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선 장사는 12월 31일부로 그만둔다. 2. 아침 9시마다 상인회장에게 문안인사 드린다. 3. 2~3개월 동안 시장 1층 카페에 대기하고 있다가 부르면 언제든지 나와서 시장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

지난달 23일 인천 강화군 강화풍물시장 '청풍상회'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하나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청풍상회는 2013년 20·30대 남자 다섯명이 모여 시장에 연 화덕피자집이다. 피규어로 아기자기하게 장식한 인테리어와 전통시장에서 보기 힘든 메뉴로 시작해 입소문을 탔고 월 1000만원 매출을 올릴 만큼 장사가 잘됐다.

문제는 청풍상회가 작년 말 정부 지원 종료를 앞두고 강화군에 정식으로 임대계약을 요청하며 불거졌다. 청풍상회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강화풍물시장 상인회는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하고 시장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계약에 동의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SNS를 타고 '상인회 갑질' 논란이 확산되자 상인회 측은 지난달 28일 풍물시장 페이스북에 "일방적으로 상인회의 입장과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압력을 느끼도록 한 점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지난 4일 강화풍물시장에서 만난 상인회 한 임원은 "전통시장을 살려달라고 혜택을 받아 임대료나 전기료도 내지 않고 장사를 한 건데 그만큼 (청풍상회가) 시장 전체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상인회비를 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인회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상인회가 청풍상회를 일종의 무임승차자로 봤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풍상회는 현재 강화군과 재계약 협의를 하며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불만은 강화풍물시장만의 일이 아니다. 정부가 문화관광형 전통시장을 만들겠다며 청년·예술가들에게 점포를 내주거나 도시락카페 같은 이색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막상 현장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1년부터 속초·주문진 등 여러 전통시장에서 문화사업을 벌였던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는 "상인들마다 이해관계도 다르고 새로운 방식에 대한 저항감도 있다"며 "이 때문에 기존 상인들과 기획자들이 충돌을 빚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고 했다.

지난 6일 서울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2014년 9월 시장활성화사업이 시작되며 작가·예술가들이 청년점포 10여곳을 열었다. 사진관·만화방·금은방 등 1970~80년대 분위기를 재현해내 관광명소가 됐다. 하지만 상인들은 체감 효과를 잘 느끼지 못하겠다고 했다. 가방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2)씨는 "오가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기는 한데 우리 가게 매출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했다. 등산용 옷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도 "대부분 사진 찍으러 온 관광객들이지 이런 옷을 사가는 사람은 아니다"고 했다.

서울풍물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2월에 정부 지원이 끝나면 아마 청년점포들은 가게 문을 닫고 나갈 듯하다"며 "상인들 입장에서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업에 호응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그런 사업보다는 주차장 확보, 점포 면적 확대 등을 지원해주는 게 상인들 입장에서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2011년 도시락카페 사업을 시작하며 문화관광형 대표시장으로 홍보된 통인시장도 마찬가지다. 30년째 이곳에서 속옷장사를 했다는 한 상인은 "엽전을 받을 수 있는 음식 장사만 잘되고 건 장사(마른 물건을 파는 장사)는 오히려 손님이 줄었다"고 했다. 기존에 오던 동네 손님들이 관광객들로 시장이 붐비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생선가게 상인도 "장사는 안 되는데 권리금만 500만~1000만원, 임대료도 두 배 가까이 뛰었다"며 "장사가 잘될 줄 알고 비싼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다가 2~3개월 만에 망해서 나가는 가게들도 많이 봤다"고 했다.

장흥섭 경북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존 상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면서도 "상인들의 이해와 협조 없이 시장활성화사업이 성공할 수는 없다. 결국 단시간에 성과를 내려하기보다는 큰 그림을 그려 상인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이 우선"이라고 했다. 강화풍물시장 시장육성사업단의 김은미 사무국장도 "장기적으로 상인들과 부대껴야 하는데 사업 자체가 1년 단위로 이뤄지다보니 기존 상인들과 사업단이 서로 믿고 이야기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통시장 지원사업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