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프로야구(MLB) 시카고 컵스는 지난해 홈구장인 리글리필드에 대형 전광판을 설치했다. 1914년 리글리필드를 짓고 홈구장으로 써온 지 101년 만의 일이었다. 그전까지 리글리필드에는 전광판 없이 수작업으로 점수를 표시하는 점수판만 있었다. 메이저리그 30구단 중 전광판이 없는 곳은 리글리필드뿐이었다.
그러자 라이벌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2016년 시즌 시작 전까지 기존 전광판 크기를 3배로 키우고, 밝기는 2배로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카디널스의 홈구장인 부시 스타디움을 총괄 운영하는 조 애버나티는 MLB.com에 "컵스가 우리보다 나은 전광판을 갖게 되는 건 화가 나는 일"이라며 "컵스와 비교해 어느 하나 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밝혔다. 지난 시즌 카디널스는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는 컵스에 자리를 내줬다. 컵스와 카디널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두고 "전광판 전쟁(video board war)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전광판 전쟁은 두 팀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MLB 구단들은 전광판 교체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0년 이후 전광판을 교체하거나 교체 계획을 세운 팀은 12곳이었다. 기준점을 2006년 이후로 삼으면 전광판을 교체한 팀은 23곳이다. 2003년 전광판을 갈았던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최근 종전보다 4배 큰 전광판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지난 2013년 1000만달러(약 119억원)를 투자해 MLB 역사상 최대인 1061㎡의 전광판을 설치했다. 이는 정식 규격 농구코트 2.5개와 맞먹는 크기다.
MLB 구단들이 돈을 쏟아부으면서 전광판 교체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단들은 표면적으로는 팬 서비스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안방에서도 현장감 있게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고화질 TV 시대에 맞서 현장의 박진감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업계에서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전광판 교체 뒤에 있는 엄청난 광고 수익이 교체 바람의 진짜 이유라고 본다. 컵스의 구단주는 "새 전광판 광고 수익으로 매년 2000만달러(약 240억원)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상 최대 규모인 매리너스의 전광판 설치 비용(1000만달러)의 2배에 이르는 수익을 한 해에 거둔다는 것이다. MLB 구단은 전광판 크기뿐 아니라 화질도 높여 광고주들을 유혹한다. LA 다저스가 지난 2013년 처음으로 풀HD급 LED 전광판을 설치한 이후 각 구단은 고화질 전광판을 마련하고 있다.
각 구단은 행사 수익도 올린다. 뉴욕 메츠 등 다섯 팀을 제외한 모든 구단이 전광판을 이용해 '유료 프러포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저스는 프러포즈 모습을 라이브로 전광판에 보여주는 대가로 2500달러(약 300만원)를 받는다. 다저스는 전광판 운영 전담 직원만 22명에 달해 '작은 방송국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은 야구장 전광판이 경기 상황을 숫자로 보여주고, '키스 타임'과 같은 간단한 이벤트를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 야구단 관계자는 "수원 KT위즈파크나 신축 중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 전광판이 최첨단인데, 다른 팀에서도 전광판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도 "시장 규모를 볼 때 미국처럼 많은 전광판 수익이 나오는 구조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