질이 그런지 모르지만, 저는 들떠서 과장하거나 분노하는 문장을 좋아하지 않아요. ‘댓글 부대’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도 삼궁, 찻탓캇, 01査10 이렇게 인터넷 아이디처럼 보이게 만들었어요. 어쨌든 소설 주인공에 대해, 저 자신이 거리를 두고 있고, 그래서 어떤 분들은 싸늘하다고도 해요.”
-조지 오웰이 당대의 전쟁이나 노동자에 가졌던 관심만큼, 장강명은 SNS 조작 마케팅, 국정원 댓글 사건, 자살, 이민 등 당대의 정치 사회 문제와 청춘들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어요.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당대의 실제 사건들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어서 로뽀르타쥬같은 느낌도 듭니다. 글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입장의 표명이라는 조제 오웰의 관점에서,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보수에서 진보로 선회했나요? 동아일보 기자가 한겨레 문학상으로 데뷔한 것도 아이러니 아닙니까?”
“보수 중도 우파 정도로 해두죠. 옛날에 그런 질문을 받으면 김한길에서 유승민까지라고 했는데, 지금은 3당에 골고루 나뉘어 있네요. 무상급식하는 게 맞고, 병이 났을 때 국가가 치료를 해주는 게 맞죠. 최저임금도 높여야 하고 노년 빈곤도 높으니까 어쨌든 국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년부터 바로 하자는 건 반대에요.
제가 프랑스혁명 직전에 사상가라면, 갑자기 내일부터 평민 귀족 남녀 구별 없이 투표해서 대통령 뽑고, 귀족 재산은 몰수하자는 의견에 반대할 거에요. 어떤 과제는 당대에 끝내지 않아도 조금씩 천천히, 사회가 깨지지 않고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보수 중도 우파 색깔을 지닌 것에 비해 소설은 상당히 도발적이고 선동적입니다.
“그런 식으로 질문을 던질 뿐이죠. 인터넷 댓글을 표현의 자유라고 놔두는 건 순진한 생각 아닐까? 이렇게 댓글 공작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이렇게 곳곳에 게토가 형성되고 있잖아. 이게 옛날보다 더 위험한 거 아냐? 라고.”
-문제를 환기하기 위해 도발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거죠?
“그렇죠. ‘한국이 싫어서’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민을 답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거 심각하게 얘기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표백’도 할 일이 없이 던져진 사회에서, 청년들은 정신적으로 빈곤해서 자살을 꿈꾸는 게 아닐까?”
-그러기 전에 스톱워치로 시간 재고 액셀로 글 작업량을 기록하면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식이, 좀 과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장강명 씨, 모든 게 좀 과해요. 시간의 효용성 압박을 버리고 그냥 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아본 경험은 없습니까?
“저는 늘 무엇인가 했어요. 신문사 그만두고도 수림문학상 탈 때까지 1년 동안 집에서 바쁘게 글을 썼죠. 전화와도 안 받고, 부모님이 명절 때 보자고 해도 바쁘다고 하면 이해를 못 하시죠. 저는 백수라도 정말 바빴거든요.”
-소설가와는 달리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 본 사람들이 좋은 에세이를 쓰죠.
“저도 모든 것을 쓸모로 바꿔서 사용하지는 않아요(웃음). 시간당 생산성은 벌어들이는 돈으로 환산되잖아요. 따지고 보면 신문사에 있었을 때보다 생산성이 줄어든 거거든요. 효율과 쓸모를 원칙으로 하는 생산의 감독관이 온다면 “네가 하는 일은 ‘무쓸모’가 절반이나 빨리 기자로 돌아가라”고 하겠지만, 저는 하지 않죠. 저도 가치를 추구하죠.”
-어쨌든 에세이를 쓴다면 ‘하루키 잡문집’처럼 어슬렁거리는 에세이는 아닐 테지요?
“어쨌든 기존의 제 소설과는 달리, 확실히 아무 사건도 없는 그런 에세이입니다.”
-작가로 사는 건 어떻습니까?
“벌이가 대단치는 않아도, 밥벌이가 되고, 저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있어서 행복하죠. 앞으로 저 정도 쓰는 사람이 천 명 정도 있다면, 자본주의 시장에서 제 몸값은 똥값이 될지도 몰라요(웃음).
더불어서 저는 제가 소설을 쓰는 행위가 순댓국집 사장님이 순대를 고는 일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 안 해요. 그런데도 작가라고 더 존경받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창작의 고통도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나 신차 디자이너보다는 덜할 거예요.”
-자기객관화가 잘 돼 있다고 봐야 합니까?
“제가 느끼는 직업적 고통이 특수한 것처럼 미화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안 팔리는 게 고통이지 쓰는 건 할만하거든요(웃음).”
-‘표백’도 그랬는데, ‘한국이 싫어서’나 ‘댓글 부대’는 질주하는 카레이서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마라톤도 했던 분이...
“너무 절박해서요. 일단 씨를 마구 뿌리고 그중에 한두 개만 되면 수확을 해서 존재감을 증명하자, 했지요. 1년 동안 2,000매를 써서 망하면 끝이니까, 1년에 600매를 3개 쓰는 식으로. 아내한테 물어보면서 일했죠. “이런 스토리 저런 스토리가 있는데 어떤 거 먼저 쓸까”하고. ”
-아내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죠?
