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평집의 유일한 식사 메뉴인 닭곰탕(7000원). 수십 마리 닭을 한꺼번에 삶아 우려냈다.

"겨울에는 무조건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가요. 추운 게 싫어서."

여행의 목적을 묻는 나의 질문에 그이는 간단히 답했다. 단순한 이유와 그만큼 명확한 목적, 그 여행의 도착지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였다. 나는 그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이른 출근길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하늘 아래 고층 빌딩 틈으로 쏟아지는 칼바람을 민얼굴로 맞으면 '왜 옛 한반도 거주민이 온돌을 발명했는지'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해진 저녁 다시 차가워진 공기에 몸을 내던지면 격무에 시달린 헛헛한 위장이 따뜻한 것을 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나는 회색 외투를 입고 충무로 황평집으로 간다.

1000만 관객이 들었던 영화 '도둑들'의 촬영지인 충무로 진양상가를 지나 신성상가 끝단, 1960년대 세운상가라는 이름으로 지은 거대한 주상복합단지의 그림자가 뒤덮은 도로 한쪽에 46년간 곰탕을 끓인 황평집이 있다. 맞닿은 두 가게를 이어붙인 탓에 들어가는 문이 두 개, 문턱으로 이어진 너른 공간도 두 개다. 입담 좋은 '이모'들은 좁은 테이블 틈과 높은 문턱을 날렵하게 오간다. 작은 방까지 가득 채운 손님들 면면을 보면 단골 티가 역력하다. 메뉴를 낯설어하는 기색이 없고 행동거지도 자유롭다. 찬바람에 발그레 달아오른 그들의 볼에서 하루종일 이 집 닭곰탕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으리라는 추측의 단서가 잡힌다.

메뉴는 여느 오래된 집이 그렇듯 단출하다. 식사는 닭곰탕(7000원) 하나뿐, 해가 일찍 지는 겨울 밤 함께할 안주는 넉넉하니 걱정은 놓아두자. 그 대표 중 하나는 닭무침(1만7000원)이다. 새콤 매콤한 닭무침의 균형감은 저 옛날 제갈공명이 말하던 솥단지의 세 다리만큼이나 단단하고 절묘하다. 시큼 달달한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절로 흥이 오른다.

요즘처럼 가로수 앙상한 시절엔 간단하다 못해 원초적인 닭찜(1만5000원)이 제격이다. 크기를 보니 1㎏ 조금 넘는 중닭. 우선 닭을 삶아낸 솜씨가 남다르다. 닭을 있는 힘껏 푹 삶기만 하면 살이 풀어져 씹는 맛이 사라진다. 이 집 것은 퍽퍽하지도 무르지도 않다. 주문이 들어오면 삶는 것이 아니라 이른 나절 닭을 한꺼번에 삶았다가 식힌 것을 내놓는다고 흉볼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식을 때 고기에 깊은맛이 배는 이치를 배울 수 있는 기회요, 쫄깃한 닭 껍질은 보너스다. 이 집 주인공인 닭곰탕은 겸손하게도 안주에 공짜로 따라 나온다. 수십 마리 닭을 한꺼번에 삶아 우려낸 닭곰탕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운운할 만하다. 영하로 치닫는 겨울 공기도, 버거운 하루 하루도, 너의 근심과 나의 걱정도 세월을 우려낸 듯 맑고 묵직한 닭곰탕 한 그릇 앞에서 모두 녹아 사라져버린다. 남는 것은 투명한 소주잔이요, 너와 나의 가벼운 웃음뿐이다.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교수는 여름보다 겨울이 징역 살기 좋다고 말했다. 여름은 '옆 사람을 37도의 열덩어리'로 느끼게 하지만 겨울에는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원시적 우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평집 좁은 좌석에 엉덩이를 비비며 부대껴 앉으면 옆 사람의 체온이 고맙다. 그리고 뜨끈한 닭곰탕 국물에 감격한다. 그 순간 이 겨울은 춥기에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