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싸움으로 국회의 법안 처리가 중단되면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안(기촉법)의 연내 처리가 어려워졌다. 기업 구조조정의 방식과 절차를 담은 이 법은 올 연말까지만 효력이 있는 한시법이어서 국회가 개정하지 않으면 내년부터 자동 폐기된다. 여야는 지난달 27일 정무위에서 법 효력을 2년 6개월 연장하는 데 합의했지만 이후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을 놓고 대립하면서 합의한 법안의 처리조차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정치권 태업(怠業) 탓에 기업 구조조정의 근거법마저 사라질 판이다.
당장 금융감독원이 오늘(30일) 발표할 여신 규모 500억원 이상의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부터 불똥이 튀었다. 금감원은 대상 기업들이 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올해 안에 구조조정(워크아웃)을 신청하도록 독려하기로 했다. 구조조정 대상이 된 기업들과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 은행들은 30, 31일 이틀 사이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워크아웃 신청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각 산업 분야마다 비중이 높은 부실 대기업들의 운명이 졸속으로 결정될 상황에 몰렸다. 연말에 한꺼번에 워크아웃 여부를 결정하려다 보면 살릴 수 있는 기업도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몰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법안 처리가 끝내 무산돼 법이 사라지는 내년 이후다. 기촉법으로는 채권자의 75%만 동의해도 자금 지원이나 채무 탕감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지만, 법이 사라지면 채권자 전원이 동의해야 이런 조치를 할 수 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채권자들이 100% 찬성하기란 힘들고, 합의를 이루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려 구조조정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경제의 사활이 걸려 있는데 정작 필요한 근거법이 사라지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됐다.
돈을 벌어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이 8만개에 달한다. 조선, 건설, 철강, 해운 등 거의 전(全) 업종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한 대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치권이 이대로 연말을 넘기면 경제의 발목만 잡는 해악(害惡) 집단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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