“네. 작년 상반기까지는 온종일 아무 일이 없는 날이 많았어요. 태연한 척하며 둘이 맥주 마시다가 제가 묻죠. “사표 낸 게 잘 한 걸까?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면 아내가 “괜찮아. 네 이야기 재미있어.” 그러죠. 그럼 저는 “이 이야긴 어때?” “그건 괜찮아. 저건 별로다.” 하며 의견을 나눠요. 그런 풍경들이었어요.”
-아내가 소설 공장 작업반장이군요.
“작업반장은 저예요. 아내는 외부 컨설턴트죠. ‘한국이 싫어서’로 뜰(!) 때까지 제품공정이 짧은 프로젝트를 저 자신에게 발주하고, 수주를 받는 식이었는데, 지금 부작용이 오고 있죠. 5월, 8월, 11월… 3개월에 한 권씩 책이 나오고 있어서.”
-수금이 잘 되는 셈이네요.
“좀 당황스러워요. 그러다 보니, 제 소설이 명품이 아니라 유니끌로 같다는 평이 많죠. 장강명은 트렌디한 것 잽싸게 포착해서 후다닥 잘 만들어낸다. 그걸 인정하는 게 ‘한국이 싫어서’나 ‘댓글 부대’도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어요. ‘야마’가 되는 스토리 위주로 갔죠.
저도 이제 고가 전략을 써야 할 시점인데, 이미 작년 상반기에 계약한 것들이 많아서 올해도 공장형 스타일로 가야 한다는 게 딜레마예요. 저도 긴 호흡으로 작가적 야심을 펼치고 싶은데 말이죠(웃음).”
-2016년에는 몇 권이 더 나올 예정이죠?
“6권이요. 두 달에 한 권 나오는 꼴이죠. 다 소설은 아니고, 논픽션도 있고 에세이도 있어요.”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절박하게 달리는군요.
“저는 유아인을 보면서 자극을 받아요. 직업인으로서 정말 존경스러워요. ‘밀회’로 신드롬을 일으키더니, 어느새 ‘베테랑’을 찍고 바로 ‘사도’를 보여줘요. 그런데 어쩌면 연기가 다 저렇게 다르고 좋을까. 게다가 ‘육룡이 나르샤’까지 연이어.
중년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젊은 남자, 재벌 3세, 사도세자, 야심가… 다 몰입이 되는 거예요. 그거 보면서, “아! 얼마나 치열한 예인인가!” 잠도 못 자고 연기할 텐데… 그래도 나는 내 스케줄 관리하면서 잠은 자면서 소설 쓰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
-그러니까 장강명의 경쟁자는 유아인인가요?
“경쟁자는 아니고, 스승이라고 해두죠(웃음). 유아인 보면서 배우니까요. 그 엄청난 노력과 탁월한 결과물, 빠른 템포. 유아인이 또 위로가 되는 게, 많이 노출돼도 계속 변신을 하니까 대중들이 싫증을 안 내잖아요. 그런데 제가 하는 말들이 너무 작가적 포스가 없어서 걱정이네요(웃음).”
-문단 사람들과 교류는 있나요?
“없습니다.”
-스톱워치 켜고 글 써서 그런 거 아닐까요? 상금도 싹쓸이 하고(웃음).
“상금을 토해낼 수도 없고(웃음). 일단은 남들이랑 술 마시는 걸 안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책 출간 기념이나 시상식, 송년회 그런 자리를 잘 안 나가니까.”
-동업자들과 술을 안 마시는 이유는?
“함께 술을 마시면 저를 더 싫어하게 될까 봐서요. 썩 호감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안 만날수록 좀 호감이 유지되지 않을까 합니다.”
-글이 나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진짜 그렇습니다. 저는 좀 심심하기도 하고, (고민하다) 말하자면 ‘100m 미인’입니다. 100m 떨어진 데서 봐야 괜찮게 보이죠. 그러니까 책으로 읽을 때 제일 괜찮고(웃음), 일로만 만날 때 좀 매너 있고, 알면 알수록 ‘이 사람 속이 좀 뒤틀려 있거나 뭔가 결핍된 사람이다.’ 그렇게 느낄 거에요.”
-‘댓글 부대’의 주인공들도 다 그렇게 뒤틀려 있고 결핍된 사람들이더군. 그들이 욕망을 배설하는 출구로 룸살롱과 안마방 등 술집 여자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보도 아가씨’부터 ‘텐프로’까지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왕국을 보는 것 같았어요.
“세 명의 주인공들이 입만 열면 여성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데, 자기들의 여성 혐오를 성매매로 채우죠. 그런데 그 여성 혐오의 뿌리는 사실 선망에 있어요.
젊은 남자들이 젊은 여자랑 연애를 못 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 자기가 사귀고 싶어하는 여자가 다 자기보다 능력이 있는 남자를 사귀고 있단 말이죠? 그럴 때 두뇌 회로는 자연스럽게 혐오를 발동시킵니다.”
-댓글 하청인들, 위험한 정치 설계자, 기자들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 다들 약간 미쳐서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밑바닥에 과열된 남성 호르몬이...
“공격성과 폭력성이 어마어마하죠. 저는 그런 게 남자들의 생물학적인 특성이라고 봅니다. 특히 호르몬이 과다 분비된 젊은 남자들은 충동적이고 자제력이 부족하고, 자존심이 세죠. 진화가 수컷에게 그걸 강요했어요.
저는 버블 경제 시기에 자라서 연애에 최적화된 시대를 살았죠. 그랬는데도 항상 여자들이 나를 거부한다는 생각, 거부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어쩌면 사회가 고릴라나 침팬지에게 옷을 입혀 아무 데서나 사정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웃음). 남자들은 젊을수록 다 걸어 다니는 폭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어두운 성적인 충동을 소설 속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편이고요.”
-성적 충동이 장강명 소설의 추동력이군요.
“(웃음)홍상수 감독 영화만 봐도 한 번 못 자서 안달 난 찌질한 남자들 얘기가 주 내용이죠.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이라고들 하면서요.”
-청년기에 저질렀던 가장 큰 비행은 무엇입니까?
“수도 없이 많은 비행을 저질렀기에 노코멘트입니다(웃음).”
-기자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요?
“제일 처음으로 텍스트를 만드는 사람. 순간의 구체적인 팩트 조각들을 최초 텍스트로 정리하는 사람이죠.”
-기자로 자랑스러웠던 때는 언제인가요?
“모정당 지지도를 크게 떨어트린, ‘딱 떨어지는’ 특종을 한 번 했어요. 정치부는 특종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특종 경쟁은 되게 센데 남들이 인정하는 특종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 특종 경험이 작가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에너지 혹은 자원이 되고 있나요?
“현장에 있을 때는 그게 목숨보다 중요한데, 나와보니까 좀 웃긴 것 같습니다(웃음).”
-어쨌든 쏟아지는 사건의 포화 속에 있는 ‘스트레이트’ 기자가 타율 높은 ‘공격수’ 스타일의 소설가가 된 셈이네요. 가령 문학 담당 기자를 하다가 전업 작가로 나왔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글 쓰는 데는 모르겠고 자부심은 있어요. ‘스트레이트’ 부서에서 동료들이 괜찮은 기자로 인정해줬다는 것이. 남자들한테 그런 게 필요합니다. 호르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부심이라든가 동료의 인정 같은 것이. 산업부, 정치부, 사회부, 노조… 임무를 잘 수행하고 만기 제대한 느낌입니다.”
-스톱워치와 엑셀 프로그램 말고 글 쓰는 데 꼭 필요한 도구나 환경이 있나요?
“낮은 온도가 무척 중요합니다. 더우면 글이 잘 안 써집니다. 시시각각 메모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때문에 블루투스 키보드도 중요합니다.
-최근에 저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으면서 감동을 했어요. 당대뿐 아니라, 고전으로 오래 읽히려면 사건도 사건이지만, 인간 어둠의 심연을 근본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책을 읽고 있습니까?
“미야베 미유키의 ‘괴수전’, 김현진의 ‘육체탐구생활’ 지적 재산권 논란에 대한 ‘아이디어의 미래’ 닥치는 데로 읽고 있습니다. 1년에 100권 정도 읽습니다.”
-기자에서 전업 작가가 된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제일 좋은 것은 마감이 없어 마음껏 취재할 수 있다. 상사 스트레스가 없다. 사람을 덜 만난다. 나쁜 것은 고정 수입이 없다. 좀 외로운 기분이 든다.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다.”
-청년인가요? 중년인가요?
“중년입니다.”
-로봇이 소설을 쓰는 시대가 오면 어떻게 될까요?
“2013년에 이미 로봇이 쓴 소설 공모전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인공지능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 알고리즘을 분석해서 말입니다.”
-장강명 봇이 쓰면 어떨까요? 몇 가지 취재 기법과 플롯으로 알고리즘을 만들면?
“아니요. 그런 인공 지능이 쓸 수 없는 것을 쓸 겁니다.”
-소설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존재하길 바라나요? 한편의 오페라, 시 아니면 르뽀?
“단행본 책으로 존재하길 바랍니다. 전자책 리더기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이 폭이나 길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웹 소설 상당수가 종이책이나 e-book으로 나오지 않고 분재된 상태로 끝나는데, 그런 소설들은 일종의 시트콤 형태가 됩니다. 연재하는 동안 독자를 계속 끌어야 하니까요.
저는 소설이 스크롤 몇 번으로 끝나고 문장은 화면 폭에 다 맞춰져 있어서 한 문장 한 문장으로 다 개행이 되는 형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글자는 걸어 다니면서 잠깐 본다, 그건 제가 사랑하는 소설은 아닐 거에요. 그런 면에서 구식이죠.
텍스트를 태우는 매체가 계속 진화하고 있지만, 저는 옛날 매체에 애착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중년도 아니고 거의 노년 같아요.
-글은 청년, 몸은 중년, 마음은 노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